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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8-17 조회수 : 4,159
제 목 : 2011년 여름 휴가 (제주여행 3일째)

2011년 여름 휴가 (제주여행 3일째)

3. 셋째 날

잠자리 바뀌면 좀처럼 잠들지 못하던 나다.
잠들었다 해도 깊은 잠에 들지 못해 애먹는데 이날 밤은 달랐다.
산행의 노고로 죽은 듯 자고 일어나니 아침 7시가 넘었다.
아침을 대충 때우고 아내와 어머님은 텃밭으로 나가 고부간이 농사일이다.
남들은 고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하여 맘 상할 때가 많다고들 하지만 지금 저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고부간이 아닌가 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웃음소리가 방안까지 흘러들어오니, 바라보는 난 어머님과 아내가 너무나도 고맙고 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빌려준 자동차를 끌고 애월면 하귀리부터 시작된 바닷가 해변도로를 따라 얼마쯤 가니 구엄리, 중엄리, 신엄리 해변길이 나타난다.
구엄, 중엄, 신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를 보낸 주변 마을이다.
중학교 학창시절에 여름철이면 매일 주변 3개 마을 바다 어딘가에서 보냈다.
특히 내 살던 집에서 가장 접근이 가능한 중엄마을 앞 바다에서 주로 놀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와 그 시절 이야기를 쏟아 놓으니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딸내미들이 내가 바닷물에서 나와 민물에 몸을 씻던 곳으로 가더니 발을 담구며 그 시절, 지금 큰 딸내미 보다 한참 어렸을 아빠를 떠올리며 재미있어 한다.
기괴하게 생긴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지내고 돌아서려니 더위도 이런 더위가 없을 듯싶게 햇볕이 작렬하는 듯하다.
하귀에서 시작된 해변도로는 꽤나 길어 한참을 가니 제법 긴 거리다.
하귀, 구엄, 중엄, 신엄, 고내, 애월읍을 지나 곽지리에 이르니 이제야 끝이 난다.
아이들이 에메랄드빛이 저런 거냐며 묻기에 아내가 쪽빛 바다라고 표현하니 그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멋있고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바다 속 바닥이 모래인 경우에는 바닷물 색깔이 달리 보이는데 마치 얼룩처럼 이곳저곳에 그런 곳이 많다.

예전에 큰고모가 아내에게 한치물회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딸내미들에게 맛이 있었노라 이야기 해 주었나 보다.
한치물회가 맛있을 것 같다며 큰 고모에게 전화해서 만들어 달라고 조르란다.
내 동생이기는 해도 평상시에 같이 지내는 사이도 아니어서 1년에 한 번도 마주 하기 어려워 아무 말이나 할 처지 아니다.
그런 까닭에 요리조리 핑계를 대고 있노라니 이제는 사달라고 졸라댄다.
아내는 안 된다는 눈치이지만 그럴 때 면 좀 더 수월하게 들어주는 아빠를 향하여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니 안 들어 주고는 견딜 수가 없다.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 금릉포구 물회집을 찾아 먹으니 그 맛이 예전만 못했다.
어제 밤, 바다에 오징어 배가 불을 환히 밝히고 고기잡이를 하기에 남동생에게 물었더니 모두가 한치 오징어잡이를 하는 배들 이란다. 
잘 잡히지 않아 워낙 가격이 비싸니 다들 저렇게 열심히 바다로 나가 잡히지 않는 한치 잡이에 열심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오늘 먹은 한치물회 맛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한치 오징어가 싱싱하지 않아 그런 건지, 상한 맛이 나서 먹기가 역겨운 데가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맛있다며 먹기에 대충 때우고 금릉 포구에 잠시 들러 해변을 바라보았다.
한림읍 금릉리의 옛 이름이 ‘베렝이’이다.
그래서 이 포구 이름이 ‘배령포’라 하는데 ‘베렝이’라는 마을에 있는 포구라는 뜻일 테니 그 뜻이야 별것 아니지만 이름은 별스럽다.
옛 이름 그대로 쓰면 좋은 것을 왜 금릉이라 했는지 안타깝다.
볼 것 없는 ‘배령포’를 출발하여 수월봉을 향하니, 중간에 말 농장이 보였다.
보기 드문 백색 말이라 아이들이 지나친 자동차를 돌려 다시 그곳으로 가잔다.
하는 수 없이 후진하여 백마가 있는 곳으로 가서 실컷 사진을 찍고 한경면 해변도로를 향하였다.

