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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09-05-13 조회수 : 2,962
제 목 : 강가에 앉아서 7

강가에 앉아서 7

 

두 소녀를 생각하며…

 

시인 정지용은 시(詩) 향수에서 아내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고, 사철 발 벗은 아내”라 표현했다.

듣기에 따라 무식하고 추한 아내쯤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곡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남자치고 자기 아내가
언제나 예쁘고 고귀하고 정숙한 여자라 하여 좋아하고 편안한 아내라 여길까!

아마도 한 평생 살아가야 할 자기 아내가 그런 여자라면
모르기는 해도 피곤할 것이다.

한평생 살아갈 아내라면 편하고 부담이 되지 않는 여자가 최고라고는
할 수 없어도 무난하다고는 여길 것이다.

자기 아내가 항상 예쁘고 정숙하고 고귀하고 청순하려면 아내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만한 댓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평생 그렇게 살기란, 글쎄 그게 가능이나 할까?

항상 예쁜 여자이기 위해 화장을 한 채로 있어야 하고,
흐트러지지 않는 몸자세와 차림을 하고 있어야 할 것이고,
또한 점잖고 품위 있는 말만 골라서 해야 할 것이 아니던가?

세상에 그런 여자는 있을지 몰라도
그런 아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발 벗은 아내와 예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아내는 모르기는 해도 세상에 가장 소중하고 편한 사람 일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을지 모르니,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내 아내가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리 대답한다.

내 아내는 예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고 사철 발 벗은 여자이로되
그러나 예쁘기도 하고 신비스럽고, 그냥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옆에 없다는 생각을 애써 해보려고 해도 상상조차 안 되는,
아무리 표현하려고 해도 말로는 안 되는
그런 존재라고 말한다.

 

이제 한껏 올려놓았으니 이제 아내 아닌 다른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여자가 둘이 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할머니 말고 그 외의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 오해는 말기 바란다.

 

내 유년의 옻밭골에는 5가구의 조그마한 마을이니
조무래기 아이들도 그리 흔한 것이 아니었다.

몇 안 되는 아이들도
그나마 또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는 옻밭골 조무래기들 중,
또래라 할 수 있는 아이는 나 말고 둘 뿐이었다.

그러니 허구한 날 셋이 놀아야 할 처지여서 자연스럽게 유년의 기억,
대부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유년의 추억 속에는 집에서의 것과 학교에서의 것이 구분되어 간직되어 있는데
집주변에서 이루어진 유년의 소녀와 학교에서의 유년의 소녀가 그것이다.

옆집 소녀는 딱히 설명이 되지 않는 묘한 존재였다.

신비롭다고도 할 수 없고 절절히 좋아했던 것도 아닌,
그냥 옆에 있는 그런 존재라 하면 설명이 될까 싶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소녀는 그와 사뭇 다른 존재였다.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성스럽기조차 한, 그런 존재라 하면 좀 설명이 좀 될까… ???.

학교에서의 소녀와의 추억이라는 것은 학교생활이 전부였으니,
학교 수업에 적응치 못하여 불량소년인 나로서는 기억나는 별다른 것은 없다.

그녀의 집이 물 건너 마을이니 부대끼며 놀았던 기억도 느낌도 없었다.

단지 옆집소녀와는 다르게 얼굴마저 희미하고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 신비로운 존재지만 잊히지 않는 헤르만 헷세의 뮤우즈(Muse) 같은 그런 것이었다.

 

이제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르익어, 내 나이는 중년을 넘어가고 있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내 이리 옛 추억을 끄집어내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유년의 추억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는 것을 썩 내키지 않아 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내 초등학교 동창 중에서도 유년의 기억이 구질구질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는 감추고 싶은 과거쯤으로 여기는 친구가 있다 한다.

이제 중년이 된 지금에도 초등학교 때 친구를 머 보듯이 하며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풍요의 포로가 되어 허덕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경제적 풍요와 그들이 생각하는 품위 있는 생활이 유년의 추억을 구차하고, 창피하고, 지우고 싶은 고통으로 느끼게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고귀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내 너무나 좋아해서 매일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나 디베르티멘토를 듣는다 하여
어릴 적에 부르던 “아기야 나오노라…”로 시작하는 동요와는 바꿀 수 없는,
다르고 이질적인 것이다.

이질적이라 하여 대립되거나 불쾌하게 하지는 않다.

나는 레퀴엠을 들으며 고향의 구린내 나는 향수를 만끽하곤 한다.

