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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8-17 조회수 : 4,702
제 목 : 2011년 여름 휴가 (제주여행 2일째)

2011년 여름휴가 (제주여행 2일째)

2. 둘째 날

밤새 다리 통증으로 들척이시며 잠 못 이루던 어머님이 새벽부터 아침을 준비하려하니 아내가 동참하여 도시에서는 새벽이지만 이곳에선 아침인 식사가 나오니 말 그대로 정성이 담긴 아침 밥상이다.
우리 부모님 네들의 삶 속을 들여다보면 아버님 보다는 어머님들이 훨씬 생활의 고통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더 힘들어 하셨을까 가늠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지만 익히 보며 자란 우리들 눈에 들어오는 어머님들의 고통은 남달라 보이는 것이다.
비록 아내와 같이 준비한 아침이기는 하지만 어머님이 손수 준비한 아침 밥상을 마주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 한라산 산행
한라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1,950m이다.
청소년기를 제주에서 보낸 나로서는 처음 한라산 산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30년도 더 지난 일이고 보면 차라리 지금의 산행이 처음이나 다름없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길은 영실 코스, 어리목 코스, 돈내코 코스, 성판악 코스, 관음사 코스가 있는데 요즘 휴식년으로 인하여 한라산 서쪽으로 오르는 길인 어리목, 영실, 돈내코 코스는 윗세오름까지만 출입이 허용되고, 윗세오름부터 정상까지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한라산 정상에 오르려면 성판악이나 관음사 코스로 산행을 해야 한다.
예전 산행은 어리목과 영실 코스로 산행을 많이 했었다.
지금에야 길이 잘 닦여 거의 해발 1,300m까지 자동차가 올라가지만 내가 산행을 했던 시절에 사정은 지금과 달라서 1,100도로에서 시작해 상당한 거리를 걸어 올라야 했기에 현재 정상 산행이 가능한 성판악이나 관음사와 차이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었다.
산행길이 짧은 영실이나 어리목 코스를 이용해 정상까지 올랐던 사람들이 많아 한라산 산행이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영실이나 오리목 코스가 정상으로 향한 길이 휴식년에 들어간 이후로는 한라산 산행이 눅눅치 않아졌다.
성판악이 9.6㎞ 이고 관음사 코스가 8.7㎞나 되니 정상까지의 산행은 웬만큼 다잡지 않으면 쉽지가 않다.
관음사를 오를까 아니면 성판악으로 오를까 망설였지만 등산코스의 성격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선택이 쉽지 않았다.

‘성판악’ 이름의 유래는 산 중턱에 암벽이 널 모양으로 둘려 있는 것이 성벽처럼 보이므로 `성널오름′ 또는 한자어로는 `성판악′이라고 한다.
성판악 오름은 따로 있지만 우리가 오르려하는 산은 한라산 정상이므로 `성판악 오름′이 어딘지 쳐다보지 않고 지나쳤으니, 성판악 오름을 “눈으로라도 올라보고 올 걸!” 하는 아쉬움이 간절하다.
성판악코스를 선택할 때는 몰랐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면서 ‘성판악코스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던지’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로부터 성판악 코스는 산행 길이 완만하고 무난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관음사 코스에 대해서는 얻어 들은 정보가 없어서 막연히 코스가 긴 곳이니 성판악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관음사 코스의 경사는 성판악 코스와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성판악에 비해 계단이 너무 많았다.
어쨌거나 동생이 성판악까지 자동차로 태워다 주어, 성판악코스로 정상에 올라 관음사로 내려갈 수 있었다.

