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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6-10 조회수 : 4,205
제 목 : 성주사지 및 무량사 여행 일기

성주사지 및 무량사 여행 일기

 

요즘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 가족과 그것도 다 큰 대학생 딸내미 둘과 초등학생 막내 딸내미, 모두가 같이 여행을 간다는 건 쉽지 않는 일이다.

과년한 딸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밥 먹을 때 아니고서는 얼굴보기도 어렵다고들 한다.

아빠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지아비로서 50대 남성의 현실은 또 어떤가.

밖에서 돈 벌어야 하고, 실직의 두려움에 떨어야 하고, 부하직원의 성장에 자리보전에 연연해야하며, 집에 오면 맘 편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부족한 지아비로, 무능하고 멋대가리 없고 구세대로, 의사소통도 안 되는 아빠로서 내팽개친 처지가 아니라면 다행이다.

그렇다지만 난 적어도 그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나로서도 남 다른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다지 큰 차이는 없는 평범하고, 무능력하고, 생각은 고루한 중년이 넘어가는 지아비이며 아빠일 게다.

단지 내 혼자 그리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개월에 한번 다함께 여행을 하자고 누가 만들어 놓은 법칙도 아닌데 2개월에 한번은 가족여행을 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애쓰며 살아간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성주사지로 여행을 가자하여 약속했는데 연휴를 맞아 이른 새벽에 서둘러 준비하여 출발하니 7시 반이다.

 

아내는 새벽 언제쯤인지 알 수 없지만 가서 먹을 점심거리며, 주전부리를 준비하느라 부산이다.

그런 아내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건만 못내 일어나기가 싫어, 자는 둥 마는 둥 누어 뒹굴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나 나가니 이제 출발 준비를 하잔다.

항상 그렇지만 이럴 때면 좀 더 빨리 일어나 손 맞들어 도와주어야 하는데 하고 맘뿐 실제로 실행 옮기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래저래 난 아내에게 빚지고 사는 것 같아 고맙고 미안타.

학교 가는 것도 아니요, 직장에 나가는 것도 아닌, 놀러 가는데 새벽부터 잠 깨우는 엄마 아빠의 성화에 짜증만 부릴 뿐,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 세 딸내미에게 급기야 아내의 악쓰듯 큰 언성에 벌떡 일어난다.

6월임에도 이런 3일 연휴는 좀처럼 없는 경우여서 차량이 많아서 정체가 심할 것 같아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지만 놀자고 이리도 서두르고 성화를 부려 출발하니 가족 분위기가 썰렁하다.

어째 거나 모두 준비를 하고 차량에 오르니 썰렁하던 분위기는 금세 어디로 가고 자동차 안이 왁자지껄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것이 명승지라지만 우리는 그런 명승지 찾아 가는 구경이 아니다.

단지 가족끼리 놀러가는 것인지라 여러 곳 들르지 않고 한곳이나 두어 곳을 지정하여 가곤 하는데 이번에 선택한 것이 보령에 성주사지와 부여에 무량사이다.

특별히 그곳에 대한 인연이 있는 곳도 아니고, 찾아 공부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 가족을 잡아당길 만큼 유명한 문화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계곡도 있고, 문화재도 있고, 들도 있고, 집으로부터 적당히 먼 곳이기도 해서 그냥 단순하게 선택하여 찾은 곳이다.

일찍 출발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차량 정체도 없고 기분 좋게 고속도로를 달리니 130분 만에 서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이르니 어느새 뒤쪽 딸내미들은 조용해진다.

벌써 잠이 들고 아내만 내 옆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화다.

오랜 기간 함께 살다보니, 그다지 부부간에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네 삶이 곡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숱한 사람과 부대끼는 것도 아닌 탓에 특별한 대화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내 보기에 부부간에 대화는 쓸모 있는 대화는 거의 없다.

그저 시시껄렁하고 유치한 것이 부부간에 대화다.

곱상하고, 격식 있고, 심각한 이야기만 한다면 이마도 부부간에 대화는 몇 마디 하고나면 동이 날 것이다.

난 그래서 아내에게 모든 걸 다 이야기 한다.

