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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7-31 조회수 : 2,693
제 목 : 한바위 골에서 171 -- ? 그곳에 가고 싶다

한바위 골에서 171

 

♦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눈길은 딴 곳을 바라봅니다.

갈 것을 다짐했다가는 이내 돌아서버리는 것입니다.

누가 날 붙잡는 것도 아니고

나더러 가지 말라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억도 느낌도 없습니다.

그곳을 향하던 눈길이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한 건

다름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그래도 또 그곳에 갈 것을 다짐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테니 바쁠 건 없습니다.

오라 손짓하는 사람도 부르는 임도 없습니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은근히 그리고 깊게 생각해보니

꼭 가야할 이유도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

애간장 녹이는 기다림도 없으니 눈감았고

애절한 염원도 없으니 모른체 해왔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에

언젠가부터 가느다란 울타리가 세워지더니

점점 굵어지고 높아져 갑니다.

보기 좋은 전경을 이루던 모습이었는데

이젠 나를 가두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갇힌 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창살 사이로 밖을 보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 너머 그곳으로 가리란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곳엔 분명 창살에 걸린 태양 같은 건 없을 겁니다.

 

오늘 꽃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햇볕도 없이 시름시름 피었는데

채 씨앗을 맺기도 전에

아마도 살아야겠기에

화려한 꽃을 내려놓고

안으로만 침잠해 갔을 겁니다.

비오면 비오는 데로

눈 오면 눈 오는 데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데로 내버려두었더라면

씨앗을 맺었겠지만

물이 필요할 적에 물을 주고

볕이 필요하면 볕을 주어야만 합니다.

아마도

무언가 간절히 원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주고

그냥 허락해 주었는데도

꽃은 시들어 버렸습니다.

그곳이 아니기 때문 일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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