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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전문가는 누구인가, 누가 전문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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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시형 작성일: 2016-03-07 조회수: 845

전문가는 누구인가, 누가 전문가인가

 

2013년은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영국에서 기생충학을 전공한 다음, 2010년 스와질랜드에 기생충 관리사업을 지원하는 자원 봉사자로 파견되어 있는 동안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첫 출간한 기생충 관련 대중 과학서(<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는 분에 넘치는 호평을 받았고, 2013년에는 국제 엔지오(NGO)에서 수행하는 탄자니아 기생충 관리 사업 책임자가 되어 스무 명 넘는 직원분들이 계신 지부의 사무장으로 취직도 했다. 계속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분명히 나쁘지 않은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내 능력에 대한 자만심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량한 스와질랜드 1년 간의 경험을 가지고 아프리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프리카 파견 중, 그리고 군 복무 중 개인적으로 공부한 국제개발학 내용을 통해 관련 분야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관련 전공자가 비교적 드문 분야인 기생충학을 공부한 덕분에, 자칭 ‘전문가’가 되기는 어렵지 않았다. 농담처럼 ‘블루 오션’, 혹은 틈새시장에 들어간 셈이다. 어느새 한국에서는 소외열대질환과 기생충 전문가 취급을 받았고 나도 그런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흔히들 하는 말처럼, ‘한국에서는 뭐든 6개월만 하면 전문가’라고 말하는 그런 전문가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업 책임자로 파견 가던 시점에서 기생충 박멸 사업 관리 정도는 내 지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고,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즉 이 정도의 지식 수준이면 이미 준비되어 있고,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고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셈이다. 덕분에 2013년은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현장에서 필요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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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그때는 전문가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지식만 충분히 쌓는다면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문가의 자질은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쌓여 있는 지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하루하루의 일과, 순간순간의 결정,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물로서 상대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에서 내가 가진 지식들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적절한 시점에 그 지식을 자신의 행동에 녹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전문가라는 사실을 몰랐다.

 

지식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 전문가일 수는 없다. 국제개발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탄자니아의 기생충 관리 사업 책임자로 임명되었지만 기생충에 대한 지식만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는 없다. 사업 수행에는 행정, 회계, 인사 등 조직 관리 뿐 아니라 대외 기관과의 알력과 정치, 한국 본부와의 협력과 설득, 그 외에 수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이런 사항에 대해 모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곳에서 전문가를 원하는 것일까?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합리적이며 일관성 있는 상황 판단과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설령 그 판단과 결론이 적절치 못하거나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하더라도, 합리적이며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를 역추적해 수정하고 미래에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실수를 수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언할 수 있다. 즉 전문가는 자신의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또한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논리 구조를 통해 다른 다양한 분야에도 ‘전문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를 선호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나는 전문가라기에는 웃음거리도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기생충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이를 의사결정 구조에 충분히 녹여내지 못했다. 기생충 투약 프로그램을 짜는 데 근거 중심의 투약 절차를 확립하지도 못했고, 검진 과정에서 혹시나 있을 양성 환자의 낙인 효과를 줄이는 데 신경 쓰지도 못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부당한 부분에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개진을 하지도 못했고, 불필요한 사업 수행에서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도 못했다. 내가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을 설득할 만큼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는 결정을 내리고 이를 표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아니었던 것이다.

 

 

전문가 과잉사회에 대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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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즉 해당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전문가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그리고 사회에서 흔히 원하는 전문가는 대체로 ‘지식의 정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학력 수준이나 외부적 명성 등의 요인에 많이 기대고 있다.

 

국 사회는 전문가 과잉 사회다. 전문가를 원하는 곳도 많고, 전문가를 자칭하는 사람도 많다. 전문가주의 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전문가주의는 전문직의 실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반대로 전문가의 권위를 부당하게 권력화 하는 부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전문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한 현실에서 실력과 권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이를 권력으로 남용하는 사례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를 원하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문화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적 권위를 남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쇼닥터(show doctor) 문제가 있다. 방송을 뜻하는 쇼와 닥터의 합성어로, 일반 대중이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우며,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보는 이에게는 신뢰를 준다는 점을 악용해 근거가 부족한 여러 시술이나 건강기능식품들을 추천하는 행위를 하는 의사들을 말한다. 최근들어 대한의사협회 등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전문가의 권위로 상대의 의견을 억누르며 합리적인 의심을 제거해 책임을 회피한다. 한국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권위주의를 전문가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왔다. 우리 사회 내에서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로서 그 양심과 태도를 저버린 ‘전문가’들이 권위로 다른 의견을 억누르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과적으로 이는 전문가 자신의 기반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을 만들거나 의사결정이 필요할 때 전문가의 권위는 빌리지만, 전문가의 의견이 실제 미래의 변화에 반영되는 경우는 적다. 그만큼 한국 사회 내에 전문가를 가르는 기준도, 전문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음을 반영한다.

 

때문에 전문가를 원하는 곳과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온도차도 생긴다. 많은 단체에서 ‘전문가’를 원하기 때문에 관련 분야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해당 분야의 전공을 고민하게 된다. 국제개발 분야를 예로 들면 개발학을 공부해야 할까, 보건이나 교육 같은 특정 분야의 학위를 따야 할까? 보건학이나 교육학 등의 학위가 있으면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지식이 전문성, 아니 전문가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어떻게 생각하고 고민하며, 어떻게 판단과 결론을 내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가 전문가를 가늠하는 기준이라 생각한다.

 

학위 교육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을 제공하기는 한다. 과학이 특정 학문 분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현실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련의 방법론이자 논리 전개 과정인 것처럼, 전문성도 지식의 정도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논리성과 태도, 또한 그에 따르는 책임에 있다고 본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고,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결국 지식(혹은 학위, 경험, 직위, 명성 등)만으로 자신을 전문가라 부를 수 있는지는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민할 문제다.

 

마찬가지로 ‘전문가’를 원하는 단체 역시, 단체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가 과연 지식의 정도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도 계속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전문가의 권위를 바탕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입맛에 맞는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기 위함인가. 아니면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꿈꾸기 위함인가.

 

학자 이반 일리치는 <전문가들의 사회>(사월의책)에서 유능한 전문가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무능력해진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이 이렇게 사회의 필요와 충족을 독점해 공동의 정치가 실종되고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독점적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합리적이며 책임있는 결정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난다면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학문을 하면서 왜 우리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 하는지, 왜 우리는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볼 때다.

 

정준호 기생충 연구자, 전 NGO 활동가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글 삭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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