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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10-31 조회수 : 3,405
제 목 : 낯선 곳으로부터 귀향

낯선 곳으로부터 귀향

  시작

내 나이 50을 넘었으니 이제 삶의 3분의 2 이상을 보내버린 셈이 된다.
적지 않은 세월을 쉴 새 없이 달려왔건만 되돌아보니 이룬 것도 없이 그저 바쁘게만 살아온 것 같을 뿐이다.
가족과 함께 멋스럽지는 못해도 여유로운 여행이라도 같이 했으면 하지만 1년에 겨우 두세 번이 고작이다.
이번 여름휴가는 여유롭게 날을 잡아, 온 가족이 이제까지 가보지 않았던 지역을 두루 돌아 볼 예정이었는데 대학 4학년인 큰딸의 실습 문제도 걸리고, 대학 3학년인 둘째 딸의 아르바이트 시간도 걸려서 결국 토요일 일요일 하룻밤을 지내는 이틀간의 작은 여행이 되어 버렸다.
아마도 앞으로도 이런 갖가지 일들이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서로가 인내와 희생이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2013년의 여름은 유별나게 덥고 가므른 여름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가 너무 온다고 아우성이었는데 가뭄이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날씨요 사람의 맘씨다.
사람의 느낌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기상이변은 인간이 어찔할 수도 없고 감내하기도 어렵다.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기상이변이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들 한다.
자연환경을 환경을 훼손하는데 일조한 사람 중에 한사람인 나로서도 무어라 할 처지는 아닐 듯싶다.
그 무더운 날씨를 뚫고 2013816일 금요일 오후 4시에 좁은 자동차 안에 나 말고도 가족 네 사람을 더 싣고 출발하였다.
고속도로가 여름 휴가객으로 주차장이나 다름없다던 언론의 호들갑과 달리 고속도로는 한산하여 아무런 막힘도 없이 그 긴 거리를 달려갔다.
나는 아직 울산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한 지붕 밑이지만 그 거대한 도시를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내 활동영역도 그러려니와 내 성격의 탓도 있을 것이다. 공업도시로서 거대한 공장이 가장 많은 곳이 울산이라고 한다.
아이들 키우는 부모로서 거대한 공업지역을 돌아보며 현대사회의 공업화에 대한 견문을 널 힐만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류에 교육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다.
주로 문화재 견문이나 자연환경에 대한 견문을 은연중에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주로 그런 곳을 찾게 된다.주로 자동차 공업과 조선(造船)산업이 발달한 울산이어서 2008년 세계 금융대란에도 우리나라에서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 특히 조선(造船)산업의 불황으로 울산이 심상치 않다고들 한다.
어째거나 첨단 과학의 결실이 현장에서 이루지고 있는 울산의 공장지대를 그냥 지나쳐 간절곶에 도착하니 저녁 10시가 다 되었다.
거대도시라고는 하지만 고속도로 요금소를 나와 얼마 가지 않으니 한적한 시골 마을길이 이어져 있었다.
시골길을 따라 진하해수욕장에 이르니 생각보다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한산해서 거대도시가 아니라 어느 이름 없는 작은 시골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닷가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서 간절곶에 이르렀는데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바닷가는 제법 잘 가꾸어 놓아서 소박한 정취는 찾을 수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텐트 칠 곳을 찾노라니 어두워 잘 보이지 않던 주변 솔밭에 군데군데 텐트를 치고 쉬는 사람이 보여, 전등을 들고 평편한 곳을 찾아 텐트를 치니 벌써 11시가 넘었다.
가지고간 맥주를 나누어 마시고 잠에 빠져드니 이번 여행의 첫째 날 밤이다.

