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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8-17 조회수 : 4,121
제 목 : 2011년 여름 휴가 (제주여행 5일째)

2011년 여름 휴가 (제주 여행 5일째)

5. 다섯째 날
부모님 댁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고 새벽 서둘러 제주항으로 출발하여 수속을 마치니, 남동생 부부가 빌려준 자동차를 가지러 터미널로 왔는데 고마웠다.
사업에 바쁜 동생인지라 자동차를 내어주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앞뒤 가리지 않고 선뜻 내어주니 나야 편리하고 안락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았지만 동생은 많은 애로점이 있었으리라.
사실 부모님 두 분만 계시게 하고 내가 먼 곳에서 살 수 있는 것도 부모님 주변에 형제들이 살면서 돌아보고 돌보아 주기 때문이다.
특히 남동생은 부모님 가까이 살며 남달리 세심히 살피니 난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부모님에 대한 그런 동생이 고맙기도 하거니와 내게 깍듯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도 형인 나로서는 대견하고 고맙다.
형제들 간에 우애를 다지는 일이라면 그 일이 궂은일이든 고된 일든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하니 얼마나 미더운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어린 적부터 보아온 모습이 어른거려, 동생을 볼 때마다 얼굴 위에 오버랩되지만 이제는 조그만 기업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직원들에게는 어버이 같은 사장님이요 조카들에게는 근엄한 부모님이다.
언제 한번 싫다 하고 표정한 지은 적이 없었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담아둔 모습만 생각하여 걸맞지 않게 대하고 있지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제주항을 떠나는 선상에서 멀어져 가는 제주

남동생의 환대를 받으며 제주항을 출항하여 제주도에서 멀어지니 그제야 내가 제주에서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저 멀리 한라산이며 제주항 사라봉 등대가 흐릿흐릿 흐물거릴 때까지 쳐다보고 있노라니 주마등처럼 이때까지의 일들이 스쳐간다.
이사 갔던 날이며, 학생시절이며, 삶을 위해 무작정 저 제주도를 떠나던 일이며, 늙어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이며, 이번 휴가에 있었던 일들이 뒤엉켜 지나가니 울컥해진다.
제주도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다 선실로 돌아오니 제법 여객선이 기우뚱거린다.
태풍 ‘무이파’로 인해 너울이 심하여 조그만 여객선을 모두 발 묶여 있지만 거대한 여객선이다 보니 저 무서운 파도를 거슬러 출항한 것이다.
여객선 여행 경험 없는 분들은 견디기 쉽지 않을 듯싶었고, 선실 내에서 걸어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에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으며 순풍을 타고 가는 항해여서 도착시간도 단축하여 완도 항에 도착하니 뭍에는 더위가 한창이다.
완도 항에 무사히 도착하니 우리가 승선했던 여객선을 제외하고는 어떤 배도 출항이 금지 되어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우리가 도착한 이후 3일간 모든 배가 출항이 금지되었으니 가슴 쓸어내릴 일이다.
광주로 조부님 기일을 위해 출타 중이시던 아버님이 제주로 향하기 위해 완도 항으로 오고 계시노라며 나에게 배안에서부터 출항여부를 알아보아 달라고 전화를 하셨다.
별 다르게 출항여부를 알 수 없어 애태우고 있었는데 완도 항에 도착하여 둘러보니 벌써 아버님이 터미널에 계신다.
이미 모든 배의 출항이 금지되었다기에 아버님 모시고 영암군에 사시는 큰 이모님 댁으로 모셔다드리기 위해 함께 장흥시장으로 가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언제가 휴가 여행 때 고향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장흥 정남진 토요시장 축제라 하여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기에 시장을 들렸다.
딸내미들과 여기저기 쇠고기 파는 곳이 많아 쇠고기 육회와 구이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퍽이나 맛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특히 그 때 먹은 육회가 맛이 있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먹여 왔는데 이번 휴가 때 지나가는 길에 들러 장흥시장에서 예전에 먹었던 육회를 먹기로 하였다.
장흥에 들르니 시장에서 직접 키운 표고버섯을 판매하고 있는 어릴 적 친구 한열이를 찾아 물었더니 맛있는 집을 소개주어 그 집에서 육회를 먹었는데 무척 맛이 있었다.
큰애와 둘째 딸이 특히 좋아라하며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요즘 애들이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뷔페니 쇠고기 육회 집에 먹는 그런 육회가 아니라 그냥 큼직하게 잘라 놓은 것이어서 날로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난 자동차 운전을 해야 하기에 육회와 쇠고기 구이를 먹으면서도 소주 한잔할 수 없었는데 아버지와 큰 딸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신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는 그림 같아 보인다.
비교적 저렴한 편이어서 배불리 먹고 선산(先山)으로 향하는데 친구 한열이를 찾아 보고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친구 한열이는 같은 문(文)가(家)로서 항렬이 나보다 한 항열 높아 아저씨뻘 되는 친구이다.
비록 친구라 하지만 아저씨뻘이니 이곳 고향에서만은 높여 불러야 할뿐더러 말조심을 해야 할 처지이다.
예전에는 말이 많고 놀기 좋아하는 편이라고 친구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는데 50이 넘은 지금 보면 생각과 말이 이제 정리가 되어있고 사리가 깊어 쉬이 그 깊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표고를 제법 많이 재배하는 모양인데 그 일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어서 그때그때마다 사람 손을 빌릴 수 없으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재배하기 어려운 농사일이다.
헌데 그 일은 혼자서 하느라 고생한다고 부인이 걱정하는 것을 보니 예전 한열이가 아니다.
그와 나는 관계할 일이 없고, 멀리 떨어져 고향에 사는 친구라 그다지 친한 친구라고는 할 수 없다.
얼마 전 6월 동창회에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생각과 성향이 예전과 달리 나와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나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떠난다 말도 못하고 그냥 장흥을 떠났는데 한열이 친구가 전화를 해서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해 오히려 내가 무안해지기까지 했다.
나에게 그런 시골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왠지 든든해지는 것은 나에 도취일까?
그 외에도 제방이 동아 등이 현재도 고향 지키며 살고 있는데 고향 들리면 꼭 찾아 밤새껏 이야기 나누며 못 먹는 소주라도 마시려 했는데 전화도 못하고 돌아왔다.

