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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4-05-08 조회수 : 3,274
제 목 : 한바위 골에서 189

한바위 골에서 189

 

- 남동생 -

 

내게는 10살 아래 남동생이 있습니다.

보통 두 살 터울로 형제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 형제들도 두 살 터울로 여동생이 셋이 있고 마지막에 남동생이 있습니다.

동생이라지만 꽤나 나이 차이가 많아, 그다지 함께 부대끼며 자란 기간이 적어서, 별다른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했던 어린시절에도 혼자 떨어져 자취 생활을 하다가, 다 성장하기도 전()인 청소년기에 부모님 품을 떠나 혼자 살아온 탓에 아주 어린 동생의 귀여운 모습만 떠오를 뿐이지요.

지금이야 50대와 40대라서 그다지 차이랄 것도 없는, 같은 세대이지만 어릴 적 10살 차이는 커다란 차이가 났었지요.

어엿한 기업에 7명의 사원을 거느린 사장님이 된 동생이지만 요즈음 건강이 좋지 않아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수씨의 가슴을 태우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터라 그 동생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멀리서 들려오는 동생의 건강에 대한 소식은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좋지 않은 건강에도 한잔 거나해진 동생이 새벽녘 ! 형이 옆에 있으면 큰형하고 한잔했으면 좋겠네요.”라고 아쉬움 섞인 푸념을 하곤 합니다.

혹시 내가 비행기 표 사놓을 테니, 오늘 저녁 제주에 내려와서 큰형과 밤새 이야기하고 아침에 돌아가면 안 될까?”하고 말할라치면 어찌나 가슴이 아리는지 모릅니다.건강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어서 절박함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유난히 토로하곤 하는 것입니다.

저도 형님과 네 살 차이라고는 하지만 형과 그다지 추억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든 형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형이었지요.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어야 얼굴 한번 볼 수 있고, 그때도 간신히 이야기 한번 할 수 있는 형이어서, 아주 어릴 적 이야기 빼놓고는 함께 쌓아둔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니 동생은 더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래도 형과 동생은 한 도시에 살고 있어 가끔은 왕래가 있는듯하지만 나와는 간혹 있는 전화통화가 전부 입니다.

형이야 그렇다지만 동생과 나의 사이에 놓인 거리도 거리려니와 추억도 없으니 서먹서먹할 동생인데 자꾸만 보자하고, 이야기하자 합니다.모두 다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후에야 밤 세워 이야기 나눈 기억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던 모양입니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또 전화를 걸어온 동생이 비행기 표 사놓을 테니 제주에 오랍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동생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니 아련히 떠오르는 아주 오랜 기억이 다가서옵니다.

그 동생과 내 나이가 10살 차이가 나니 아마도 내가 17쯤 되었을 적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면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 집에 돌아와 있었던 때라고 기억됩니다.

동생은 막내라서 부모님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랐지요.

그런 탓에 막내 특유의 어린 투정이 많았습니다.

4살 위의 누나를 자주 괴롭히는 것도 그렇고, 좀 건드릴라치면 곧장 부모님께 일러바치는 통에 누나들이 여간 힘들 것이 아니었지요.

특히 바로 손위 누나는 누나 취급도 안했으니까요.

심사(心思) 복잡한 청소년기의 내 눈에 비친 동생의 그런 모습은 좋아 보일 리가 없었지요.

바로 손위 누나인 셋째 여동생은 유난히 저를 잘 따르곤 했는데 제겐 여간 예쁜 동생이 아니었지요.

그런 여동생과 남동생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툼이 일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일로 여동생은 부모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았고, 혼자서 구석에 앉아 훌쩍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요.

얼마 있지 않아 부모님은 집을 나가셨고 난 남동생을 데리고 아무도 없는 언덕으로 데리고 가서 쥐어박으며 엄청난 협박을 했지요.

얼마나 심하게 다루었는지 동생은 새파랗게 놀라 울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했나 싶었는데도 부모님께 일러바칠까봐 몇 대 더 쥐어박고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잠든 동생은 자면서도 흐느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너무 했나하고 후회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나기 전까지 동생은 내 눈치를 살피곤 했지요.

밥 먹다가 투정할 때면, 부모님 몰래 제가 눈을 흘기면 조용해지곤 했지요.

심지어 울다가도 내가 한마디 하면 바로 울음을 그치곤 했습니다.

여동생은 곤란해지면 곧바로 오빠한테 이른다하고 협박하곤 했지요.

동생은 아마도 경험하지도 않아도 될 엄혹한 세상을 처음으로 형으로부터 체득 했을 겁니다.

모든 것을 받아주던 누나들 그리고 부모님은 아마도 동생만의 좁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던 시절에 어마어마한 세상과 마주했을 터이지요.

그 어찌할 수 없는 힘, 두려움에 찬 폭력을 처음 체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져주고 다독여 주는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형으로부터 깨달은 것이지요.

그것도 7살 어린 나이에 말입니다.

몇 개월 지나서 집을 떠나 객지로 나온 후, 다시는 한집 식구로서가 아니라 그저 손님으로 집을 방문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동생과 어릴 적 추억이 다시는 없었지요.

벌써 40년이 다 지났을 적의 기억이지만 잊혀지지 않는 영상으로 남은 것은 그 동생이 너무나 소중했고 그 추억이 너무나 후회스러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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