이야기가 묘한 곳으로 흘러버렸다.
내 이야기하고픈 것은 유년의 소녀이니, 충실히 그 유년의 길을 따라 걷기로 하자.

 

이제와 말하건대 유년의 소녀 중에 하나는 바로 인례이다.

잊히지 않는 유년의 소녀가 인례라 하니
내 유년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라면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인례를 기억이나 해 낼지, 그도 의심스럽다.

인례는 인례뿐만이 아니라 함께 뒤엉켜 다가오는 덩어리 같은 그런 것인데, 인례와 더불어 떠오르는 인례할머니가 바로 그것이다.

그분의 입담은 참으로 걸출하신 분이시다.

언젠가 옛이야기를 같이 나누시던 내 어머니께서 그분의 입담에 대해 생생한 기억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나만의 기억이 아님에 틀림없는 것이리라.

원래 인례네 가족은 우리 고향 사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시대에는 일본에서 사시던 분이라 한다.

어찌하여 옻밭골에 와, 터 잡아 살게 되었는지
내 기억으로도 내 어머니의 기억으로도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그분이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국하던 일을 얼마나 실감나게 말씀하시던지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애잔하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내용은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하더라도
대략적인 내용과 느낌은 여전히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례할머니의 입담 덕분에 우리는 주로 인례네 집에 놀았다.

인례네 집에 자주 놀았던 또 다른 연유가 있다면 인례네 집이 우리 집보다는 크다는 사실도 한 몫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만만한 인례는 거친 나에게 있어 항상 놀이감의 대상이 되어 고통 받는 그런 아이였다.

앞머리와 뒤 머리를 직각으로 자르고 뒤 부분은 잘록하게 잘라서 면도로 밀어 파랗게 멍든 그 단발머리의 소녀,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애써도
그 단발머리 외에는 다른 영상을 떠오르지 않는 이 소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적 11월 말에 이사를 간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고향 오동안은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어디를 보아도 산으로 막혀 있고 그리고 그 위로는 하늘이었다.

일부러 길을 찾아 한참 산모퉁이를 돌아 걷지 않으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조차 없는 그런 마을이다.

제아무리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그곳에는 조무래기 친구와 친척들 속에서 복잡하게 연관되어 살았었다.

내가 이사 간 제주는 그와 사뭇 다르게, 뒤에는 한라산이 앞에는 끝이 없는 바다였다.

내가 아는 한 내 고향은 바다 건너 북쪽, 어릿하고 희미한 저편이었다.

친구도 없고 내 가족 이외는 아무도 없는 제주도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은 숨 막히는 외로움이었다.

마을과 한참 떨어진 외딴 곳에 사는 탓에 친구란 멀고도 낯선 먼 곳에 있었다.

학교의 같은 반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2km를 족히 걸어야 하는 그런 곳 이었으니 소년기를 자연스럽게 옛 유년의 추억으로 가득 채울 방법 외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이 두 소녀는 상상에 나래의 전부였고, 슬플 때건 즐거운 때건 꺼내 만지작거리는 조약돌이었다.

그때의 절절함이란 지금도 가만히 떠올리면 눈물이 절로 날 지경이었다.

그런 연유로 세월이 흐르건만 나는 항상 성장이 멈춰진 체 그 소녀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소년이었다.

그 후에도 유난히 굴곡이 심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다.

혹은 거칠고, 혹은 무능하고 절망적이며, 반항적인 청소년기의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도 두 소녀는 내가 나임을 확인해 가는 삶의 안식처였다.

내가 성장하여 도시로 나왔을 때에도 여전히 그 두 소녀를 만지작거리는, 그런 유년의 소년인체로 살아야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그 소녀 중에 하나는 가끔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이젠 소녀가 아니라 아줌마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소녀인체 성장이 멈춤 소녀는 인례이다.

내 아무리 애써 상상하여 보아도 인례는 성장을 멈춘 단발머리 소녀인체, 그대로이다.

그런 인례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면 나 또한 유년의 소년이 된다.
7살일까, 8살일까, 아니면 10살, 11살 아무튼 나는 그런 소년이 되어 인례와 놀곤 한다.

인례는 소녀다.

성장하지 않은 채 고향에, 그 초가집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소녀가 나에겐 있다.

그리고 나는 가끔, 이야기가 있는 그 집에 놀러간다.

 

소년이 되어서….

 

 

2008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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