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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22-01-15 조회수 : 700
제 목 : 사회학자의 아노미론(민경배 사회학에서 발췌)

사회학자의 아노미론(민경배 사회학에서 발췌)

 

일탈행동을 설명하는 머튼의 아노미론은 뒤르켐의 아노미론과는 약간 다르다. 뒤르켐에게 아노미란 규범들이 약한 상태에 있거나 부재하거나 또는 서로 상충하는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머튼은 널리 공유하는 ‘문화적 목표’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제도적 수단’ 사이에 괴리가 생긴 상태를 아노미라고 보았다. 어느 사회든 그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문화적으로 인정되는 목표들이 있고, 그러한 목표들을 정당하게 성취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마련된 제도적 수단들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요소가 잘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 아노미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들 들어 돈가스를 먹으러 어느 레스토랑에 갔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돈가스는 ‘문화적 목표’로 서정된다. 돈가스를 먹으려면 우선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이프와 포크는 돈가스라는 문화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유형의 손님을 발견하게 된다. 문화적 목표와 제도적 수단 사이의 괴리는 사람들에게 다음 다섯가지 유형의 적용양식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유형으로 반응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첫째, 돈가스가 나오고 나이프와 포크도 아련되어 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즉 돈가스라는 문화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나이프와 포크라는 제도적 수단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서 맛있게 돈가스를 먹으면 그만이다. 머튼에 따르면 이 사람의 적응 양식을 동조형으로 분류된다. 동조형은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을 모두 수용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돈을 벌어서 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이를 위해 합법적인 경제 활동을 하거나 저축과 같은 제도화된 수단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다면 밤을 세워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스포트경게서 우승하고 싶다면 경쟁선수 보다 두 배 세배 더 열심히 훈련을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일탈자로 볼 수 없다.

 

둘째, 돈가스는 나왔는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까 나이프와 포크가 없다. 웨이터도 바쁜지 거들떠보지 않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다. 잘 차려진 돈가도 단지 그림의 떡이다. 이제 체면 불구하고 손으로 집어 먹든지, 아니면 주위를 살피고 옆 테이블의 나이프와 포크를 살짝 집어오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혁신형 일탈자가 된다. 혁신형은 문화적 목표는 받아들이지만 제도화도니 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거나 거부하는 경우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비록 돈을 벌어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 수단으로는 합법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 사가, 횡령, 절도, 문서위조 등과 같은 제도적으로 정당화되어 있지 않은 방법을 동원한다. 이 경우 일확천금을 꿈꾸는 바람직하지 못한 동기로 일탈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교육 수준이 낫거나 인종차별 등과 같은 이유로 취업의 기회가 제한되다보니 얼쩔 수 없이 일탈을 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밖에도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에서 커닝을 하는 행위,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욕심에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거나 심판을 매수하는 행위, 선거에서 당선하기 위해 경쟁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을 퍼뜨리고 유권자들에게는 물령 공세를 펴는 행위 등이 모두 혁신형 일탈자에 포함된다.

 

셋째, 이넌 경우는 좀 엉뚱하다. 이 사람은 원래의 문화적 목표인 돈가스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사람에게 중한 것은 돈가스를 먹기 위해 사용하는 제도화된 수단에 불과한 나이프와 포크이다. 그는 화를 내며 웨이터를 부른다. 웨이터는 ‘돈가스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뜻밖이다. ‘돈가스가 문제가 아니오, 나이프가 너무 무겁지 않소, 그리고 좀 더 세련된 디자인의 포크는 없소?’ 이런 사람의 유형은 의례형으로 분류된다. 의례형은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문화적 목표를 무시하거나 거부하고 오히려 제도적으로 마련된 수단에 더 집착하는 경우이다. 관료들이 형힉적인 절차와 형식에 칩착한 나머지 그 절차나 과정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사소한 규칙이나 규정에 얽매이는 것,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학교의 수제에만 충실한 학생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렇지만 의례형은 그 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일탈행동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넷째, 이번 사람은 엉뚱하다 못해 황당하다. 그는 돈가스를 싫어하고 나이프와 포크를 다루는 것도 서투르다. 그는 젓가락을 사용해서 칼국수를 먹고 싶어 한다. 물론 레스토랑에 칼국수가 있을리 없다. 그러니 어찌하랴! 절이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는 법, 그는 왜 칼국수가 없냐고 화를 내면서 레스토랑을 나온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은 당연히 칼국수 집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패배형 일탈자로 분류된다. 패배형 일탈자는 문홪거 목표와 제도적 수단 모두를 거부하고 사회로부터 도피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수양대분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우에 오르자 세상사를 비웃으며 산속으로 들어간 김시습이나 부괴영화가 덧없음을 느끼고 방랑자로 일생을 보낸 천재시인 김삿갓 같은 사람들이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유형에 속한다. 또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 부랑아, 운둔형 외톨이, 종교적 운든자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

 

마지막 손님을 보다 적극적이다. 이 사람도 앞의 손님과 마찬가지로 돈가스와 나이프, 포크를 거부하고 칼국수와 젓가락을 원한다. 그러나 앞의 손님이 레스토랑을 떠나 갈국수 집으로 향한 반면, 이번 손님은 이 레스토랑에서 칼국수를 파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주인을 불러 충고한다.

‘여러가지로 고려해 보건데 여기서는 레스토랑보다는 칼국수집이 더 어울리는 것 같소, 입지 조건이나 주변 분위기를 봐서도 칼국수를 팔아야 장사가 더 잘 될 거요. 만약 당신이 싫다면 이 가게를 나에게 파시오, 내가 여기서 칼국수 집을 운영해보리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반역형에 해당한다. 반역형은 패배형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문홪거 목표와 제도적 수단 모두를 거부하지만 사회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사회에 새로운 목표와 수단을 제하면서 변화를 추구하려는 적극적인 부류이다. 김시습이나 김삿갓이 패혀형의 유이라면 율도국을 건설한 홍길도이나 동학 혁명의 지도자였던 녹두장국 전봉준 같은 사람은 반역형에 속한다. 그밖에 혁명가나 여성해방운동가, 히피족 등로 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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