간절곶

간절곶이란 이름은 무언가 심후한 뜻이 담겼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긴긴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것 같지만 그 유래를 듣고 나면 좀 어의가 없어진다.
그 유래는 바다 멀리 나가 간절곶을 바라보면 간짓대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솔직히 그 유래를 듣고 나니 왠지 썰렁해지지만 간절곶 바다 쪽 마지막 바위에 앉아 멀리 동해를 바라보면 무언가 간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바다로 나간 지아비 혹은 아비, 아들을 기다리는 아낙의 간절한 염원이 바다 특유의 냄새와 함께 밀려오기 때문이다.멀리 고깃배들이 점점이 보이는데 너무 작게 보여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아버지가 몇몇 어선 선주여서 꽤나 으스대던 친구가 있었다.
작으나마 발동선 몇 대를 소유하고 있어서 넉넉한 살림도 살림이려니와 몇몇 선원도 거느리고 있어서 동네에선 동네 유지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매양 김치에 마늘종 짱아지가 도시락 반찬의 전부였던 시절에 그 친구는 그래도 넉넉한 살림이어서 일까 멸치 반찬에 가끔 소시지 반찬도 싸오곤 했었다.
그런 친구였는데 갑작스레 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밤, 고기잡이 나간 발동선도 아버지도 삼촌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친구 아버지 무덤은 내 기억으로 빈 무덤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발동선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에 아버지도 그 무덤에 묻히지 못했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발동선과 아버지, 삼촌 그리고 일하는 어부들로 인해 그 친구 집은 풍비박산이 났고, 잘 지어진 슬레이트지붕 집도 점점 쇠락하여 고등학교마저도 진학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친구가 지금 어찌 지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함이 무엇인지 바닷가에 서면 절절이 묻어나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오늘 해 돋는 간절곶 바닷가에 서서 장엄한 태양을 바라보면 울다울다 지쳐 먼 바다를 바라보았을 친구와 그 어미의 애절함을 느끼게 된다.곶이라 함은 바다로 돌출한 작은 반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애당초 내가 이곳을 찾은 까닭은 바로 그런 돌출된 바다여서이지만 무엇보다 그 이름에서 나오는 무엇 때문이었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진한 감동은 아니라 할지라도 마음 저 밑 어딘가에 꿈틀거리는 원초적 감성이 새록거릴거라는 기대가 있어서였다.
새벽녘에 장엄한 태양은 감동적이기도 하거니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간절곳이라고 한다.
해 뜨는 시간이야 매일 다른 시간에 떠오르니 몇 시라고 특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동해시의 정동진 보다 5분 먼저, 한반도 꼬리부분이라고 하는 포항 호미곶 보다 1분 먼저 일출의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간절곶 언덕 위에 제법 커다란 등대가 밤새 불빛을 껌뻑거리니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의 길잡이가 되어 줄 터이니 그대로 고마울 뿐이지만 너무나 현대적인 단순함이 엿보이는 모습이어서 볼 것은 없다.
어두운 밤에 도착해서는 보이지 않던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드라마 촬영장이란다.
서양의 성을 본떠 만들었음직한 건물인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불만한지 몰라도 흰색으로 칠해진 전형적인 특징 없는 콘크리트 건물이다.그나마 바닷가에 새워진 탓에 운치 있어 보이는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연신 찍어댄다.
내가 60년대 70년대에 유년과 청소년기를 거친 사람이라서 일까?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체,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이라는 노래 소절 때문일까? 아니면 바닷가 마다 서양식 건물이 태반인 지금 현실의 반영 때문이어서 일까?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바닷가에 초가집이 훨씬 더 감동적이고 멋스러울 것이라는 내 감성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런 멋스런 초가집은 없어도 바닷가에 형성된 보기 드문 솔밭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텐트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낸 아이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지 못했다.단지 큰딸만이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엄마 옆에 앉아 쫑알쫑알 이것저것 물어온다.
그것도 잠시, 태양이 어느 정도 수평선 위로 떠오르자 이내 텐트로 들어가 잠이 든다.
아내도 얼마 안 있어 텐트로 들어가니 사진 몇 컷 더 찍으며, 갈매기를 친구 삼아 유희를 즐기고 나니 둘째 딸이 수강신청을 위해 PC방 간다며 서두른다.
서둘러 텐트를 걷어 담아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부산은 내가 청소년기 막바지 어느 때 쯤,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이후로는 부산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몇 번인가 문상을 위해 부산을 찾은 적은 있지만 대부분 밤에 도착해서 밤에 출발해버린 것이어서 부산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얼마 전, 강의를 위해 부산을 방문했다가 부산에 대한 이제까지의 고정된 느낌이 달라지게 했다.내가 부산에 거주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도 더 전()이다.
그때 타지(他地) 사람으로서 그것도 어린 시절의 느낌은 정말이지 낯설고 경외심 바로 그 자체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와 억양, 그리고 그 이전에는 경험했던 도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도시에서 오는 경외심으로 이루어진 기억 때문이다.
