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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2-03-14 조회수 : 4,374
제 목 : 2월의 주문진

2월의 주문진

 

- 출발

요즈음 들어 가족 전부 모여 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 되었다.

대학생인 큰딸과 둘째딸은 평상시에는 한가한 것 같아도 어디 같이 가자하면 바쁘다할 뿐만 아니라 몇 푼 벌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탓도 있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계획만 세웠다가 취소하기를 몇 차례를 거쳐 오늘에야 비로소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큰 딸내미가 친한 친구와 약속이 있다하여 이번엔 빼놓고 가야 하나 보다 하고 내심 내키지 않는 터였는데 가족과 한다면 마다하지 않던 딸내미인지라 못내 아쉬워하던 차였다.

그런 상황을 눈치를 잡았는지, 친구와 약속을 뿌리치지 못하고 망설이던 큰 딸내미가 가족과 함께 한다며 선선히 응해 주어서 어찌나 고맙던지!

매년 있어 왔던 방학 끝나기 전 여행을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었다.

 

지금이 2월 말일이니 오늘이 지나면 개학이 되어 더더욱 쉽지 않을 터여서 무리하다 싶게, 다그치지 않으면 영영 이 기회를 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어서 선선히 응해주는 딸내미들이 고맙기만 하다.

예전 같으면 여행 중에 먹거리 준비로 바쁠 아내지만 이번 여행은 그냥 가지며 지갑만 달랑 들고 출발한 것이 이번의 색다름이라면 색다름이기도 하다.

준비된 음식이 아니라 사먹는다 하니 딸내미들은 좋아라! 하지만 매양 밖에서 사먹는 터라 내키지 않지만 그 준비하기 힘들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아내가 고맙기조차 하다.

그런 다짐 속에 출발하였지만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준비해 여행하는 동안 비록 차량 속에서 이기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천성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이렇듯 순항할 것 같은 출발은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가다가 휘발유 값 싼 곳에서 가득 넣고 출발하려는 생강으로 주유소에 이르렀는데 주유하고 지갑을 찾으니 지갑이 없다.

할 수 없이 아내 카드로 값을 치루고 그냥 가자는 내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기어이 집에 가서 가지고 가자한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갔다가 출발하는 과정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원!

그야 내가 잘못한 것이니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게 다시 집에 들렀다, 출발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마지막 스키장 가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밀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자동차는 막힘없이 싱싱 달려 주문진으로 향해 갔다.

 

- 춘삼월인 삼일절

때는 2월을 지나 삼월이 되었지만 며칠 전만 하더라도 영하 10도를 웃도는 한겨울이었다.

며칠 사이 봄 날씨 같았지만 2월을 무색케 할 만큼 한겨울이었다.

봄도 아니요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를 마주하고 가는 여행이라 애매했다.

바닷가에 가는 것은 한겨울이라 아무래도 좀 그렇다.

그것도 어린 딸내미 데리고 바람이 찬 바닷가는 아니다 싶었다.

그렇다고 눈 산을 오르거나 걷는다는 것도 걷거나 등산은 사색을 하는 딸내미들인지라 엄두가 나질 않았다.

무엇하나 격에 맞지 않는 여행을 가고 있어, 어디를 어떻게 가야하는지 참으로 고민스러웠다.

고민 끝에 말 그대로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삼월이면 봄이다.

하지만 대관령에 가까이 가자 산에는 눈 쌓인 그대로다.

얼마 전 폭설이 내렸다 하더니 그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는 것이다.

조잘조잘 큰딸과 둘째딸의 수다를 한참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 잦자들더니 조용해진다.

자동차만 타면 조는 딸내미들은 눈 쌓인 산들이 보일 때 쯤 다되어 모두가 잠에 들어 버렸다.

올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신나할 텐데 졸음 앞에는 장사가 없나 보다.

 

눈 쌓인 설경이 너무 좋아 뒷자리에서 잠든 딸내미를 깨우니 반응이 없고 막내 딸내미만 살며시 눈 한번 떠 아우성인 아빠의 성화에 답하여 바라보았을 뿐이다.

