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상위분류 : 잡필방 중위분류 : 뜰에 홑 하위분류 : 만상들
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7-15 조회수 : 3,975
제 목 : 노지방 4 (첫 모임에서)

노지방 4

                                          -첫번째 만남이다.-

“6월이면 만나 산행 한번 하자하고 헤어지던 날부터 누차 이야기 해오던 것인데 한 직장에 모여 일하는 처지가 아닐뿐더러 각자에게 주어진 가정사가 있고, 사적인 환경이 있는지라 생각처럼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생각은 간절한데 막상 실행하려니 오늘은 모씨가 내일은 모씨가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하여 산행은 포기하고 조촐한 술집에 모이니 여기저기 모여든 시간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제각각 시간에 간격을 두고 모였을지언정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마시는 막걸리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모여든 술집의 분위기만큼이나 시골스럽고, 옛정 듬뿍 느끼게 한다.

 

어쩌다 이곳 수리산 계곡 끝자락 창박골에서 만나, 함께 할 수 있는지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처음 내가 이곳으로 왔을 땐 점잖은 소장으로서 점잖게 부임이 한 것이 아니다.

시작이 험난한 것이었고, 그런 험난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정 쌓아 나누며, 혹은 재미있게 혹은 속 상해하며 혹은 다독이며 관계를 맺어왔던 인연이 있어, 오늘 또다시 만났다.

어떤 사람은 살길 찾아 간 사람도 있고, 살길 찾아 들어 온 사람도 있다.

이곳에 맘 둘 곳이 없어 떠났으리라고는 난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적어도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그러 했을 것이리라고 내 믿고 산다.

보다 낳은 미래를 위해 그러한 것이니, 나는 박수치며 웃으며 보냈다.

그런 기억들이 다소 아파하기는 해도 좋은 모습으로, 또 만나자 했는데 즐겁게 달려와 준 모습만으로도 큰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서로가 말 못할 사정도 있으련만 언쟁 한번 하지 않고 지냈던 기억이 아마도 그들을 이리 달려오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이는 이런 재주와 사정으로 왔을 터이고, 어떤 이는 또 다른 재주와 사정으로 이곳으로 왔겠지만 한결 같이 마음 따뜻하고 너그러운 건 꼭 내 할 탓만은 아닌 듯싶다.

아마도 운 좋아 생긴 우연이지만 그냥 놓아버릴 수 없는 행운이다.

난 이런 행운을 내 힘닿는데 까지 가져갈 요량이다.

 

수원에 근무하는 김성환 과장의 도착으로 모두가 모였다.

다소 근무기간이 짧은 박용성 반장이지만 항상 함께 한 것처럼 잘 어울리며 나누니 그런 박용성반장이 너무나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어엿한 설비업체 사장님이시지만 예전 기전반장 시절만을 기억에 담아둔 나로서는 여전히 함께할 때 부르던 박 반장이라는 호칭만 생각 날뿐 박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상황을 잊곤 한다.

 

요즘이 어떤 세상이던가?

경제(經濟)가 좋지 않다하여 아우성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임금과 고된 노동이라도 좋으니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웃거리는 일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경제 환경에 맨몸 하나로 가족 거느리고 살아가는 박 사장의 사정도 그리 눅눅하지는 않을 터, 하지만 오늘 바쁜 일이 있어 못 올 것만 같다더니, 마다하지 않고 찾아준 박 사장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러나 무슨 긴한 일이 있는지, 중간에 자리를 이동하던 중에 돌아가니 아쉬웠는데 아직 전화도 못했고 어찌 사는지 근황도 모르니 나로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타고난 성품 탓일까? 아니면 올곧은 믿음 때문일까?

사기성 없이 정직하다는 것이 그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별별 생각을 다해보지만 박 반장의 그 탁월한 손재주에도 번번이 번듯한 일할 곳을 찾지 못해 수심에 차 있는 모습 또한 내가 박 반장의 얼굴에서 늘상 보는 모습이다.

한 개인의 40대 왕성한 삶이 이렇듯 무거운 한 짐을 지고 사는 것이, 꼭 박 반장일까 싶지만 박 반장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단둘이 만나 막걸리 한잔하며, 아니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알아나 보아야겠다.

박 반장의 그 우스꽝스러운 노래방에서의 어릿광대 흉내를 꼭 한번 보았으면 했는데 못내 아쉽다.

 

들어온 사람, 떠난 사람, 다 모여 함께한 자리가 처음은 아니지만 왠지 처음인 듯 부끄러운 모습으로 엉거주춤 앉아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윤주원 과장님이시다.

김명옥 소장님과 한 사무실에 근무할 적에 김 소장님 놀릴라치면 살짝 얼굴 붉히던 이 또한 윤 과장님이었는데 그나마 많이 스스럼없어 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말없이 앉아 있다가는 누가 이야기라도 걸어야, 말이 나오니 점잔은 것은 분명하지만 소심할 것 같은 사람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일 마다하지 않고 찾아 하고 혹시나 어디 일 없을까 찾아다니시는 과장님이시다.

일은 힘들지 않다고, 항상 내게 말하지만 어찌 일이 힘들지 않겠는가!

일이야 하고자 해서 왔으니 그렇다지만 맘만은 상하지 않게 해야 할 텐데 내 어찌해야할지 무거워진다.

그 자락 변변치 않은 소장과 함께 일해야 할 미래가 윤 과장님을 그다지 밝지도 않고, 주는 것 적을 지라도 정신적 도움이라도 많이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윤 과장님이 창박골에 오기 전엔 김성환 과장님이 그 자리 차지하고 있었는데 수원으로 뜻하는 바를 찾아 떠났다.