대충 점심거리를 준비하여 등산길 거리가 얼마 되는지 선(先)지식도 없이 출발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한라산 특유의 자연경관이 펼쳐지니 아내와 난, 탄성에 탄성을 토해내는 산행이었다.
완만하고 잘 닦인 산행길이고, 무엇보다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된 주변 모습은 원시림 그대로여서 안도하며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가득 차 넘치는 등산객으로 한라산이 몸살을 앓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경사는 완만하고 우거진 숲으로 햇볕을 가리니 고원지대라는 특성까지 더해져 한 여름 더위는 간데없고 가을처럼 시원하다.
특히 계단길이 아니라서 걷는데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아, 무엇보다 좋았다.
750m에서 시작된 산행 길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 잘 설치되어 있고, 100m 단위로 해발 높이를 표시해 놓아서 지금 얼마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해발높이 멋있는 표지석

수령(樹齡)과 수목의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이 자란 나무와 끝도 없이 펼쳐진 조릿대 숲이 외경스럽기 조차 했다.
어딘가에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니, 지나는 사람 없이 아내와 단둘이라면 음산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에 휩싸일 수도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밋밋한 등산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산행길이니 쉽지는 않을 터, 힘들다 하고 뒤돌아 볼 만큼 이르니 솔밭샘 대피소가 있다.


                                                                솔밭샘 대피소 샘물

잠시 쉴 틈도 없이 샘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니 성판악 초입과는 달리 나무숲 뿐 만 아니라 조릿대 숲도 ‘고산지대의 특성에 따라 왠지 달라져 보인다!’ 싶은 곳에 이르러 쳐다보니 “사라 오름”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높이가 해발 1,400m 정도라고 하니 아내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셈이라 신기한 모양이다.
높은 산이래야 용문산 정도가 고작이니 1,400m 높이는 그렇게 생각될 만도 하다.

곧장 정상으로 향할까 아니면 사라 오름으로 향할까 망설이던 차에 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등산객이 있어 물으니 하산 길에 들르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성판악 코스로 정상에 올라 내려오는 길에 많이 들르는 모양인데 우리는 하산길을 관음사 코스로 내려올 요량이었다.
선택에 여지없이 힘들기는 해도 사라 오름으로 향했다.
이제까지는 완만한 산행 길이었는데 사라 오름으로 향하는 길은 여간 경사진 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5.8㎞를 걸어 왔으니 힘들어 하던 차였다.
경사진 길인데다 계단길이어서 그냥 정상으로 향할 걸 하는 마음이 꾸역꾸역 치밀어 오를 쯤에 ‘사라 오름’ 분화구가 한눈에 들어오니 힘들었던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산속 깊은 곳, 산 정상에 물이 채워진 분화구라니!”
눈으로 목격하지 않고는 믿기 어렵다.
딴 세상 같은 분화구 안으로 들어오면 내가 사는 세상은 없는 듯 신천지처럼 생각되어 진다.
사람들의 통행이 얼마 전에 허용되다 보니 잘 보존되어 있고 사람의 손 떼가 묻지 않아 우리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사람 다니는 길을 나무로 만들어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또한 고마웠다.
나무로 된 길을 따라 분화구 남쪽 산으로 올라, 서귀포 쪽을 바라보니 안개만 가득해 도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거, 완전 망했네!”하고 돌아서려는데 거짓말처럼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드러나니 장관이다.


                       
안개속의 전경                                         서귀포와 바다가 희미하게 드러난 모습

가려져 있다가 갑자기 드러난 경관이라 특히나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저 멀리 마을과 바다가 순식간에 펼쳐지더니 또 어느새 안개로 뒤덮여 사라진다.
그야말로 마술이 펼쳐진 것처럼 혼란스럽게 한다.
저 아래 여객선이나 도시에서 볼 적엔 구름이었는데 산 위에서 보니 안개다.
한참을 산 너머로 휘몰아쳐 넘어가는 안개의 향연을 지켜보다가 분화구 쪽으로 다시 내려오다 보니, 오를 적에는 몰랐는데 내려오다 보니 묘지가 보인다.
산에 올라 사고로 사망한 시신을 옮겨 올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그곳에 매장하였는지 아니면 산 아래 사람들이 풍수 좋은 곳을 찾아 이곳에 매장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접근이 불가능하던 곳인데 어찌 이곳이 묘지가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묘지에는 당연히 잔디가 심어져 있어야 하지만 이곳에 묘지는 자릿대로 덮여 있었다.
이곳의 특성상 잔디로 가꾸어진 묘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가꾸고자 하여도 가능하지도 않을 듯싶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묘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숲이 우거져, 찾거나 돌보는 이도 없어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이나 힐끔 쳐다 볼 뿐이니 풍수지리는 좋은 자리일지 몰라도, 결코 묘가 있을 좋은 자리는 아닐 듯싶다.


