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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2-04-30 조회수 : 3,826
제 목 : 강가에 앉아서 67

강가에 앉아서 67

 

봄이다

봄비 내리고 볕드는

무르익은 봄이다.

눈처럼 흩뿌리던 벚꽃잎 눈같이 사그라들어

봄볕만 무한정 대지를 덮고 있다.

 

40년 전

오늘처럼 봄볕 잘 들던 날

난 오밀조밀 길게 뻗은 돌담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 세상을 모르던 난

그 길게 난 돌담 사이로 묻어오는 유채꽃 향기가

너무 너무 싫었다.

등 뒤 펼쳐진 끝이 없는 바다를 등지고서

양편 돌담으로 된 언덕길을

눈물이 뒤범벅이 된 얼굴로

혼자서

혼자서

걸어서 갔다.

 

내 고향 떠나던 날도

그 전날 비 그치고

아침부터 볕이 잘 드는 그런 날이었다.

난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던 학교 앞을 지나

홍조 띤 얼굴로

낯선 제주로 갔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까맣게 모른 체

파도를 거스르며

 

볕 잘 드는 날이면

강 건너 저편을 본다.

물속에 묻어둔

학교 종소리

단발머리 소녀

버들강아지

……

 

볕 잘 드는 날이면

바다 건너 저편을 본다.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돌담길

유채꽃

눈물

……

 

!

볕이 잘 드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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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을 보낸 고향을 떠나

낯선 제주로 갔다.

그리고 아무도 없고

바다와 바람

머리 아프도록 진한 향기의 유채꽃이 있었습니다.

 

눈 뜨면 보이는 바다와 멀리 보이는 한라산만큼이나

나에겐 유채꽃 동백꽃이 싫었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핀 계곡이 있는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들녘엔

바다처럼 유채꽃이 피어 있었고

한참을 그런 유채꽃을 바라보다 돌담길을 따라 집으로 갔지요.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면서요.

그 유채꽃이 만발한 끝자락엔 바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망하던 고향은 없습니다.

내 고향 한바위골은 퍼런 물이 가득할 뿐입니다.

일렁이는 물속에 내 고향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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