창박골을 떠나 얼마 되지 않아 얼굴 한번 본 것이 전부인데 한 달도 훨씬 지나 오늘에야 다시 보았다.

모두가 다 모여 술이 거나하게 취할 쯤에야 도착했다.

며칠 전에 한번 모여 술 한 잔 하자 했더니 부인께 허락받아 꼭 갈 거라 하시더니 기어이 참석하였다.

오는 길이 우리 중에 가장 먼 곳인지라 늦게 도착하였지만 여전히 분위기 띄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오자마자 막걸리 들이키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일하는 터여서, 처음 보는 모르는 사람도 있고, 떨어져 부대끼지 않으니 서먹할 만도 할 텐데, 그런 기미도 없이 뒤섞여 이야기 나누니 내가 분위기 띄우는 사람이라 할밖에 없다.

올해 초, 내가 모락산에 올라 보낸 문자 편지를 고이 간직한 것도 모자라 많은 사람 앞에서 읽는다.

새해를 맞아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내 애틋함을 글로 전한 것인데 이곳에 옮겨 보련다.

 

새해의 해가 떠올랐습니다.

내 눈앞에서

구름을 비키어 비키어서

동쪽으로 올라

추위로 얼룩진

2010년을 밀어내듯 그렇게

떠오른 태양을

, 산꼭대기에서

품어 안듯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손에 손을 맞잡고 왔으니

또 그렇게

손에 손을 맞잡고

흥겨워 흔들며 가자고

내민 손

서로에 온기를 느끼며 가자고

이른 아침

눈 쌓인 산정에서 가슴앓이 하는 건

다 줄 수 없고,

다 감싸 안을 수 없고,

다 다독일 수 없고,

다 아파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기 저

누가 누구를 무어라 해도

꽁꽁 언

저 대지라도

따스한 봄날 꽃핀 저 언덕이라도

빼곡히 살진 알곡 널린 들녘이라도

우리 서로는

웃을 수 있고

온기를 느낄 수 있고

혹은 뿌듯하고

혹은 안쓰럽고

그래서 조화롭고

아름다움 가득한

이 한 해 만들어 가지고

장작개비 한 아름 안아다

구들장 대피우고

손 녹여 따스한 손,

내밀어 봅니다.

 

 

이 글 써 보낼 때야 영원히 영원히 함께 하자고 하는 마음에 속에 채워둔 이야기이지만 지금은 그때 그 사람들은 창박골에 있지 않다.

김성환 과장님이 그렇고 김명옥 소장님도 그렇고 이상만 반장님 또한 그렇다.

모두가 뜻하는 바가 있고, 짓누르는 삶 무게를 덜어보고자, 좀 더 나리라 여기는 곳으로 떠난 사람들이다.

김 과장님이 두 번의 기회 속에 어디론가 떠나 버렸지만 난 서운함이 앞서는 게 아니라 안쓰러움이 가득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본인이 찾아간 길이라 내 흔쾌히 보내었다.

지금 잘 적응하여 앞날의 길에 서광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난 항상 기원한다는 사실만이라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야기지만 김 과장님, 김 소장님 떠나던 그때 난 좀, 힘들긴 힘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우리니 제법 거나해져 나정수 주임의 목소리가 톤이 높이진다.

조용하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지만 왠지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 보다.

김 소장님의 건배에 매양 속는 거지만 오늘도 들었다 놓았다하는 건배의 트릭에 넘어가 과음을 해버렸다.

정작 본인은 건배만 제의할 뿐 한 모금하고 내려놓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내가 속아 넘어가는 건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다.

오늘은 새로 온 신 명숙 주임님까지 합세하여 건배를 제의하는 바람에 도를 지나치게 마셔버렸다.

나는 평소 집에서 작은 맥주 캔으로 한 잔씩 하는 것이 고작이다.

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몸에서 받아주지 않아 좀처럼 많이 마시는 경우가 없다.

 

술이란 평소에 이성에 의해 짓눌린 감성을 이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스럽게 하는데 효과가 있는듯하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의 술 문화를 보면 꼭 그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술로 인해 삶 자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술로 인해 그 사람의 평판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져버리게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오늘 술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여 집에 돌아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이성으로부터 자유스러워져 보다 자유스런 대화를 하는데 까지 이어져야지, 그만 분위기에 휩쓸려, 술이 과한 나머지 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그런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부침개에 두부김치에 안주삼아 그만 분위기에 휘말려 과음한 것도 그러려니와 빈 속에 급히 마신 막걸리는 분위기를 돋우는 정도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었다.

나도 그렀거니와 모인 모든 이들이 조금은 평소와 달리 흥에 겨운 모습니다.

노래방으로 옮겨 앉아 노래 부르는 모습이 일하며 보던 모습들이 아니다.

특히 얌전하고 말이 없는 윤주원 과장님의 노래는 흥겹고 재미도 있다.

물론 가수 뺨칠 것 같은 프로 가수 실력을 가진 김성환 과장님이야 오늘도 물 만난 듯 분위기를 휘잡아 가니, 어찌 시간이 갔는지 난 모른다.

몇몇 직원의 아쉬움을 표하는 가운데 각자 제 울타리로 돌아가니 남다른 우리네 관계에 가슴이 뿌듯해지고 감사에 맘이 절로 난다.

9월 어느 날쯤에 등산 하자며 헤어지니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건 나만의 바램일까?

3개월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일을 이야기하고 다독이고 나누고 즐기며 지내자고 약속하니 이는 내겐 행운인 듯싶다.

여기 쓰지 못한 분들에 대해서는 9월 산행 때 쓰려고 남겨둔다.

 

2011624

 

문시형이 쓰다.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