내비게이션 없이 기억을 더듬어 가는 길이라 수월봉이 저긴데, 앞 농로에서 몇 바퀴를 돌아 수월봉에 오르니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 수월봉이다.
수월봉에 올라 바라보면 첫째는 안 불던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주 어느 바다보다 짙은 푸른 바다가 보이고, 셋째는 바다 한가운데 차귀도의 멋스런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옆 건너편에는 거대한 풍력발전소 바람개비 모습이 수월봉에서 보라보면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다는 것이고, 넷째는 바다 반대편으로는 너른 들이 있고 서쪽으로는 갑파도와 마라도가 보이고, 다섯째는 동쪽으로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이다.
수월봉에 오르면 제주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월봉만 가면 제주를 다 가본 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위치한 수월봉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내용이 최근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안 들으니 만도 못하지만 어쨌거나 그 내용을 이곳에 적어둔다.
낭떠러지 어디쯤에 물 흐르는 곳이 있으니 그냥 믿으련다.

고산리 마을에 누나의 이름은 수월이고 남동생의 이름은 녹고인 남매가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홀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백약을 써봐도 효험이 없었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이 남매에게 처방을 말해 주었다. 남매는 스님이 말해 준 100가지 약초를 구하려 사방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99가지 약초는 구했는데, 한 가지 약초, 즉 오갈피를 구할 수 없었다.
남매는 바닷가를 지나다가 낭떠러지 절벽 중간에 오갈피가 있는 것을 찾아내었다. 남매는 단숨에 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절벽 중간으로 내려갈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누나가 동생의 팔을 잡고 내려가기로 하였다.
다행히 누나는 약초를 캐어 동생에게 건넸는데, 마지막 약초를 캤다는 기쁨에 동생이 그만 누나의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순간 누나는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녹고는 죽은 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샘이 되어 지금도 흐르고 있단다.

---제주도 홈피에서 찾은 것임---


수월봉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차귀도, 죽도, 누도, 남쪽으로는 마라도, 가파도가 보인다.
차귀도라는 유래는 송나라 호종단(胡宗旦)이 제주도의 지맥을 눌러 버린 뒤 중국으로 돌아갈 때, 한라산 수호신이 태풍을 불러 일으켜 호종단의 귀국 길을 막았다고 하여 차귀(遮歸)라고 한단다.
아름다운 저 앞 섬 차귀도에서 눈 돌리면 가본 적 없는 마라도가 산방산, 송악산 옆으로 희미하게 보인다.
한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지만 겨울철에는 살 에이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라 기상관측을 위해 돔을 짓고 관측소라 하니, 일기예보에서 가끔 듣는 고산 기상대이다.


                                                                   
수월봉에서 본 풍력발전소 바람개비

어느 때인가 수월봉에서 본 노을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노을이 깃들려면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므로 수월봉을 뒤로 하고 해변길을 따라 송악산으로 향하니 제주도 서쪽의 험난한 파도가 몰아쳐 온다.
바람이 불지 않아 다른 곳에는 파도가 그다지 치지 않지만 이곳 안덕면 노을 해변 길 바닷가에는 물결이 세차게 몰아친다.
그 물결의 장엄함에 아이들과 한참을 바라보다 해변 길을 따라 송악산으로 향했다.
이름하여 노을 해변도로이니 노을이 아름답겠지만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노을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니다.