첫째는 말을 알아 들 수 없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아직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던 곳이 바로 부산이었고, 가정과 학교에서 듣던 언어가 전부였던 내가 갑자기 전혀 다른 방언과 현장 언어는 그저 두렵게만 했다.
그런 부적응의 두려움이 엄습했던 추억만 내 가슴속에 깃들어 있었기에 부산하면 좀 무섭고 낯설음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강의를 위해 부산을 방문했을 때, 부산 말도 그다지 낯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정겹게 들려왔었다.
무엇보다 그때 청소년기 보다는 부산사람들도 그다지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다는 것이고 억양도 표준어를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그곳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았는데 여기가 부산일까 할 정도로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았으며, 자잘치 시장 호객행위 속의 언어도 대부분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어떤 지역보다 그곳 향토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곳이긴 하지만 내가 처음 접하던 부산과 비교해보면 천지차이가 난다.
울산에서 해변 길을 타고 부산으로 오다 보니 부산은 참으로 산이 많은 도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이나 경기도 도시처럼 평지에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주로 산과 산 사이 구릉지에 형성된 도시여서 어디나 너른 건물로 끝없이 펼쳐진 도시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에 넓지 않게 자리 잡은 도시다.
한군데 모여 있지는 않지만 높은 빌딩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었다.
도시 풍경이 바다와 접하고 있기는 해도 산이 많다는 특징은 왠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영도의 태종대 해변 길을 거닐어 보았는데 산 위에 아파트가 버티고 있어 남산 외인아파트 분위기 같아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아니라 할지라도 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배들은 그런 풍경 지워준다.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부산하면 떠오르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자갈치 시장과 국제시장 그리고 해운대 등이 떠오른다.한번쯤 여행 삼아 지나치는 나그네가 자갈치 시장에서 머 볼일이 있겠는가!
그저 어선과 생선뿐인 곳을.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갈치시장을 들른다.자갈치라는 말은 주변에 자갈이 많아 생긴 것이라고도 하고 갈치시장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 부산 자갈치 시장 말고도 몇 군데 더 자갈치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장이 있는데 아마도 그곳도 자갈이 많아 붙었을 수도 있고 이곳 자잘치 시장을 본떠 그리 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갈이 많아 자갈치라고 한다면 자갈이 보여야 할 텐데 지금은 온통 콘크리트 바닥이라 실제 자갈이 있었는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일단 먹거리가 많아 이곳 자갈치 시장에 간다들 하니 우리도 생선구이를 먹을까 아니면 돼지국밥, 그도 아니면 먹장어 먹을까 고민 끝에 먹장어를 먹기로 작정했다.
무얼 먹을까 하고 가족과 상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러자 하니 그냥 따른 것뿐이었는데 막상 먹장어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니 생각이 제각각이다.
아내는 자갈치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눈에 들어오는 구운 생선이 먹음직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보다는 왠지 징그럽게 생긴, 처음 먹어보는 먹장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서였는지 못내 구운 생선을 아쉬워한다.아내나 나나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먹장어 볶음이 왠지 매워보여서 더욱 그런 아쉬움이 컸는지 모른다.내 기억으로는 먹장어는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생선이다.
그것도 장작불에 껍데기 벗겨내지 않고 직접 불에 구어서 소금에 찍어 먹는 맛은 그만이다.
그러나 이곳 자잘치 시장에서는 먹장어를 소금구이, 양념구이 혹은 양념볶음 등으로 요리하여 판다고 들었는데 그런 구이 종류는 찾을 수 없고 단지 양념볶음만 팔고 있었다.
이곳 자갈치 시장 아니면 먹을 수 없겠다 싶어 시켜 먹었는데 맵기만 할뿐 예전에 먹던 먹장어 맛이 아니다.
먹장어도 국내산이 아니고 미국산이라고 쓰여 있어 그런가보다 하고 맛이 있는 듯 없는 듯 먹었다.
점심을 먹었는데도 큰 딸레미는 기어코 국제시장 가서 당면국수 먹어야겠다며 그곳으로 가잔다.
날씨는 살인적이어서 도무지 땡볕 속에 그곳으로 걸어갈 엄두가 나질 않는데도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맛없는 음식 씹듯, 질겅거리는 걸음걸이로 국제시장 쪽으로 갔다.
이곳 국제시장은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외국에 각종 물산이 도소매되는 시장이다.
그래서 외국물건이 많아 생긴 이름이겠으나 이제는 시장 어느 곳을 가더라도 외국물건이 눈에 띄는 시대라 그런지 지금은 외국물건 뿐만 아니라 각종 먹거리, 문화거리로 변모했다.
극장도 많고 각종 저가 상품이 길거리에서 넘쳐난다.무엇보다 먹거리가 많았는데 그 중에 씨앗호떡과 터키 케밥을 사먹는 것으로 마무리해야했다.
도저히 땡볕에 거리를 거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거리가 많고 볼거리가 많다한들 이런 더위 속에 걸어 다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닌 듯싶었다.
부산을 느끼고 싶어 찾은 것인데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본 것도 없고 느낀 것도 없이 스쳐지나온 꼴이 되고 말았다.
내 언제 또 부산에 다시 갈지 알 수 없지만 2013년도 여름의 부산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났다.