           사라오름 분화구와 골풀                                                       자릿대로 뒤덮힌 묘지

사라 오름 분화구의 투명한 물은 참으로 깨끗해 보인다.
등산객의 손이 닿지 않아 그렇기도 하거니와 바닥이 화산활동으로 인한 작은 돌조각으로 뒤덮여 있어서 출렁거려도 탁한 물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여기 저기 자란 “골풀”이 흐드러지게 펼쳐진 물속에는 물고기는 없는 듯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가뭄이 지면 물이 모두 말라서 그런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올챙이가 사람에 간섭 없이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한가로워 보이던지!

사라 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백록담 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드니 완만하던 이제까지의 산행 길과는 사뭇 다르게 제법 경사가 심한 길이 계속된다.
‘사라오름’이 해발 1,400m이지만 ‘사라오름’에서 내려와 다시 백록담 정상 산행길로 접어들면 해발 1,300m가 된다.
이곳부터는 높은 산 특유의 경사와 바위 돌길이 시작되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등산객은 힘들어 되돌아갔는지 점점 줄어들고 주변경관은 점점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해발 1,500m 지점에 오르면 진달래 밭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까지, 하절기에는 오후 1시30분까지 올라와야 정상으로 향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너무 늦게 오르면 어둠으로 인해 하산 길에 문제 생길 수 있기에 오후 1시30분이면 입산을 통제하여 오던 길로 하산하도록 한다고 한다.
난 11시쯤에 도착하여 무난히 볼일 보고 출발하니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해발 1,500m가 넘다 보니 햇빛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 주던 원시림은 사라지고 키가 작은 고산목만 자생하고 있느니 그늘 없는 길을 걸어야했지만 다행이 안개가 서리고 안개비마저 내려니 덥지는 않았다.
헌데 이러다 정상의 정경은커녕 비 맞으며 하산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밀려온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내내 햇볕 없이 안개와 안개비가 오락가락하며, 세찬 바람이 불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였지만 안개에 가렸다 사라졌다 하며 보여주는 경관은 신비함 그 자체다.
한라산은 늘상 안개비가 내리거나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아, 땅이 습하여 바위고 나무고 할 것이 없이 이끼가 뒤덮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이끼가 나무는 무슨 나무인지 혹은 바위의 원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게 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나무는 드물어지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과 키 작은 풀만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남한의 최고봉인 정상의 텃세일까?
정상에 다다를수록 경사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그 경사를 오르는 난 힘들어만 갔다.
안개로 인해 어디쯤 일까하고 두리번거리는 내 눈에 어느새 정상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 왔다.
드디어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이른 것이다.