직장에서 있는 일이며, 친구와 나눈 이야기며, 단순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그렇다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다고 해서 기억해 둘 만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와 아내를 이어주는 끈이 되고, 또 아이들이 부모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아내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어느새 아이들이 그 이야기 속에 끼어든다.

남들은 부부간에 무슨 말을 그렇게 할 게 있느냐고도 하고, 또 재미없는 게 부부간에 대화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함께 오랜 기간 살아왔으니 알 것 다 알고 있을 것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층은 다 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난 이야기 한다.

그닥 쓸모없는 이야기를 한다.

 

아내와 숱하게 여행을 하지만 아직 아내가 운전석 옆에 앉아, 내가 운전하는 동안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말이다.

어째든 우리는 긴 거리를 달려 왔으니,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서산휴게소에 들으니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나 먹을거리를 찾아 들고 나온다.

서산휴게소에는 여러 동물들을 기르고 있는데 어린 딸들이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토끼, 염소, 거위 등 여러 가지 동물을 기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토끼만 달랑 기르고 있다.

휴게소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칡넝쿨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니, 내 막내딸도 칡넝쿨을 토끼에게 먹이느라 애쓴다.


 

서산 휴게소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보아도 긴 시간을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막내딸이야 재미있겠지만 주전부리를 끝낸 큰 딸내미가 참다못해, 데려오기 위해 애쓰더니 어느새 똑 같이 먹이를 주며 놀고 있다.

그렇게 거의 30분을 지나 출발하니 너무 이른 시각이다.

보령까지 고속도로로 갈 것이 아니라 국도로 가는 것이 더 풍경도 보고, 들녘도 만끽할 것 같아 광천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를 달리니, 잘 나왔다 싶다.

 

광천이라는 곳이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그렇다지만 여기저기 간판만 요란하지 정말로 맛이 좋은 새우젓인지 알 수가 없다.

언젠가 광천 토굴 새우젓 맛을 본 적이 있는데, 짠맛만 맛보았을 뿐 토굴 새우젓 특유의 그 진한 맛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평상시 상용하는 음식이라야 하는데 간혹 맛보는 것이라 좋은지 어쩐지도 도통 모르겠다.

좋다고 느껴야 할 광천 토굴 새우젓은 광천이 최고이여야 할 텐데, 내 아는 게 없으니 그저 낯선 도시도 시골도 아닌 그런 이상한 느낌만 받아가며 지나쳐 보령으로 향하였다.

 

잘 닦인 도로 양편에 핀 꽃들은 만발하여, 무슨 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도 기분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자동차 세워두고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 걸 이제와 생각하니 아쉽다.

무엇보다 천천히 이곳저곳 둘러보며 다니는 재미는 이런 시골 포장된 1차선도로가 제격이다.

시골의 한가한 풍경과 들녘을 보노라니 찌든 도시에 앙금이 씻기어 가는 듯하여 파내듯 찬찬히 둘러보며, 구불거리는 도로를 달려 성주사지에 도착하였다.

제법 오지인데다 산을 넘어 보령에서 부여 쪽으로 얼마쯤 가니, 성주면 시골 면소재지가 산 아래 펼쳐져 있다.

좁은 도로변에 예스러운 단층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시골 맛이 물씬 풍긴다.

찐빵집도 있어 사먹고 싶은데, 아직은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하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그냥 시골 면소재지를 살짝 스치고 지나 성주사지 쪽으로 들어서니, 냇가에 쪽으로 버들 숲이 무성하게 펼쳐진 것이 여간 보기가 좋다.

그렇게 버들이 있는 곳을 지나니 초등하교 앞 차로 변에 꽤나 해 묵었을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그 느티나무를 살리려는 듯 그곳만 도로가 줄어들어 피해가고 있다.

나무 있다고 느티나무를 피하여 도로를 만들다니 그 맘이 어찌나 고마운지!

그렇게 한 이가 누구인지 생각으로라도 고맙다고 말이라도 건네고 싶어진다.

 

번듯한 절집 하나 없는 유적지에 주차장은 제법 넓고 시설도 괜찮다.

성주사라지만 변변한 절집 건물하나 없을뿐더러 울창한 숲도 없이, 그저 너른 평지에 3층 탑 3개와 5층짜리 탑 하나가 고작이다.

누구라도 이곳에 볼 것 있다고 찾을 것 같지가 않다.