통영

통영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비교할 만큼 미항으로 손꼽는 항구도시라 한다.
그런 통영에 걸맞게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의 연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세계적인 서양음악 작곡가인 윤이상씨의 고향도 이곳 통영이라 한다.
정치적 이념 문제로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 몸을 묻은 노 작곡가의 고향에 대한 마음을 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저 음악 밖에 모르는 작곡가가 어찌어찌하여 지하 취조실에서 고문과 함께 옥살이해야 했다.
그에게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저 고국이라 생각한 것뿐인데 엄혹한 현실은 그런 그의 생각을 어느 조국이든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이미 세상 떠난 그에 대해, 지금도 이러저러한 말들이 많아 아직도 그는 이곳 고향에 몸과 마음을 맡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이곳 통영은 항구의 아름다움 그리고 어선들과 어부의 애환이 가득 담은 곳이다.
동피랑의 새로운 모습이 아름답고 바다가 아름답고, 각종 먹거리가 많다고 한다.
특히 충무 김밥은 유명한데 이번 여행에서는 구경도 못했다.통영 전통시장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주전부리라도 했으며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었을 뿐 다음 일정으로 인해 그런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내가 남해를 찾는다면 꼭 가고 싶은 곳이 통영이었는데 어쩌다 이리 바삐 떠나야하는지 느긋한 한가로움이 간절해 온다.통영으로 가는 길을 예전에 지나가던 남해고속도로를 통하여 가질 않고 새로 뚫린 가거대교를 거쳐 가는 바닷길을 선택하였는데 바다 밑 터널을 통하여 가는 길이어서 인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평범한 우리네 포장도로 일뿐 언론의 떠들썩한 대단한 도로도 아닐뿐더러 볼만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둘러 온 탓인지 어느 평범한 중소도시라는 느낌 속에 아내가 방송에서 보았다는 맛집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언론인 TV에 방영된 식당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애써 찾아왔는데, 1인당 3만원이라는 우리에겐 거금을 주고 먹은 일명 코스요리는 정말이지 이었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족이 1인당 3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외식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 그 음식이 꽝이었으니 어찌나 황당하던지 원.막내딸은 한 번 입에 넣어보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예 손가락 젓가락을 놓아버린다.코스별로 나올 것이니 눈에 드는 음식 나오면 먹으려니 했는데 나올 때마다 잠시 눈길을 줄 뿐 먹으려들지 않는다.
둘째도 거의 마찬가지이고, 큰애는 젓가락 몇 번 하는가 싶더니 영 탐탁지 않아 한다.
음식 값이 아까운 나와 아내는 맛이 있는 듯 없는 듯 꾸역꾸역 먹고 나와 고향으로 향해 얼마가지 않으니 막내가 대뜸 배고파요 한다.
이거야 원!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TV에 나오는 음식이러니 인터넷 맛집 추전도 그렇고 TV 음식 추천도 영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인터넷의 맛집추천은 조작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TV에 방영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련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우리가족 입맛이 유별나서 그러려니 할밖에…

남해고속도로(섬진강 휴게소)

