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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09-05-13 조회수 : 2,908
제 목 : 강가에 앉아서 5

강가에 앉아서 5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에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집에서 짐승 키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런 모습들이 어색하고 심지어 언짢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치 사람들에게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태도로 개를 대하는 것도 그렇고
개에게 하는 말투라고는 믿기기 않을 정도로 다정다감하고 속삭이는 듯한 모습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핵가족화 되어 있는 현대 도시민에게는 아이들에게 쏟는 정을 개에게 대신 쏟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사회현상에 익숙해 지지 못한 탓이다.
산책을 가노라면 산책로 여기저기에 개들의 배설물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
기분을 언짢게 한다.
요즈음 같은 시대에 여기저기에 오물은 왠지 칠칠 못한 개주인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흔한 현상이 된 현실을 나는 다시금 길들이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또한 몇 안 되는 자식, 다 키우고 보면 그 외로움, 주체 못하여
개를 대상으로 베풀어지는 사랑을 뉘라서 무어라 할까?
그와 마찬가지로 형이고 동생이고 모르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입장에서 인터넷
그리고 TV 말고 무엇에 정 붙이고 살까 하고 생각해 보니
개 키우며, 정 붙이는 것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솔직히 고백컨대 내 주위에 거의 대부분이 개 기르며 사는 모습이다.
개 키우는 것을 무어라 탓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워 하는 세태(世態)에서
그걸 무어라 했다가는 봉변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저 먹을거리라고 말했다가 실제로 봉변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취급을 당한 경험도 있다.
 
개에 대한 내 감정은 먹을거리 정도로 여길 뿐 별다른 것이 없지만
내 유년의 고향 마을 어느 집이나 개 한 마리쯤은 다 기르고 있었다.
그런 유년시절에 우리는 큰댁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닭장에 서리 오는 삵(살쾡이 혹은 우리 고향에서는 내 기억에는 “살가지”라고 불렀던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으로부터
닭을 지키기 위해서도 강아지가 필요했지만
몇 집 안 되는 “옻밭골“로 이사를 온 뒤여서 낯설은 탓도 있었던 것이다.
헌데 잠깐 들렸다가 제 집 가듯 그렇게 밤만 되면, 이놈에 강아지가 큰댁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고향에 사는 사람이면 다 아는 것이지만 우리 집과 큰댁은 약 1KM 정도 되는 거리여서 만만치 않을 텐데도
아직 젖도 제대로 떼지 못한 강아지가 그 험난한 밤길을 걸어 큰댁으로 가버려서, 다음 날 아침이면 데려와야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런 강아지를 묶어 두는 법은 없었다. 단지 그냥 데리고 올뿐이었다.
나와 나의 형은 혹시 눈을 가리고 데리고 오면 길을 몰라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눈을 가리고 데리고 왔는데
자꾸만 돌아가 버리는 강아지가 얼마나 야속 턴지.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기억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그 강아지는 돌아가기를 멈추었고 드디어 우리 식구가 되었다.
강아지였을 때는 몰랐다, 그 개의 버릇없는 행동과 지겨움을…….
학교 갔다가 집에 올라치면 이놈의 개! 그냥 달려와서는 얼마나 얼굴을 핥고 올라타던지 정말이지 지겨웠다.
한번이면 말도 않는다.
이 개, 그 애정표현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던지 고문(拷問)도 고문(拷問)도 그런 고문이 따로 없었다.
어린 나로서는 말이다.
지금 생각하니 길어야 5분이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어린 내가 발로 제겨 부러도, 볼기짝을 후려패도 조금 물러나 관망하다가는
이내 달려들어 핥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간 씨름을 하고나서야 제자리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내 책보(책가방) 집어 던지고, 부엌에서 먹을 것 찾아 먹고 있으면,
하염없이 쳐다볼 것만 같은 반짝거리는 큰 눈으로 쳐다 보던 개가 우리 집엔 있었다.