온통 안개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정상을 알려주는 고목을 깎아 만든 표지판에 “한라산 동능 정상”이라고 멋스럽게 쓴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한라산을 3번이나 올라 백록담을 보았지만 딱 한번 물이 반쯤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었을 뿐 두 차례는 안개로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도 안개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맘, 얼마나 서운턴지 원!
“에라!” 가지고온 김밥과 막걸리나 마시고 내려가자며 아내와 막 먹을거리를 펼치고 먹으려는데 어떤 이가 ‘보인다!’하고 소리친다.
그러자 점심을 먹는 이, 주전부리를 하는 이, 사진이나 찍자며 셔터를 누르던 이, 모두가 갑자기 백록담이 잘 보이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얼떨결에 아내도 나도 먹던 먹을거리를 어찌 내려놓았는지도 모른 체 그곳으로 달려가니 정상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사라져 간 그 자리에 백록담의 진면목이 빼꼼히 드러내니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그 탄성은 웅장함에 탄성이 아니라 탄식에 가까운 것이다.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사진에 찍힌 멋들러진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백록담은 물도 많아, 찰랑 찰랑 넘칠 듯 사뭇 넓어 보일뿐더러 사진 촬영의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찍어 놓은 것이니,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하던가!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 백록담은 멀리서 보고 있는 탓도 있지만 말 그대로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아내는 누가 듣거나 말거나 ‘에 게게!’하고 소리친다.
말 그대로 실망도 이만 저만 아닌 모양이다.
예전 언젠가 내가 올라 왔을 때는 아예 물이 말라 있던 기억도 있었으니 난 그래도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는데 찰랑찰랑 물이 넘칠 것처럼 물 많던 웅장한 사진만을 보아온 사람들의 눈에 보인, 오늘의 저 백록담은 참으로 한심하게 보일 만큼이니 탄식도 그다지 과장은 아닌 듯싶다.
그래도 백록담은 둘러쌓고 있는 능선은 제법 웅장해서 백록담의 초라함을 감싸주는 듯했지만 그런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안개가 백록담을 감추고 만다.
인심 야박하게도 안개는 단 2분을 넘지 않게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안개로 인해 보이지 않는 백록담을 등에 지고 다시 또 김밥에 막걸리를 맛나게 먹고 있노라니 또다시 누군가 ‘보인다!’하고 소리친다.
이번에는 허겁지겁 일어나 가지 않고 한번 경험이 있는 터여서 느긋이 백록담을 감상하니 이번에도 2분을 넘기지 않고 그 모습이 사라진다.
비록 아담한 담수호인 흰 사슴이 노니는 연못이라는 뜻의 백록담은 장엄한 주변 능선과 어우러져 큰 것과 작은 것 그리고 거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니 쳐다보는 나그네의 발길을 묶어둔다.
저쪽 서쪽 능선과 북쪽 능선은 괴암 괴석의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여성적 백록담과 거친 암벽으로 된 능선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지금 안개로 인해 한라산이 가진 진면목을 볼 수 없어 못내 아쉽다.
내가 서있는 동쪽 능선은 구상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완만한 능선이어서 서쪽과 북쪽과 완연히 대비된다.
몇 번을 그렇게 보였다 말았다 하는 백록담을 바라보다가 관음사 코스를 향해 발을 옮기니 ‘또 어찌 저 먼 8.7㎞ 등산길을 내려가나’ 하고 아득해 진다.

때마침 딸내미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받아보니 “지금 제주시 중앙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더위가 우리를 통닭으로 만들고 있어요!”하며 너스레떨고 있다.
너스레라고 받아 넘기기에는 그 숨소리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 같다.
여기 한라산 정상은 헤쳐진 옷자락을 여미어야 할 만큼 으스스 춥기까지 한걸 보면 저 아래 도시거리와 너무나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난 요리조리 사진을 찍으며 서서히 하산을 시작하니 요상한 나무와 그 나무에 맺힌 요상한 열매가 눈에 들어온다.
한라산 구상나무가 많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눈여겨 본 적은 처음이었다.
예전 한라산 등산 때에는 그런 나무가 있으려니 하고 지나쳤기에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다.
생각 없이 지나쳤던 구상나무는 참으로 요상하게도 생겼다.
구상나무 군락지는 제법 넓게 펼쳐져 자라고 있는데 그 수령(樹齡)이 제법 되어 보인다.
간간히 보이는 주목나무 또한 그 수령(樹齡)이 제법 되어 보이지만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내 알 수가 없다.
군데군데 주목나무가 어인 일인지, 죽어 껍데기가 벗겨져 나간 탓에 속 내피가 하얀색으로 윤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태백산에 올랐을 때 보았던 주목나무의 모습을 이곳 한라산에서도 볼 수 있으니 높은 산에 오르는 이들만이 눈에 잡을 수 있는 괴이한 전경이다.