얼마쯤 가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 놓은 전투 비행기 기지가 밭 한 가운데 이곳저곳에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밭을 가로질러 가다보니 참외밭 앞에서 참외를 팔고 있는 아낙이 보였다.
자동차를 급하게 세우고 얼마냐 물으니 5개 만원이란다.
크기가 상당히 큰 참외를 사려니 아내가 큰 것은 맛이 없단다.
참외 파는 아낙에게 그리 말하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하여 5개만 달라하니 당장 먹을 수 있도록 물에 씻고 있기에, 내가 “직접 밭에서 따 가면 안 될까요!” 하니 아낙은 선선히 “경 헙서!”한다.
어린 딸내미까지 데리고 참외밭에 들어갔다가 줄기나 밟으면 누가 될까봐, 그냥 참외를 받아들고 자동차로 와, 손으로 깨뜨려 나누어 먹으니 그 맛이 제법 달다.

송악산에 도착하니 주차장이랄 것도 없는 곳이라 이곳저곳에 주차하기에 도로변에 대충 주차하고 송악산으로 향하니 흰색 조랑말이 눈에 들어온다.
조랑말 타는데 5천원이라는 푯말이 있어, 값이 저렴하다는 사실을 안 딸내미들이 가만있질 않는다.
그다지 값이 비싸지 않으니 아내도 쉽게 허락한다.
막내딸부터 차례로 말에 올라 500여 미터를 돌아오니 입이 귀에 걸렸다.
넉살 좋은 딸내미들 마부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물으니 친절한 아저씨 귀찮다하시지 않고 그 부산스런 질문에 답해 주시는 모양이다.
막내 딸 와서 하는 말이 저쪽에 보이는 작은 수말이 지금 타고 갔다 온 말이 낳은 것이라고 한단다.
그렇게 딸 셋의 말 타기가 끝나고 언덕 같은 송악산에 오르니 힘들지는 않지만 엄청난 더위에 걷는 맛이 싹 가신다.
어제의 한라산 산행 후유증이기도 하지만 날이 너무나도 덥다.
송악산의 낭떠러지 절벽이 사암으로 되어 있어, 아름답고 신기하지만 지금 그런 절경을 보고 있기에는 더위로 고통스러웠다.
너무나 더운 날씨는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잊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 아름다운 송악산을 지나칠 수 없어 세심히 바라보니, 마라도와 가파도, 형제섬이 눈앞에 떠있고, 쪽빛 태평양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눈을 시리게 한다.
북쪽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우뚝 솟아있고, 작은 모슬포 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져 눈을 즐겁게 한다.
바다 물을 담아 온 시원한 바람의 감촉은 송악산을 올라와야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송악산은 '절울이'라는 속명처럼 파도와 바닷바람이 세찬 곳이다.
송악산 오름의 남동 사면에 화산쇄설성 퇴적층과 용암으로 구성된 해안절벽이 펼쳐져 있는데 그 '절벽에 파도가 부딪쳐 울린다'고 해서'절울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절'은 파도의 제주방언이다.
제주 사람들은 '파도가 친다'는 말을 '절이 운다'고 표현 한단다.
다른 것을 몰라도 '절울이'이라는 말은 절묘해 보인다.

더위에 지쳐 피하듯 송악산을 출발하여 한라산을 횡단하는 동쪽 도로에 이르니 돈내코 계곡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돈내코라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는 예로부터 이 지역에 멧돼지가 많이 출몰하여 ‘돗드르’라 하며 ‘돗드르’는 지금의 토평마을의 지명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돗’은 돼지, "드르"는 들판을 가리키는 제주의 방언이다.
‘돗드르’에서 멧돼지들이 물을 먹었던 내의 입구라 하여 ‘돈내코’라 부르고 있다 한다.
‘코’는 입구를 ‘내’는 하천을 가리키는 제주방언이다.
이름의 유래가 꽤 복잡하게 얼킨 지명이지만 재미있는 지명 이름이다.
딸내미들이 돈 내고 가라는 곳이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돈내코 계곡은 그대로 지나쳐 성판악으로 향하여 얼마쯤 달려가니 숲 터널이 나왔다.
한라산 원시림이 자라 도로를 마치 터널처럼 덮고 있어 숲 터널이라 하는데 사뭇 신기하고 좋아 보인다.
그 길이가 제법 길어 자동차로 터널을 한참이나 지나왔다.

