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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10-05 조회수 : 3,916
제 목 : 노지방 5 (송별식)

노지방 5 (송별식)

 1. 떠난다는 것
수리산을 떠나 비산동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속된 본사의 결딴에 따라 선택의 여지없이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리산을 떠나게 되었다.
내가 수리산을 떠나는데에는 여러 가지 곡절과 사연이 깃들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수리산을 떠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나에게 있었다.
그때 마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남겨둘 직원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 험난한 생활을 함께 겪어내며 지나온 시간들이 너무나도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비록 대명천지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좁은 사무실에서 적어도 우리끼리는 즐겁고 정 넘치는 세월이었다.
하나하나 독특한 특색을 지닌 사람들이었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그런 분위기 속에 일하며 지냈었다.
누구하나 서로에게 불평이나 언쟁한번 없었다.
그런 사람들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난 망설임도 없이 그 기회를 낭비하듯 저버리고 함께하기를 2년 반이 다 되었다.
그러나 그런 꿈같던 생활도 내 의도와는 다르게 각자가 제 갈 길로 가야하는 상황이 전개되니 서로가 다져온 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환경이 되었다.
아쉬움을 숨기고 박 반장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수리산을 떠나더니 이제 나와 임 주임과 나주임만이 남았는데, 자꾸만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기더니 급기야 내가 떠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처음 그런 환경이 조성될 때만 하더라도 내가 거절하면 되겠지 했는데 내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은 그 반대로 전개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떠나더라도 더 정 붙기 전에 떠나는 것이 나으려니 하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자의든 타의든 그 자리 떠나게 되니 임 주임, 나 주임, 윤 과장, 신 주임 모두가 나에 가슴을 아프게 한다.
누구하나 가슴 아프게 하지 않는 분이 있겠는가마는 나그네처럼 지나 갈 사람이라 여긴 나주임 그리고 이제 막 들어온 신주임, 이제 막 자리 잡아 안정을 취한 윤 과장, 그리고 긴 세월 그 모진 비바람 헤쳐 온 임 주임인지라, 내 떠나도 어쩌랴 싶었던 맘 또한 한 구석 자리하고 있었다.
막상 상황이 나 아닌 다른 곳에서부터 결정되어 진행되고, 그 결과를 바라보는 윤 과장의 충격은 컸나 보다.
지금에야 윤 과장도 다소 안정되어 제 할 일 잘하고 있지만 그때 윤 과장의 반응은 나를 특히나 아프게 했다.
나로 인해 수리산에 들어와 나를 믿고 일하던 사람인데 뿌리치고 가는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수리산을 나와 비산동으로 왔지만 한 동안 난 그곳에 몸담았던 일들로 인해 적응이 싶지 않을 듯싶었다.

2. 또 만난다 것
가서 인수는 일, 인계하고 떠나는 일 등 많은 일들이 재빠르게 이루어지고 난 비산동에 둥지를 틀기위해 매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터여서 수리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혹은 두고 온 사람들이 어찌 지내는지 감정 더듬기가 쉽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해야 할 수리산에 두고 온 사람들의 일보다 이곳에 사람들과 어찌 관계를 맺고 유지해야하는지 하는 코앞에 이른 현안이 더 커 보였다.
수리산과 달리 직원들도 많고, 훨씬 많아진 입주민, 그리고 우글거리는 동대표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 없는 이곳에 내 자리를 차지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니 먼 산 바라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또 떠난 자리에 다시 얼쩡거리는 것도 후임자에 대한 도리가 아닐뿐더러 서로 정 떼는 것도 새로운 사람에 대한 적응에 도움이 될 터이니 일부러라도 모른척해야 하겠기에 더더욱 수리산에 눈길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내 나름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일로 지치고, 큰 동네 왔다하여 영전했다며 축하한다는 사람 등, 면대하여야 할 사람도 많았다.
큰 동네라고 하여 영전했다고들 하지만 우리네 공동주택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세대수 많다고 영전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급여가 획기적으로 많아지는 것도 아니요, 유명세를 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일만 많아지고 시달릴 일만 그 만큼 더 잦아지는 것 외에 별다른 것도 없는데 다들 그러니 나로서도 어리둥절해진다.

