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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09-07-07 조회수 : 3,452
제 목 : [박동천의 집중탐구] 민족주의: 집단생존 프레임

제5부 민족주의: 집단생존 프레임
제4장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인가?


43. 대한민국은 종족적으로 균질적인 국가라서 전통적으로 소수종족의 문제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나라들 사이에 인력교환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인종간 결혼이 증가하면서 소수종족에 관한 염려가 늘어나고 있다.

44. 민족의 종족적 균질성에 대한 긍지에서 비롯된 "순수혈통"의 원칙은 이른바 "혼혈"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갖가지 형태의 차별을 불러왔다. 이런 차별들은 대체로 눈에 띄지 않고 불법도 아닌 것으로, 고용, 주거, 교육, 대인관계 등 모든 영역에서 발생해왔다. 이 같은 관행들은 세대를 건너 전승된다는 점에서 특히 심각하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 CERD)가 2007년 8월 9일 71차 세션에서 한국상황을 검토하고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 일부이다. "종족적으로 균질적인"(ethnically homogeneous), "민족의 종족적 균질성에 대한 긍지"(pride in the nation's ethnic homogeneity) 같은 표현은 "단일민족", "단일민족성에 대한 긍지"로 번역하는 것이 현대 한국어에 익숙하겠지만, 일부러 다소 어색할지 몰라도 영어식 표현에 스며들어 있는 시각이 암시적으로나마 표시될 수 있도록 번역했다. "단일민족"이라는 표현과 "종족적으로 균질하다"는 표현의 차이가 사실은 굉장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위 보고서에서는 짧게 말하느라 "종족적으로 균질적"이라고만 했지만, 영어 구문의 행간에서 이런 경우 균질성이란 명목척도가 아니라 당연히 순서척도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한국이 "종족적으로 균질적"이라는 지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지, 실제로 한국종족이라는 것이 있고 그 구성원들이 실제로 서로서로 균질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프랑스처럼 아예 인구조사에서 인종구분을 묻지 않는 나라도 있기는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인구조사를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그때 인종을 묻는다. 한국은 어떻게 하는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통계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외국인 수는 잡혀있지만, "한국인" 중에 인종별 분류는 보이지 않는다. 물을 필요도 없이 한국인은 모두 한민족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유엔에서 한국을 종족적으로 균질적이라고 간주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무슨 "종족적 균질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기준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한국인 대부분이 스스로 한민족을 "종족적으로 균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한국인이 자신을 "단일민족"이라고 여길 때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단일민족이라고 보기보다는, 우리의 프레임과 별도로 어떤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원인이 있으리라고 막연히 추정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앞의 세 장에서 논의했듯이, "우리"의 경계란 일차적으로 우리가 그은 것이다. 제3부 제3장에서 언급했던 구분을 상기해서 적용해보면, "우리"의 경계란 얼음과 물 사이의 구분과 같은 것이 아니라 대머리와 대머리 아닌 사람 사이의 구분과 같다. 우선 경계선 자체가 희미해서 회색지대가 대단히 넓다. 나아가 이런 경우는, 대머리/회색지대/비(非)-대머리처럼 간단히 정리될 수도 없다. 대머리와 회색지대 사이의 경계, 회색지대와 비-대머리 사이의 경계 또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계들이 불투명하다는 것은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사전에 명료한 기준을 세울 수 없고, 세운다고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삶에서 문제로 등장하지 않으면 넘어가고, 어떤 이유가 있어서 문제로 등장하게 되면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논쟁이나 투쟁을 통해서 해소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다투다가 대충 덮고 넘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전쟁과 같은 엄청난 재앙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이때 당사자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관객과 당사자의 구분 자체 역시 다분히 실존적인 관심과 참여 여부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특징이 있다.