대충 허기 채우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나를 내 집 앞 골목 어귀까지 따라 나와 환송하고는
이내 집으로 돌아가는 개. 이름이야, 어느 집이나 다 똑 같아, 누렁이다.
우리 동네 집집이 모든 개 이름을 누렁이 혹은 백구라 했다.
그리고 다른 이름은 내 기억엔 없다.
그러니 우리 동네에 누렁이와 백구는 아마도 20마리는 족히 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누렁이 백구지만 그 집 주인이 누렁아! 하고 부르면
그 집 누렁이 말고는 다른 집 누렁이는 절대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누렁이는 단지 그 집의 누렁이일 뿐 이름이 누렁이는 아닌 것이다.
밤이 되어 어느 누렁이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 누렁이와 백구는 일제히 짖기 시작한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의 우리 동네 밤은 어둠의 적막이 있을 뿐인데 무슨 인기척이 있었는지
온 동네 개들은 그렇게 하나가 시작하면 전체가 그렇게 합창을 하곤 했다.
그 개들의 짖는 소리는 듣기에 따라 그 음률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들리곤 했는데,
하나씩 짖는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면 서서히 정막으로 접어드는 늦은 밤의 고요는
그 후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감동이었다.
위생 상태는 말로 해, 무얼 하랴 싶을 정도여서 그 시절 내 동생 똥 싸고,
그 때 그 때 치울 여력이 없으면 어김없이 누렁이,
그거 말끔히 치워준다. 말 그대로 똥개다.
똥개! 그렇다.
비록 똥개일저언정 누렁이는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융기 나는 털과 청결함이 있었다.
우리가족 누구도 누렁이 목욕시킨 적 없지만 누렁이는 항상 깨끗했다.
언제 한번 가르친 적 없지만 우리 집 어느 곳에서도 누렁이 배설물을 본 적이 없다.
단 한번도 목에 줄 묶어 매어 놓은 적 없어도 문밖을 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단 한번 발정기 때 말고는 말이다.
그런 누렁이가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씻지 못할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했다.
그 날 나는 어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침 밥상 치려진 후에야
잠이 깨서 엄마가 끊인 물에 적당히 찬물 붙고 세수를 하려던 참이었다.
어김없이 다가와 내가 세수 끝날 때 까지 옆에 서서 지켜보아야 할 누렁이가 없었다.
하려던 세수를 멈추고 주변을 훑어보던 나에게 무언가 획하고 나를 거칠게 밀치고 지나는 짐승이 있었다.
벌렁 주저앉은 내 가슴에 누렁이는 누렁이었으되 내 가슴에 아로새겨진 누렁이가 아니었다.
분명히 꼬리를 살랑거리며 옆에 서서 그 까만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마치 언제라도 얼굴을 핥으려고 해야 맞는데 누렁이는 나를 거칠게 밀치며 지나쳐
어디론가 쏜살 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 눈에 다시 보였을 때는 저 멀리 들판을 가로질러 이러 저리 내달리는 말 그대로 미친개가 되어
발광하며 날뛰는 누렁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을 뿐이다.
어머니의 설명으로는 열병이라 했다. 그리고 누렁이는
다음날 아침 우리 집 부엌 아궁이에서 발견되었다.
싸늘한 시체로 말이다.
아무리 발로 차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 마냥 좋아하며 꼬리치며
이내 달려드는 누렁이는 유년의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체 그렇게 가마솥으로 들어가 산화가 되었고,
개에 대한 추억과 영상은 이상하게 변색되어 중년의 나이에도 잊지 못하고 남아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동네 골목에는 가슴에 귀중한 보물처럼 안고 가는 이상하게 생긴 개와
철제 대문 안에서 철사슬에 묶여 지독한 냄새와 배설물이 뒤엉킨 체 까만 눈으로 미동도 없이 쳐다보는,
무슨 연유로인지 짖지도 못하는 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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