간혹 관광버스가 오고 승용차가 오지만 길어야 30분을 넘기지 않고 서둘러 떠난다.

그도 오래 머문 셈이고 대부분은 10분 남짓 머물렀다, 금세 떠나 버렸다.

그 만큼 볼 것 없는 유적지이다.

 

성주사지 (펌) 성주사지 5층석탑

성주사지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는 9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사가 있던 자리이다.

백제 법왕 때 처음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부르다가, 신라 문성왕 때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절을 크게 중창하면서 성주사라고 하였다.

산골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절과는 달리 평지에 자리하는 가람의 형식을 택하였다.

절터에는 남에서부터 차례로 중문처, 석등, 5층석탑(보물 제19), 금당건물과 그 뒤에 동서로 나란히 서있는 동삼층석탑, 중앙 3층석탑(보물 제20), 3층석탑(보물 제47)가 있고 그 뒤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 하나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국보 제8)도 절의 북서쪽에 있다.

발굴조사결과 건물의 초석, 통일신라시대의 흙으로 빚은 불상의 머리, 백제·통일신라·고려시대의 기와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성주사는 당대 최대의 사찰이었으며, 최치원이 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신라 석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매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무염 비각 무염 비석


이는 보령시에서 얻은 자료인데 제법 그럴싸한 절이었던 듯싶다.

그럼에도 지금 눈에 보이는 저 허허로움이란 참으로 안타깝다.

성주사지는 한창 잘나갈 때는 800칸이 넘는 대단한 사찰이었다 한다.

통일신라 말기 어느 권력 있는 호족에 의해 창건되었을 때야 그럭저럭 유지 되었을 테지만 이 큰 사찰을 유지하려면 주변에 이를 받쳐줄 경제적 여건이 있어야 할 텐데, 산골 오지에 그럴만한 농토나 염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유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고승으로 이름을 날렸을 무염이다.

칭호도 많아, 갖다 붙여 부르기도 정신사납다.

그런 그가 지방 권력자인 호족과 함께 지은 절이니 그 규모가 저리도 장대하게 지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차라리 작은 절이었더라면 지금도 괜찮은 절로 남았을 것이지만 큰 규모가 되레 지금처럼 폐사지로 남을 수밖에 없도록 하였을 것이리라.

연유야 어찌되었건 절 뒤편이었을 산은 어느 절집이나 마찬가지로 성주사를 감싸듯 둘러져 있다.

그래서 절터에 서있노라면 감싸 안을 듯 포근하고 아늑하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서 사납지 않아 너그럽고 다소 밋밋해 보여서 더더욱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한다.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 짐작되는 5층탑은 시원스럽게 쭉 뻗어 치솟는 상승감이 있고 날렵하여 아름답다 하고 느낌과 생각은 있지만 더 이상 아는 게 없어 그냥 한참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비슷한 3층 석탑이 3개가 늘어서 있는데, 썩 잘 만들었다고 보여 지지는 않지만 한자리에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서 일까, 나름대로 좋아 보인다.

학자들은 저 3개의 탑이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다.

언제 이곳으로 옮겨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부턴지 이곳에 저렇게 나란히 서 있다.

더 안쪽 기단 위에는 조선시대에 조각했다는 부처님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얼굴이 뭉개진 돌조각이 있다.

다 뭉개져서 인지 보는 느낌이 야릇해진다.

 

성주사지 5층탑 성주사지 3층탑

 

무염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이를 그 유명한 통일신라시대에 최치원이 지었다고 하는데 한자(漢字)로 쓰인 탓에 읽을 수 없는지라 도무지 모르겠다.

역사적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국보 8호라니 꽤나 중요한 내용인가 보다.

한자(漢字) 공부 좀 열심히 하여 저 화려하다고 익히 소문이 난 최치원의 무염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니 그저 비석일 뿐 그 중요성을 잘 모르겠다.

알 수도 없는 비석보다야 내 눈에는 그 옆에 서있는 3구루의 감나무가 더 눈길이 간다.

내가 어릴 적에, 옆집에는 다 있는 감나무가 없어서 항상 감나무 있는 집이 부러웠다.

내가 시골로 낙향하면 반드시 심고 싶은 것이 감나무라 아내에게 귀가 닮도록 말해왔다.