종족적 균질성 또는 단일성이라는 것이 우리가 정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저들"의 구분이란 많은 경우 저들의 입장에서 긋는 "우리/저들"의 구분과 상호작용한 결과이고, 아울러 이런 경우에는 "정한다"는 것이 결코 한 시점에서 무슨 입법과 같은 의도적 정책을 정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예컨대 중국인과 한국인이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구분에는 단순히 주관적이지만은 않은 어떤 객관적인 원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저들도 그렇게 구분을 하며, 가령 마오쩌둥이나 아베 신타로를 한국민족의 일원으로 집어넣자고 우리 국회에서 어느 날 정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이 지점에서는 인위/자연이라는 개념틀이 너무나 거칠어서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관습이란 자연인지 인위인지를 물으면 인위라고 봐야 하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계획을 세워서 해치울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아니다. 즉,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관습에 속하는 요소들은 모두 의지만 있으면 바꿀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소여(所與), 즉 주어진 것으로 비치더라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한국어를 20여 년 동안 혀와 입술로 익힌 사람에게 영어배우기가 차라리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일보다도 어쩌면 어려울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앞장에서 밝혔듯이 현재 우리에게 관습적으로 전승된 "단일민족"이라는 상징은 적어도 100년 동안 일억 명도 넘는 사람들이 (현재 남북한 인구에 지난 100년간 사망자를 합하면 일억이 훨씬 넘는다)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것인 만큼, 이런 관습의 틀 안에서는 거의 "자연"에 가까운 지위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착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런 종류의 소여는 불가항력인 것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프레임을 하나의 대상으로 관찰해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다면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고, 어쩌면 의외로 짧은 기간에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대조를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예시의 목적은 "단일성"에 관한 우리의 관념이 어떤지를 반성해보기 위함이다. 우선 남한과 인구가 대충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를 보자. 영국 국립통계국이 발표한 2005년 실험통계에 따르면, 잉글랜드 인구 5109만 명의 인종별 분포는 <표12>와 같다(☞ 바로가기). 왼쪽(I)처럼 분류하면 종족집단의 수는 16개가 되고, 오른쪽(II)처럼 분류하면 5개 종족, 아시아계와 중국계를 합하면 4개 종족이 된다. 어쨌든 오른쪽처럼 분류할 때 백인(88.2%) 또는 왼쪽처럼 분류할 때 브리티시 백인(83.6%)이 잉글랜드의 종족 구성에서 주류임을 알 수 있다. 즉, 잉글랜드를 하나의 민족국가라고 부르고, 그때 민족이라는 것이 정치적 공동체에 선행하는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라고 본다면, 오른쪽처럼 넓은 의미의 백인 또는 왼쪽에 브리티시 백인이라고 분류된 좁은 의미의 백인이 잉글랜드를 하나의 민족국가로 만드는 핵심요소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왼쪽의 분류에서 나머지 15개 종족을 제외하고 브리티시 백인만을 본다면, 그 4273만 여명의 브리티시 백인들은 단일민족일까 아닐까?

법무부는 2007년 국내 체류 외국인이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주민등록 인구가 4913만이어서, 대한민국 안에도 외국인의 비율이 2%를 넘는다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어 잠시 단일민족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따지고 싶은 주제는 외국인 100만 명이 아니라, 그들을 뺀 98% 4800만 명의 한국인을 "단일민족"이라고 보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 ⓒ프레시안