                                       
구상나무                                                                     죽은 고산목

안개 속을 헤치고 하산 길을 걸어 내려가니 간소한 전망대가 있어, 사람도 없고 해서 쉬어갈 요량으로 앉아 있으려니 순간 안개가 걷히고 상상하지 못했던 산 아래 전경이 펼쳐진다.
왕관능 오름과 삼각봉 오름과 장구목이 화려하게 수놓아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오게 한다.
한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관음사 코스로 내려가다 보는 풍경이라 한다더니 정말이지 절경이다.
절경에 대한 시샘일까?
어느새 또 안개가 입 벌어지게 하던 광경을 빼앗아가 버린다.
도저히 다시 한 번 보지 않고는 못 내려갈 것 같아 기다리는데 지나가는 등산객이 볼만하느냐 묻기에 못보고 가면 후회할 거라 했더니 그 말, 책임 질 수 있느냐 되묻는다.
사람마다 느낌이란 다른 법이니 머뭇거리고 있는데 안개가 걷히고 절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되묻던 사람들 탄성으로 소리만 치는 게 아니라 벅찬 감동에 펄쩍거리기조차 한다.
한라산에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가 바로 저 장구목이다.
장구모양으로 생겨서 장구목이라고도 하고 개미허리처럼 생겼다하여 개미목이라고 한단다.
장구목 아래는 끝없이 펼쳐진 나무 한 구루 없어 잘 가꾼, 마치 잔디밭처럼 보이는 너른 평지가 보이는데 잔디가 아니라 자릿대 밭이다.
제주 한라산 거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것이 자릿대인데 장구목에 자생하는 자릿대는 참으로 아름답고 장대하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고 있다가 서서히 발길을 옮겨 하산을 시작하여 얼마만큼 내려오니, 야생화 여러 종류가 피어 생글거리고 있다.
뭍에는 한약재로 쓰인다하여 모두 캐버려, 그 흔하던 엉겅퀴는 씨가 말랐건만 여기 한라산에는 흔해 빠진 야생화다.
가까이 가기 힘들리만치 요란스런 가시로 치장한 엉겅퀴는 잎과 달리 꽃은 참으로 예쁘다.
엉겅퀴 말고도 산수국, 구슬봉이, 술패랭이, 양지꽃 등등.
그 외에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어 예쁘고 귀엽다.
야생화는 꽃이나 꽃잎이 유독 작아 소담하게 보이는데 아마도 고산지대의 혹독한 날씨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산길에서 찍은 꽃

내려오다가는 쳐다보고 또 내려오다가는 쳐다보는 한라산 정상은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눈 맛을 시원하게 한다.
비록 가파른 경사지 산길을 내려오느라 힘들었지만 한라산 경관에 취해 내려오다 계곡을 건너니 바위 밑에 샘이 있다.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셨더니 온몸에 피곤이 밀려온다.
한라산 절경에 눈이 팔려 몰랐는데 이제 보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힘들어 끙끙거린다.
이제까지 길가에 앉아 쉬는 사람을 잘 볼 수 없었는데, 쉴만한 곳도 아닌데 아무렇게나 앉아 쉬고 있는 이들이 곧잘 보이니, 모두가 탈진상태 모습 그대로다.

시원한 생수 물병에 받아 마시고 수건에 적셔 목에 감고 둘러보니 삼각봉의 깎아지른 삼각봉 절벽이 눈에 들어오고, 위태로운 절벽 산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삼각봉을 돌아오면 삼각봉 대피소에 이르게 된다.
새롭게 단장한 삼각봉 대피소는 저 아래 제주시가 한눈에 보이지만 그런 정경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긴 산행에 지친 아내와 난, 이제 경치고 머고 없이 피곤하고 힘든 다리를 옮겨 걷기에 바빴다.
지나치는 모두가 다들 힘들어 하는 모습들뿐이니 쉽게 생각하고 올랐던 대가를 혹독히 치르는 이들이 많다.
삼각봉을 지나면 나무숲이 펼쳐져 있어서 눈에 보이는 경치도 없고 계단 길의 지루함만이 가득한 힘든 하산길이 길게 길게 이어진다.
매미의 아우성이 그 길 내내 들려오니 지겹고 지겹다.
살다 살다 이렇게 많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는 처음이었다.
말없이 묵묵히 걷던 아내가 갑자기 짧은 고성으로 괴성을 지르기에 깜짝 놀라 왜냐고 물으니 저 매미 소리가 지겨워 소리친 것이란다.
난 공연히 자지러지듯 놀랐다.
아내가 소리치는 경우는 어수선한 딸내미들에게 뿐인데, 그도 좀처럼 들을 수 없었는데, 주변에 사람도 없이 걷다가 갑자기 소리치니, 힘없는 가장으로 살아가는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이나 저지른 것’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것이다.

