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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6-14 조회수 : 4,074
제 목 : 세심방에서

세심방에서

 

가다 보니, 피었던 작약이 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제 수명을 다한 잎이 떨어져 초라하고 앙상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기에 그냥 바라만 보았습니다.

무슨 꽃이냐 하기에 작약이라 했더니, 예쁘다 하던 이는 이제 저편으로 갔습니다.

바람이 달라지고 햇살이 달라, 낯선 나무들이 무어라 자꾸 응얼거리는데 영 알아 들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내 귀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귀를 열고 가슴도 열고 애써 말을 걸어보는데 자꾸 빙빙 돌뿐 마주 잡아지지 않습니다.

오늘, 같은 거리에 서서 무어라 하고 돌아서서 또 무어라 했는데 멍하니 바람만 불다가 그 자리에 죽은 작약 꽃잎을 할퀴고 갑니다.

안타까이 꽃잎 하나 집어 살피다가, “유일하게 이거는 알아요.”하고 가리키던 앵두나무가 있기에, 그냥 한참을 바라보다 왔습니다.

어쩌다 그리로 갔다가 나오지도 못하고 길을 잃어버렸는지 하고 되새김질을 하지만 와 닫는 건, 빈 공허와 고독이더이다.

이제 그렇게는 살지 말자 했는데 또 그렇게 해버리고는 불에 덴 체 아파하고 두려워 하고 그래서 돌아서지 못하고 절절해 합니다.

건너지는 말자 했는데 또 성을 쌓고 그만 혼자서만 갇히어 버렸습니다.

덜렁 혼자라는 사실에 체념합니다.

산천에 혼자만 남아서 바라만 봅니다.

내가 살아갈 염원도 그렇게 모두가 떠나듯, 제 품으로부터 슬금슬금 따져나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을 깨달아 갑니다.

유년도 가고, 터마저 잠겨버린 지금, 사람도 가고, 염원과 열망도 가고, 정열에 온기마저 식으려는 언저리에서 눈만 감습니다.

바람은 왜 이리 부는 건지, !

그래서 해 뜨고 달뜨면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하늘만 시리도록 쳐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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