지금은 늦은 봄인지라 감이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아 열매를 볼 수 없지만 열매가 맺어 익을 때까지를 상상하며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노라니 딸내미들이 사진 찍어 달라고 부른다.

요리조리 폼 잡아가며 사진 촬영을 마치고 유적지에서 나와 점심 준비를 하니 그 준비가 만만치 않다.

 

가족 사진 성주사지 안내도

만들어 놓은 것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데도 번거로운데 새벽부터 준비 다해야 했던 아내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미안하기가….

 

아내가 여행가서 먹을 음식을 무엇으로 준비 할까요하기에 부대찌개가 어떠냐고 했지만 이것 준비가 만만치 않다.

소시지와 햄 그리고 멸치와 다시마, 버섯을 넣고 우린 국물 등 갖가지 준비해야 할 게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부대찌개란 미군부대에서 나온 음식찌꺼기로 만든 음식을 말한다.

지금에야 이것저것 갖가지 양념과 식재료를 넣어 만들지만 40~50년 전에는 미군이 먹다 버린 음식물을 모아 나온 것 중에 고기점이 섞인 걸로 맛을 낸 것이 부대찌개인데 우리가 먹고 있는 부대찌개는 그와 사뭇 다른 것이다.

내 부대찌개에 유래를 장황히 설명하니 맛 떨어진다며 그만 하란다.

갖가지 식재료와 양념 넣어 만든 찌개를 끊여 먹는 맛이란….

느티나무 아래 온 가족이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주고 받아가며, 낄낄대며 먹는 찌개 맛, 아마도 그곳에 함께 한 우리 가족 말고는 모르리라.
 

아내가 만든 부대찌게 음식먹기

지나가는 허름한 자동차 물건을 싣고 확성기로 호객하는 방송을 하지만 차량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던지 과일 장수며, 재봉틀 고치는 기술자 등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저래가지고서야 무슨 장사를 할까 싶은데도 우리에겐 그런 광경들이 시골스러워 역으로 여유스럽게만 보인다.

 

가져온 푸짐한 과일도 먹었으니 이제 냇가로 나갈 차례다.

막내딸은 벌써 냇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며, 냇가에서 놀자고 성화인데 점심 먹고 함께 치우고, 나머지 마무리 하는 아내를 기다려 냇가에 나가니, 냇물이 여간 깨끗한 것이 아니다.

투명한 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얕은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탁족을 즐기니 옛 선비들의 탁족을 즐기는 것과 무어 다를까 싶다.

어릴 적 솜씨를 발휘하여 맨손으로 몇 마리 물고기를 잡아 아이들에게 주니 좋아라 한다.
 

성주사지 앞 개울에서  물놀이 손으로 잡은 물고기

냇가 둑과 바닥에 피어 있는 지천의 꽃을 아내는 하나하나 뜯어보고 관찰하고 하는 모습이 화초 키우기를 최고의 낙으로 삼고 사는 사람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난 저 꽃이 무어냐, 이 풀은 무어냐, 저 나무는 이름이 무어냐 물어도 척척 대답해주니 모든 점에서 우리 집에 해결사다.

물장구도 치고, 물고기 잡이 어항으로 물고기 몇 마리 잡았다가 놓아주고는 예뻐 보이는 돌 찾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자동차에 올라 무량사로 향했다.

 

성주사지를 떠나 무량사를 향해 가다보면 제법 산이 깊어 좀처럼 너른 들이 보이지 않는다. 보령을 건너 부여로 향하는 길인데 이렇게 산이 높고 깊을까 싶다.

시골 들녘을 지나 어느 만치 들어가니 도화담이라는 면소재지 마을이 나온다.

보령시 미산면 도화담리라 부르는 곳인데 그 이름이 참으로 예쁘다.

봉숭아꽃이 만발하고 깊은 소(연못)가 있는 곳이라는 뜻 일 텐데, 때가 때인지라 도화는 없고 연못은 어디 있는지 일부러 자동차에 내려, 나이든 마을 어르신께 물어야 할 것 같아 그냥 지나쳤지만 내려서 찾아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도화담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아미산과 만수산이라고 한다.

아미산, 그 이름으로도 예뻐 보이지만 그에 반해 만수산은 왠지 선()적인 느낌이 난다.