선산(先山)을 잠시 들르고, 딸내미들은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보림사 쪽 계곡에서 물놀이나 시키고, 수인산 등산이라도 해야지 했던 것이 당초에 생각해 두었던 계획이었는데 아버님이 함께 하고 있어, 선산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 집안의 선산은 10대조 선조(先祖)부터 모셔진 곳인데, 예전에 아버님께로부터 늘상 듣던 이야기라서 잘 알고 있던 터였지만 딸내미들과 함께 아버님으로부터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들과 위쪽으로부터 윗 선조(先祖) 한분 한분 설명을 들으며 내려오니 마구 자란 풀들로 인해 도시에서만 자란 딸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가장 좋아하실 때는 조상님에 대한 설명을 하실 때 인 것 같았다.
송광, 사검, 기삼, 복현, 상호, 병재로 이어지는 조상님들을 설명하시고는 뿌듯해 하신다.
손자인 딸내미들은 옛 선조(先祖)들 이름이 특이하고 예쁘다고만 할 뿐 별다른 감흥도 느낌도 없는 모양이다.
지루해 하면서도 할아버지의 설명을 끝까지 경청해 주어, 대학생이 되더니 어른을 공경할 줄도 아는구나 싶어 대견해 보였다.

물에 잠긴 고향
 
                                                        물에 잠긴 고향 물 속 어딘가에 유년을 보낸 고향이다.

이모님 댁에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향하던 중 가는 길가에 있는 외할아버지 산소에 들러 참배하고 가야지하고, 소주 한 병에 간단한 안주 사들고 외가댁 선산에 오르니 우거진 풀이 산소를 찾기도 힘들게 했다.
비석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고서 겨우 찾아 참배를 드리고 둘러보니 자주 찾아보지 않아 죄송한 맘이 가슴 아프게 한다.
내가 다 성장하여 결혼식 할 때까지도 생전에 계셨던 분이신데 내 딸내미들이 태어나 얼마되지 않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내게 한없이 인자하신 분이셨다.
내가 기억해 둔 그분의 모습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계신 얼굴이다.
실제로 외할아버지께서 화내시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지금도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내 뒤에서 웃으며 다독여 줄 것만 같다.
답답한 맘 새겨두고 선산에서 내려와 자동차를 출발하니 긴 여행의 끝이자 피곤한 자동차 운전의 시작이었다.
집에 돌아와 시간을 보니 오후 10시다.
꼬박 5일을 지내고 그렇게 집에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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