잉글랜드에서는 브리티시 백인으로 분류되는 4273만 명만을 따로 떼서 보더라도 다양한 혈통으로 구성되었다고 보지 단일성이라는 틀로 묶지 않는다. 왜냐하면 브리튼 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200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통해 여러 갈래로 그 섬에 들어간 이주민들의 융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노르망디족, 북방 게르만족, 앵글로색슨족, 로마인, 켈트족, 그리고 아마도 켈트 이전에 살았으리라고 추정되는 선주민들이 저 인구통계에서 브리티시 백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혈통을 구성한다. 복잡한 혼혈인 것처럼 보이지만, 노르망디의 윌리엄이 섬으로 건너가 왕위를 차지한 1066년도 이후로만 보면, 그후 지금까지 이 브리티시 백인 종족집단에 대규모의 혈통혼입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잉글랜드가 17세기에 민족국가를 이뤘든 13세기 또는 그 전에 민족국가를 이뤘든, 그때 민족적 균질성을 담보하는 혈통적 문화적 공통성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현대의 통계에서 브리티시 백인이라고 범주화하는 묶음 내부의 공통성과 족보상으로 크게 겹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잉글랜드를 단일민족이라고 부르는 표현은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켈트 이전의 선주민, 켈트족, 로마인, 앵글로색슨족, 북방 게르만족, 노르망디족 등, 잉글랜드 민족의 선조들은 갈래가 다양한 반면에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고대의 부여, 읍루, 숙신, 예맥 등까지는 접어두더라도, 당장 삼한과 고조선, 그리고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발해와 말갈 등의 갈래들은 왜 다양하지 않고 여전히 "단일" 민족을 구성하는 것일까? 잉글랜드의 고대사에 비해 한반도의 고대사가 어떤 점에서 현저하게 "단일한" 민족사가 되는 것일까?

앞 제2장에서 명시했듯이, 나는 삼국이나 삼한을 합해서 하나의 민족으로 부르고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민족국가와 혈통적 문화적 자연적으로 연결하는 데에 특별한 잘못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통일신라를 하나의 민족국가였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삼한과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이 모두 하나의 민족이었기 때문에 7세기에 신라로 통일되었다고까지 누가 말하더라도 특별히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박노자가 간략하게 정리한 바 있다. ☞ 바로가기). 단, 그것들이 민족국가였기 때문에 한민족이 역사적 선진민족으로서 위신이 올라간다고 내심으로라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위신은커녕 열등감이 아닐지 자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민족을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근대적 기준으로 규정하면 한국민족은 제3장에서 밝혔듯이 20세기 초에서 1948년 사이에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근대론자들이 지적하듯이 일반 민중들이 일상생활의 영역을 한참 벗어나서, 수천만 명에 달하는 "멀리 있는 자들"에 대해 민족을 준거로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맹에서 벗어나고 인쇄매체를 통한 공론장에 참여하는 지성적 물리적 기반이 필수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삼한은 고사하고 통일신라나 고려를 민족국가로 부를 수는 있지만, 그런 민족은 근대적인 의의를 모두 상실하고 엘리트 지배계급의 의식 안에 투영된 관할권의 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연합뉴스


단일민족에서 "단일"이라는 표현은 이미 민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사람들을 묶은 위에 다시 그것이 하나라는 사실을 중복해서 표현하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회집단의 경우에도 그것을 하나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 곁에는 내부에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항상 수반된다. 일례로 이스라엘을 전체로 보면 소문난 유태교 국가지만, 실제 유태교도의 비율은 75.5%이고 다른 종교들이 존재한다. 더구나 이스라엘 유태교 역시 내부를 보면 전통파(55%), 세속파(22%), 정통파(17%), 하레디파(8%) 등, 여러 분파로 구성된다 (☞ 바로가기). 대한민국 인구 4800만여 명도 내부를 보면 280여 개의 성씨와 같이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성씨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4800만 한국인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사회집단이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고, 차이와 균질성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그런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하나의 민족을 새삼스럽게 "단일민족"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스라엘 인구 75.5%를 유태교로 묶는 데에 더해 그들을 "단일유태교"라고 부르는 꼴이 된다.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종족 정체성만을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의 인구구성이 (일본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균질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영토 내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구의 98%가 한 가지 종족집단에 속한다고 의식한다는 것은 위에 든 것처럼 16%가 다른 종족 정체성을 가진 잉글랜드 및 24%가 다른 종교 정체성을 가지는 이스라엘에 비해 워낙 현저한 특징이기 때문에, 2% 정도의 예외는 무시하고 민족적 정체성과 종족적 정체성이 같다는 의미에서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랑스러운 일인지 수치스러운 일인지, 또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다음 장의 주제이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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