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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6-03 조회수 : 3,305
제 목 : 한바위 골에서 166

한바위 골에서 166

== 그림 한 장 


 

선비가 있었습니다.

선비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화려하고 광활한 대지를 걷는 것은 아닙니다.

소박하고 볼 것 없는 높지 않은 산과 넓지 않은 들에 아무렇게나 이어지는 길을 휘적휘적 느린 걸음으로 걷는 겁니다.

그닥 중요해 보이는 목적도 없고, 꼭 필요한 일도 없는 듯 걷는 한가한 선비가 앞서니 뒤서니 친구 같은 머슴하나 데리고 걷는 것이지요.

머슴이라지만 어느 땐 말벗이요, 어느 땐 잠자리도 마련해 주고, 어느 땐 떼거리를 마련해 주는 옆을 보면 옆에 있고 뒤를 보면 뒤에 있지요.

그러나 어느 땐 없는 듯 저만치 서서 선비를 돕습니다. 그래서 때는 옛날 이지요.

그런 머슴과 함께 선비는 민가 드물어 인적이 없는데 해는 산을 넘는데도 구불구불 길을 걷습니다.

개울이 있어 발을 씻고, 나무 그늘 있어 땀을 씻지요.

바람 불어 갓끈 고쳐 메고, 지나가는 사람 있어도 옷소매 바짓가랑이 걷어 올리고 갓끈 풀어 등에 늘어뜨리고 야생화 흐드러진 끝이 없는 길을 걷습니다.

책임질 가족이 있는 없는 듯, 어찌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지 아는 듯 모르는 듯 길을 걷는 겁니다.

선비 앞에는 그저 구불거리는 아스라이 긴 길만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딸아이에게 그런 그림 그려 달라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내 바램.

그러나 딸은 무슨 말? 무슨 말 …되뇌더니 그런 말 하시려면 부르지도 말랍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그려주시겠지요.

그 그림 보며 나래를 펼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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