평소 눈이라면 꺼뻑하던 딸내미들인데 졸음 앞에서는 눈이고 머고 없었다.

아내와 나만이 그런 눈 쌓인 태백산의 화려한 자태를 맘껏 누렸을 뿐이다.

눈이 내린 대관령 휴게소에 다다라 잠을 깨우는데도 여전히 반응이 없고 막내딸과 나만이 밖에 나와 눈 위에서 눈싸움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이다.

 

- 주문진항

대관령을 넘어 주문진항에 도착하니 주문진항으로 모여드는 자동차가 너무 많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간신히 자동차를 세워두고 주문진항으로 향했다.

아내가 인터넷 TV에서 본 주문진항 홍게에 대한 정보를 접하여 주문진 항으로 행선지를 잡았었다.

요즈음 홍게 철이라 값도 싸고 맛도 좋다하여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예상한 대로 주문진항에 도착하니 홍게를 한 무더기 쌓아놓고 값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 이야기로는 요즈음 홍게 어획량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지만 시장엔 온통 홍게 뿐이다.

홍게 한 무더기를 사들고 삶아 주는 곳이 있다하여 찾았는데 값도 싸거니와 편리하게 먹을 수 있어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양도 많고 분위기도 좋아 아이들과 한참을 뜯어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니 한 가족 한울타리가 되어 산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 해산물

맛나게 홍게도 먹고 주문진항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려니 시장 특유의 다양성과 볼거리가 많았다.

갖가지 물고기와 조개류 등이 눈요깃거리로는 그만이다 싶었다.

그 숱하게 많은 복어는 주문진항을 찾아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나도 청소년기 까지 제주에서 보낸 터여서 바닷가에서 낚시를 할라치면 곧잘 복어가 물어 올라오던 추억이 많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하여 버릴 요량으로 복어 배 부분을 바닥 암반에 문지르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부풀어 오른 복어를 발로 밟아 터뜨리곤 했는데 뻥소리가 나며 터지는 것이 여간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복어를 잡을 때면 이런 장난을 하곤 하던 흔한 물고기였는데 요즈음 복어보기가 아주 어렵다고들 한다.

독이 있어 먹지 않아 근해에서 흔했던 모양인데 근래 들어 복어 찾는 사람이 많아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그런 복어인데 여기 주문진항에 오니, 복어 종류도 많고 어획량도 많아 곳곳이 복어 천지였다.

평상시에는 보기 힘든 물고기들을 요리저리 찾아보며 다니는 주문진 수산시장은 외지 사람들로 북적이게 했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한참을 시장바닥을 휘젓고 다녔다.

복어뿐만 아니라 보기 힘든 털게, 러시아 해안에 잡는다는 킹크랩, 대게 등 갖가지 게 종류와 돔류의 어류, 도루묵, 양미리 등의 어류 그리고 각종 동해안 조개류도 참으로 많았다.

특히, 동해에서 잡은 커다란 문어는 아이들에게 참으로 신기하게 보이는가 보다.

 

- 해변 가 백사장

한참 시장 바닥을 둘러보고는 양양 쪽으로 길을 잡아 출발하여 남애항에 이르러 백사장에 자동차를 세웠다.

평소 나돌아 다니기를 싫어하는 아내와 둘째 딸내미 남겨두고 큰애와 막내를 따라 바닷가에 나오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바닷가 좋기로야 어디나 다 그렇지만 날 추운 봄날 찾은 동해바다는 더더욱 즐겁게 한다.

주문진항은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항구랄 것도 없는 곳이었다 한다.

지금에야 강릉주변에서 가장 큰 항구 중에 하나지만 예전엔 조그만 나루터에 지나지 않는 곳이라 한다.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탓에 뭇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되었다.