언젠가 추석에 제주를 방문하였는데 동생이 ‘형, 한라산으로 가다보면 정말 좋은 곳이 있으니, 한번 가볼 거요!’하기에 무심히 따라 나섰는데 산으로 산으로 한참을 들어가더니 길도 없는 나무 숲 속 오름으로 올라 분화구로 들어갔었다.
무심히 따라 왔는데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니 이제껏 보아오던 정경이 아니다.
그 느낌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느낌은 생생해도 그곳이 어디쯤인지 오름의 이름은 무엇인지 모르고 그 느낌만 기억해 오다가 얼마 전에 동생에게 물으니 ‘물찻오름’이란다.
언 듯 듣기에는 물이 차있어 그런 이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물찻오름’은 물이 괸 못이 있고, `찻`은 분명치 않으나 재(嶺, 山)의 옛말인 `자` 또는 잣(城)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한다.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사람들이 분화구 못에 붕어를 풀어 놓아 물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동생은 이 분화구를 찾게 된 동기를 과장스럽게 이야기한다.
언젠가 제주도 오름을 조사하기 위해 헬기로 모든 오름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동생이 속해 있는 사진작가 협회가 관여했던 모양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동생이 사진작가 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우연히 오름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물찻오름’의 사진을 보고 반하여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였단다.
그러던 어느 날 원시림 속에 들어가 사진촬영을 할 만 곳을 찾던 중 지나가던 사람이 낚싯대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가기에 낚시질을 바다도 아니고 산속으로 가나 싶어 따라 갔더니 사진에서 보던 그 오름이더란다.

그런 기억이 깊어 제주에 갈 때마다 찾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이번에는 꼭 가보야지 해서 동생에게 물으니 이제는 그곳 앞으로 숲길이 생겨 사람들이 들 끊는다고 한다.
그곳이 잊지 못하는 곳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몇 사람 외에는 알지 못하는 미지에 곳이라는 사실이 더해진 탓도 있어 더욱 내가 가고 싶은 이유였다.
헌데 이제는 사람이 들 끊는 곳이 되었다니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워낙 가슴 깊이 새겨둔 곳이라 그래도 가야겠다고 맘먹고 찾았더니 사려니 숲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꽤나 이름 난 숲길이 되어 있었다.
사랭이 오름이라도 불리는 이 숲길에는 특히나 떼죽나무가 무척 많았다.
너무 늦게 도착한데다 ‘물찻오름’은 휴식년에 들어갔다 하니 무척이나 아쉬운 맘만 가득 담고 돌아서오니 얼마나 서운턴지!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에 물 없는 계곡으로 가더니 남들처럼 돌탑을 쌓아 올리는 놀이에 여념이 없다.

사려니 숲길을 한가로이 걷고 있자니 형님으로부터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며 전화가 왔기에 그렇게 하겠노라 했더니 빨리 오라고 재촉이시다.
어둠이 촘촘히 쌓여가는 사려니 숲길을 나와 서둘러 제주시내로 들어와 형님 댁에 이르렀다.
세탁소를 두 부부가 자영하시는데 잘 된다고 할 수 없어도 그럭저럭 무난히 운영하고 계셔서 이 어려운 경제난국에도 다행이다 싶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잔병치레를 유독 심하게 하고 있는지라 걱정되지만 요즘에는 병원을 들락거리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던 차였다.
한 집안의 맏이에다 종손인 형님은 몸이 약하지만 3자녀의 가장으로서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어도 6남매 맏이의 자애로움은 잊지 않는 분이다.
정성 다하여 만들어 준 저녁식사 맛있게 먹고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늦은 저녁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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