음식에 대한 경험이야 그렇다하더라도 평소에 가졌던 통영에 대한 내 막연한 느낌을 체험해보지도 못하고 잠시 머물다 떠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늦은 밤에 텐트 칠 곳 찾아야만 하는 까닭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급한 마음뿐이었다.
통영을 출발하여 통영 대전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남해안고속도로를 접어들어 얼마쯤 가면 섬진강 휴게소가 있다.
예전 부산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이곳 섬진가 휴게소를 들르면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 방언이 교차하는 미묘한 극점을 느끼게 했다.
부산에서 출발한 고속버스가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점을 넘을 적에 누군가 난 저어가 좋다 아이가!” 말하더니 갑자기 워메 좋아 분거! 인제 고향 다 와부렀네!”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광경에 지역 경계선이라는 것이 가느다란 선 하나인데 어쩌면 저리도 다를 수 있을까하고 먹먹해지던 기억이 난다.
좁은 땅에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인데 말투가 저리도 다른데 말은 잘 통한다는 사실 또한 신기하다.
말만 잘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도 생각도 다른 것 보다 닮은 것이 훨씬 많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나라 한 국민인가 보다 하고 안심하게 된다.요즈음 조금 달라 보이는 말씨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하여 정치적 술수로 사용하는 정치인들이 있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일들이 많은 점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편하다.

고향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나만의 감정인지 아니면 누구나 느끼는 심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고향에서 지낸 건 유년시절이 전부다.기껏 해 보아야 10년이니 머 좀 알만한 시절에는 그곳에 있지 않았다.
내 경우에 있어서 성격은 유년시절 성격과 성격이 형성된다는 사춘기인 청소년기의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은 유년기의 성격이 아니라 제주에서 보낸 소년기와 청소년기에 형성된 것 같다.
다소 거칠고 부산스러운 성격이었던 유년기의 성격이 소년과 청소년기를 거치며 소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건 아마도 고향을 떠난 사건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하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본 느낌이다.유년기를 보낸 고향을 왜 그리도 그리워할까 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알다가 모를 일이다.아내는 그런 내 향수에 대한 성향을 집착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다른 5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의 특성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내 또래 친구들을 보건데 꼭 그렇지만은 않는듯하다. 나처럼 집착에 가까울 정도는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평야지대에 자란 탓인지 아니면 수시로 가볼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서 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는 나와 같지는 않다.
아내와 다르게 나는 고향을 일찍 떠났고, 평야지대가 아니라 산골이며, 또 현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산으로 둘러싸인 고향동네는 외지와의 왕래가 드물었다.
왕래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어서 색다른 무엇과 대면하기가 쉽지 않아 우리는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자연 환경과 부대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곳에서 자라던 유년시절은 산 너머 누가 사는지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완전 고립상태와 같은 지역이었다.
일찍 그곳을 떠난 탓도 있어서 지금도 산 너머 주변 마을 사람들과 서로 왕래하는 사람이 없다.댐 건설로 인해 모두가 고향을 떠난 탓도 있겠지만 부모님이 그 곳 고향에 계시지 않고 멀리 타향에 계신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차량이 얼마나 다닐지는 모르지만 순천에서 목포까지 그럴싸한 고속도로를 새로 만들어 놓았다.
순천을 시작해서 서쪽으로 달려가면 보성이 나오고 그 다음은 장흥이고 그 다음이 강진이고 마지막엔 목포가 있다.
지금 나열한 도시들은 수도권 사람들에겐 아주 생소한 도시이다.내세울만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번듯한 산업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목포를 제외하고 나면 전라남도 사람 아니라면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 그곳이다.
그런 곳에 제법 그럴듯한 고속도로를 건설해 놓았는데 제법 긴 거리를 운전하고 지나왔는데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어쨋거나 우리는 늦은 시간 서둘러 달려 고향으로 달려왔다.
아마도 고향 잃은 사람들을 위해 수자원공사는 큰 인심을 쓰듯 댐 아래 휴양시설을 건설해 놓았는데 그런 곳 중에 하나가 우리가 텐트를 치고 하루 저녁을 보낸 야영장이다.
시도는 그럴듯해서 이것저것 많이 시설해 놓았는데 그다지 효용성 있는 시설도 아니고 고향의 향수를 달랠만한 시설도 아니어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별 감흥이 없는가 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고향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외지 사람들만 모여들어 떠들썩했다.
고향이라 찾은 곳이지만 고향은 없고 낯선 정경과 사람들뿐인 것이다.이곳저곳 추억이 서린 곳을 찾고 싶지만 그 향수를 함께 나눈 적이 없는 아내와 아이들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좀처럼 함께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댐 주변 산행을 통해 어릴 적 헤매던 산길과 초등학교 시절 소풍 다녀왔던 곳에 앉아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지만 그리 되어 본 적은 없다.
이번에도 그와 다르지 않아 출발할 적에 염두에 둔 계획은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속으로는 이제 가족과 함께 고향 가자는 말은 하지 말자며 세삼 다짐해야 했다.