들러보는 내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대도시 어시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동해안의 3대 미항이라고 알려진 남애항은 사람보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항인 이곳 남애항 부부 등대를 찾는다는데 오늘 우리가 본 것은 남애항 옆 백사장 주변 조그만 바위섬에 어슬렁거리는 관광객 몇 명이 전부였다.

새벽녘 해 뜨는 광경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남애항이 왜 미항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 진고개

남애항 백사장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소금강을 향해 자동차를 달리면, 강원도 특유의 시골길이 있던 곳인데 이제는 관광지로 변해 곳곳에 음식점과 펜션이 즐비하다.

냇가 전망 좋고 물 깨나 고여 있는 곳은 어김없이 음식점이다.

그 좋던 고즈넉한 시골마을은 허허로운 도시 흉내를 내고 있어 도시를 벗어나 시골마을 만끽하고자 하는 내 생각을 거두어들이게 한다.

오대산을 향해 한참을 들어갔는데도 오지였을 골짜기가 유흥음식점에 모텔뿐이니 길을 잘못 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럽게 한다.

금강산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소금강이건만 옛 정취나 전경은 다 어디로 가고 초라한 유흥가처럼 변해가고 있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소금강이라 처음 이름 지어 불렀던 율곡 이이가 지금에 소금강 둘러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하고 궁금해진다.

아마도 소금강이라 붙인 이름을 다시 거두어 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어느 만큼일까? 소금강을 타고 오르니 세상은 눈 천지로 바뀌어 간다.

고산지대에 쌓인 눈은 무릎을 훨씬 넘을 만큼 겹겹이 쌓여 있다.

딸내미들의 탄성을 지르며 고갯길을 구불구불 돌아, 비가 오면 땅이 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진고개에 이르렀다.

오대산은 그 유명한 상원사와 월정사가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오지에 오지여서 전란에도 적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 여기고서 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왕실서고가 있던 곳이 오대산이다.

얼마 전 상원사 불상에서 세조 대왕이 금강산에 갔다가 이곳에 들려서 평소에 앓아오던 피부병이 나으라고 넣어두었던 왕의 속옷이 발견되었다 한다.

세조는 조카로부터 왕관을 빼앗는 과정에서 숱한 생목숨을 빼앗고 멀쩡한 사람들을 노비로 삼아 충성스런 부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악몽에 시달리고 고질적인 피부병으로 시달리다 죽었다는데 괴롭히던 피부병을 고치려고 고귀한 몸 이끌고 이 아름다운 산에 올라, 병이 고쳐질까 하고 불상에 속옷을 넣어두었는데 500년이나 묵은 그 비단옷에는 피고름이 묻어있었다고 한다.

이래저래 신비한 산이 오대산인데 딸내미 어려서 보고 읽었던 오세암의 배경도 이곳이다.

그 슬픈 이야기가 서린 곳이라 그런지 오대산 자체가 슬퍼 보이는 것은 나 만에 감정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월정사를 다녀온 아내가 별로 볼 것이 없다하여 월정사에 가는 것은 그만 두었지만 오대산 정상을 향한 등산을 꼭 하고 싶은데 쳐다만 보고 돌아서야 했다.

눈 쌓인 오대산 비로봉을 아내와 꼭 한번 등반하여 오르리라! 하고 가슴 속에 새기고서 말이다.

 

진고개 휴게소에 자동차 세워두고 눈싸움도 하고 이곳저곳 둘러보고 눈 쌓인 산정을 한참을 둘러보았지만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그에 걸맞은 장비를 가지고 오지 않은 우리로서는 더 이상 산 속으로 갈 수는 없었다.

 

- 돌아오는 길

봄도 겨울도 아닌 계절, 아침을 한 겨울이오 낮에는 봄날이나 다름없는 날씨 속에 떠난 우리네 가족여행은 이리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면 항상 그렇지만 떠날 때와는 달리 오는 길에는 아이들이 뒷좌석에서 잠들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한참을 떠들어대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이젠 아내와 나만이 외로운 귀가길이 되는 것이다.

  2012년 2월 29일 동해안 가족 여행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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