그러고서도 얼마쯤일까?
초등학생 아들 둘과 그에 아버지가 겨우 겨우 산길을 내려가고 있어, 말투가 제주 사람 같지 않아 아이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경기도 의왕시란다.
나도 같은 의왕시에 살고 있기에 호기심이 일어 무슨 동이냐 물으니, 내가 살고 있는 같은 동네가 아닌가!
그것도 내가 사는 바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다하니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내 딸이 다니는 같은 학교이고, 지금 말대답하는 아이가 6학년이라니 얼마큼 뒤쳐진 그의 동생은 보통 두 살 터울일 테니 4학년 아니겠는가!
내 딸도 4학년, 소름이 돋는 우연에 일치다.
초등학생으로서 그 긴 한라산 등산을 해낸 것 자체가 대견스러워,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고, 말하기도 힘들어 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지나쳐 서둘러 내려가니, 지나쳐 뒤로 밀리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환자나 다름없다.
절름절름 걷는 모습이 안쓰럽기조차 하니 한라산 등산 거리가 20㎞라는 사실이 실감나게 느껴져 온다.

-. 금릉 해수욕장
관음사 쪽으로 미리 와 기다리는 동생의 차량에 힘든 몸을 실어 금릉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산행에 참여하지 않은 딸내미들이 기어이 ‘바다에 가겠다!’ 우기니 별수 없이 바다로 향하기는 해도 천근만근인 몸을 지탱하기도 힘드니, 맑고 시원하고 싱그러운 바다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재축하는 딸내미 성화에도 흥이 나지 않는 나는 바닷가 주변만 서성일 뿐 물놀이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데, 어린 딸내미를 위해 아내가 바닷물로 들어간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고 나면 샤워도 해야지 옷도 갈아입어야지 등등.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것은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다.
등산 후 피로가 나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텐데 바닷물에 몸을 담구고 딸내미와 놀고 있으니 딸한테 미안치만 아내에게도 미안한 맘이 인다.

외지 사람들은 제주 서쪽 해수욕장 중에 협재해수욕장을 많이 찾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곳 제주 사람들은 협재해수욕장 보다는 바로 옆 금릉 해수욕장을 더 많이 찾는다.
협재 해수욕장의 백사장은 넓고 아름답지만 금릉은 그 보다 작을뿐더러 바로 앞에 비양도가 있어 먼 바다를 보는데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 일게다.
이곳 제주사람들이야 먼 바다를 매양 보는 것이니 몸 식히며 물놀이하는데 만 맘이 쓰이겠지만 뭍사람들은 한껏 펼쳐진 바다 풍경을 보고 싶어 하리라.
바다에 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고층 건물과 산으로 앞이 틀어 막힌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앞이 확 트인 바다의 느낌은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금릉의 서쪽에 노을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포구 쪽 방파제 끝과 지는 태양이 교묘히 어우러지며 바다로 사라지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모른다.
비록 바닷물 속으로 퐁당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바다 끝에 살짝 걸친 구름 속으로 사라지며 바다에 드리운 붉은색 노을은 그곳에서 보고 있는 이들 만의 감동이다.


                                                                             
금릉해수욕장 노을

저녁식사를 준비해두고 기다리시는 부모님의 재촉에 대충 몸을 씻고 서둘러 출발하려니, 어둠이 내린 것으로 보아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여름의 해질녘은 오후 8시 무렵인데 그 시간이면 농촌은 한밤중이나 다름없다.
그제야 출발하니 무척이나 시장하신 아버님의 채근이 심하셨는데,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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