장흥시장의 풍경

그 옛날 칠거리 장흥(長興) 5일 시장은 이제 없다.
그 자리에 이름도 생뚱맞은 정남진 토요시장이라 이름 붙은 도시 냄새 풀풀 풍기는 시장이 자리 잡았다.
파는 물건은 예전에 듣지도 못했던 쇠고기와 키조개 판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정남진 토요시장 쇠고기는 꽤 많이 알려져 있어 지금은 대도시 사람들이 이곳 장흥까지 관광버스를 동원하여 찾는다고 한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이곳 칠거리 5일 시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풍경은 온갖 물건들을 내놓고 판매하는 말 그대로 시장판이었다.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여서 지금에 와서 그게 어떻다 말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의 정남진 토요시장과 비교해서 말할 만큼 이야기 거리가 내겐 없다.
정남진이라는 유래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서울로부터 선을 그어 동쪽이 정동진이라 하니, 정남진은 장흥에 해당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속 깊은 내력이 담겨진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왠지 남에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완전해 보인다.
정남진이라는 이름이 그러하듯 장흥(長興)이라는 지역명 또한 어떤 연유로 그리 이름 지어진 것인지 그에 대한 유래를 찾을 수 없다.이래 저리 붙들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없는 장흥 읍내를 찾아 어릴 적 친구인 한열이 표고버섯 가게를 들러 친구는 보지도 못하고 그의 부인과 내 아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열이 친구는 문가 同姓村인 까닭에 한마을이기도 하지만 먼 집안 아저씨뻘 되는 친구이다.
어릴 적부터 아주 짓 굳고 수다스런 친구였는데 나이 들어 찾은 친구는 부지런하고 속 깊고 차분한 중년되었다.
타고난 천성이 바뀔까 싶지만 이 친구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싶다.고향 저버리지 않고 고향에 남아 표고버섯과 삶을 같이하고 있다.
요즘은 돈벌이 안된다하여 잘 키우지 않는다는 소를 키운다고 몹시 바쁜 삶을 산다고 한다.고향에 산다는 것도 부럽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하고 사는 것 같아 부럽기만 하다.
친구 가계에서 나와 누구나처럼 쇠고기 사들고 식당에 들러 구워먹고 돌아서나와 탐진 강가에서 한참을 아이들과 물놀이하며 놀았다.

수인산

더위가 조금 물러나자 자동차를 몰아 수인산으로 향했다.아무래도 수인산을 그냥 두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아내는 야생화를 집 베란다에 심고서 기르기를 무척 좋아한다.고향 올 때마다 지천인 야생화를 캐가곤 했는데 그 핑계 삼아 수인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언젠가 수덕마을 수인산 등산로를 통하여 수인산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제법 등산로도 잘 가꾸어져 있었고, 한 두 사람 등산객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등산로엔 풀이 무성하고 전혀 등산객은 보이지 않았다.
등산로 초입에도 그렇지만 산에 오를수록 더더욱 사람 발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하늘말나리꽃과 여러 가지 나무와 꽃을 캐서 내려왔는데 얼마나 아쉽던지 아마도 아내와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애초에 이번 여행에서는 꼭 수인산을 가보리라 마음먹었는데 기어이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다.

귀경길

처음 서해안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는 별 쓸모없는 고속도로라 해서 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요즈음 서해안 고속도로는 가장 밀리는 고속도로 중에 단연 으뜸이다.
오래된 차량을 너무 먼 거리를 운행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무더운 더위 탓일까!
오는 길 자동차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고장으로 멈추어버린 바람에 때 아닌 부산을 피운 끝에 다음 날 집에 오전에 도착하니 얼떨결에 34일이 되어 버렸다.
부안에서 고장 난 자동차 때문에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딸래미 때문에 사촌 동생 경선이가 그 새벽 3시간을 달려 와 조카들을 데려가 준 덕분에 무사히 출근한 딸들이 삼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한다.
사촌 동생이라고 하지만 남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경우가 요즈음의 풍습이다.그럼에도 그 늦은 시간에 장장 7시간을 운전 끝에 무사히 데려준 동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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