3. 김 소장의 합류
낯선 임지에서, 태어나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이 만만하고 달가운 일이던가!
이제까지 정들었던 분들이 어찌 할 거란 것을 대충 알고 있는 터여서,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생각해두지 않아도 농담처럼 건 낼 수 있는 곳에서 떠나, 이제는 생명부지 사람들에게 인사는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말을 건네면 좋아할지 아니면 언짢아 할지 고민스런 일들이 한두 가지 아닌 것이 처음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망설임이다.
모든 것이 스트레스의 연속인 나를 배려한 탓일까?
가는 사람에 대한 배웅 차 모여 술 한잔하자던 약속이 그럭저럭 2주가 다되어서야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데 신 주임이 김 소장님도 초대하잖다.
김 소장님의 사람 잘 따르는 천성 때문에 이제 저 편 사람으로서 잊을 만도 하건데 무슨 일 있을 때마다 함께 하자고 들 한다.
관리소 직원이 아니라 관리소를 책임지고 조정하고 통합하는 소장으로서의 직책은 쉬운 직책이 아니다.
직원들에겐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해야 하고 어버이처럼 돌보아야 하고 입주민에겐 마당쇠요 또 만능 해결사이어야 하는 것이 소장이다.
그런 자리 차지하고 있는 김 소장님이 누가 오란다하면 철썩 같이 가겠노라 약속해 놓고도 관리사무소 특성상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가한 것 같아도 막상 어느 순간에 무슨 일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관리소이고 그럴 때면 소장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또 한 직장의 장인 소장님 직책도 직책이거니와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요 아내다.
그런 분이니 항상 바쁠 터.
오늘 우리끼리 모여 저녁식사 다 끝나도록 참석하지 못하는 그 까닭이 소장이라는 직책 때문이리라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임 주임과 윤 과장 그리고 신 주임과 모여 막걸리를 곁들여 먹는 저녁식사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헤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모였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4. 내가 떠난 곳의 뒷이야기
어찌되었던 나는 자의든 타의든 그곳을 떠나버렸다.
이제 그곳엔 나와 성내어 싸우고, 즐겁게 웃고, 힘들여 일하는 등 숱한 일들을 남겨두고 맨몸으로 어둠이 가시면 없어지는 그림자처럼 빠져나온 것이다.
떠난 사람을 두고서 한동안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지 모른다.
나도 사람인지라 흠도 있을 것이고, 잘 한다 칭찬하는 일도 있을 것이며, 아쉬워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잘 나갔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있을까 하고 내심 두렵지만 이미 떠난 마당에 잘잘못을 따져 생각하면 어찌 맘 편히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 일부러 생각하지 말자며, 애쓰며 살아가지만 남겨두고 온 직원들에 대한 내 맘은 지금도 편해지질 않는다.
달라진 사람과 익숙해지려면 또 ‘얼마나 맘 조리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이 일어, 준 것 없어 미만해지기만 한다.
훌륭하신 소장님 오시니, 나 보다는 좀 더 나은 일할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하며 즐거워하고 좋아할까봐 은근히 샘이 나기도 하다.
어쨌거나 내 떠난 자리에 흠만 남지 않고 즐거운 기억만 남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 만 기억하련다. 

5. 새로운 이에 대한 적응
새로운 소장님이 훌륭하신 분이라 내 말하고 떠났지만 솔직히 그분에 대해서는 건너건너 들은 것이 전부여서 잘 모르겠다.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왔으니 누구보다 일을 잘 처리하실 거라 믿고 또 직원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이 쏟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이곳저곳 전전하시던 분이라고 익히 들었는데 혹시 관리소에 대한 적응이 남다른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하고,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하는 것은 내 기우에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처지이니 그저 시선도 두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 길이라고 끄덕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소장님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이 흘러들어오지만 익숙하던 사람 떠나고 낯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들어오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정 붙여 부대끼며, 나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즐겁고 행복한 관계가 유지되겠거니 하는 것이 건너다보는 사람의 속마음이다.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꼭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숙명처럼 여길밖에 하며 말을 줄이련다.

7. 임 주임님
저녁식사 마치고 식사 값을 자기가 치르겠노라고 고집 피우시는 임 주임을 떠밀고 신 주임님이 공금으로 모아둔 저녁식사비를 계산하였지만 식사 후, 2차로 마시는 술값을 기어이 임 주임께서 계산하겠노라 고집하여 술값을 혼자서 치르셨다.
정 들었던 사람들 만났으니 이야기와 느낌이 좋아서 계속 관계를 맺고 싶은 맘으로 흔쾌히 적지 않은 술값을 치르셨을 것이다.
내키지 않았다면 어찌 자신이 내겠노라고 고집까지 피워가며 술값을 내시겠는가?
우리 함께 일하며 맺은 숱한 기억들을 곱게 곱게 쌓아 담아둔 탓일 게다.
내 속내는 이분과 함께 하자고 누누이 말씀드려왔는데 나몰라라 혼자 나왔으니 편치 않지만, 나이 들어 또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 셈인데 이분이라고 그런 새로움을 한두 번 경험했을까?
유독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마음 놓이고 미안 맘 누그러지니 너무 좋다.

8. 한 잔술
자리를 옮겨 조그만 카페를 찾아서 마주 앉아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고급 칵테일을 홀짝이며 나누는 이야기와 분위기는 여전했다.
아마도 우리는 몰랐지만 옆에 앉은 사람들은 유독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언짢을 것이다.
자리를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김 소장님이 합류하니 한층 분위기가 고조되고 즐거워졌다.
내가 떠났으니 아쉬워해야 할 자리인데 잘 갔다는 듯 즐거워하니 이를 어찌 표현해야 할지 원!
3시간이 넘도록 앉아 떠들었는데도 마치 10분 지난 듯 아쉽다.
꼭 나만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다 아쉬워하는 것은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밤은 깊어 헤어져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9. 헤어짐과 만남
송별식이니 앞으로 헤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우리가 오늘 모인 것이다.
어쨌거나 즐거웠던 이제까지의 기억은 말 그대로 기억이고 추억이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다시는 그런 생활을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이제까지의 소중하고 즐거운 기억과 추억을 되새기고 유지해 나가려면 그만한 나름의 관계에 끈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3개월에 한번 만나 그 즐겁고 소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가자고 약속하고 난 기다리고 있다.
우리 산에 가는 날을….

2011년 9월 어느 날

한바위 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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