만년을 사는 산이라서 그럴 터이니 도교에서 말하는 선()이 아니고서 무슨 설명을 할 수 있으리오.

주변에 높다란 600M 남짓 되는 산이 제법 많다.

성주산, 아미산, 만수산, 옥마산 등 산 이름 마다 특이하고 선()스럽고 아름답다.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에 와 살다가 죽어 묻힌 곳이라 하니 그럴만한 곳이구나 싶은 곳이다.

그렇게 산속을 헤집듯 자동차를 달려 만수산 무량사에 다다르니, 출입구에 문화재 관람료가 어른은 2,000원이라고 적혀 있어, 짠순이 아줌마인 내 아내는 볼 것도 없는데 무슨 입장료를 2,000원이나 받느냐며 들어가지 말고 주변경관이나 바라보자고 한다.

들어가 보지도 않고 볼 것 없다고 단정 짓는 것은 입장료 때문이겠으나 입장료의 가격에 대한 부분은 왠지 우리를 아쉽게 한다.

차라리 수도도량으로서 지장이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면 모를까?

구경은 하되 돈 내고 보라는 심보는 왠지 속 좁아 보인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거라면 야, 뭐 할 말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조상의 얼이나 뜯어 먹고 사는 것은 아닌지 원….

그에 못지않게 그 돈 내기 아까워 까탈스런 이유나 달아대는 내도 또한 매한가지다.

무량사는 백제의 절이었다가 누가 중수하고 누가 거기서 기거하며 누가 수도하고 가르쳤는지 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 매월당의 부도와 그의 내력은 궁금하다.

 

노란색 매밥톱 꽃 무량사 앞 물놀이

 

매월당은 한 평생 자기가 세운 뜻에 따라 살다간 인물이다.

그리 산다는 건 아무나 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극히 드물다.

그의 체취가 묻어나는 무량사를 뒤로하고 계곡에서 딸들과 아이스크림 먹으며 물장구치며 노느라니 무척 재미있어 한다.

무량사는 어찌 생겼는지 보지 않았으니 몰라도 주변에서 본 노랑색 매발톱꽃은 예쁘고 신기해 보인다.

이제까지 남색 매발톱만 보아온 나로서는 노란색 매발톱이 다 있구나 하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늦은 봄날에 햇살은 덥고 따갑기 까지 한데 그늘 아래 시골 똥개모습을 한, 개가 쇠사슬을 목에 걸고, 늘어져 자고 있으니 이를 두고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 딸내미들은 개 팔자 상팔자가 아니라 개판이란다.

 

무량사는 보도 못하고 만수산만 실컷 쳐다보고서, 무량사로 오다 보아 둔 웅천천으로 가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시작하니 딸내미들은 그 어떤 문화재 보다, 그 어떤 자연산수보다 더 좋아한다.

나도 물가로 나가 물수재비 놀이를 하니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과 아내 앞에서 내가 하는 장끼 중에 그래도 보여 줄만한 것이 있다면 물수재비 놀이이다.

내 어릴 적 친구들이 물수재비 놀이 하자하면 난 절대 하지 않는다.

그 친구들 몇몇은 내 보다 실력이 훨씬 출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치고 물수재비 놀이 할 기회가 좀처럼 없기에 그 실력도 신통치 않고, 누구 보여줄 만큼 실력도 되지 않는다.

그런 시대에 살다보니 물수재비 놀이로 아내와 딸 아이 앞에서 어깨 으쓱해지도록 박수를 받는다.

그에 들떠 누구 보아주지도 않는데 돌팔매질도 하고 물 퍼 다가 이 사람 저사람 뿌려대고 놀다보니 시간이 출발할 때이다.

돌아가는 길이 여유롭다면 무창포나 대천해수욕장으로 가서 해지는 노을을 보며 라면 끊여 먹는 맛이 그만이겠으나 3일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가는 길이 만만치 않을 터여서 다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막내 딸 물놀이 물수재비 하는 중

이렇게 놀 것 다 놀고 늦은 오후에 집을 향해 출발하니 이제 부터는 나만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아이들은 뒤쪽에서 잠이 들 것이고 잠들지 않는 아내라 하더라도 긴 시간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문시형이 2011년 6월 7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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