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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23-01-17 조회수 : 1,306
제 목 : 경과실과 중과실의 차이

중과실이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인가?

이충상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 특히 이사의 자기거래에 대한 이사회의 승인과 관련하여 -

1. 우리 판례 중에 이사와 자신의 회사간의 거래에 대하여 이사회의 승인이 없음을 알지 못한 데 대한 중과실을 인정한 사례가 적은 편이다. 그 이유로 중과실이란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어지간해서는 중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관념이 일부 법관에게 있는 것을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도 법관 재직시에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변호사로서 소송수행을 해보니 그러한 관념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2.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는 것은 일본 최고재판소 1957. 7. 9. 판결 등의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중대한 과실이라 함은 … 거의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결여 상태"라는 판시에서 유래하였는데, 당시 일본에는 목조주택이 대부분이었고 주택이 연접해 있어서 실화로 인하여 주택 여러 채가 연소되기 쉬웠고 연소된 모든 주택에 대하여 책임을 지우는 것이 가혹하였기 때문에 중과실로 인한 경우에만 연소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특별법으로 제한을 하였으며, 그러한 책임제한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하여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판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판시가 우리나라의 실화책임 등에 관한 대법원판결에 들어왔다.

3. 그러나 일본의 다수설은 중과실을 '현저한 주의의무위반'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최고재판소 판례보다 넓게 보고 있다. 한편, 道垣內弘人(도가우치 히로토) 東京大學 교수는, 중과실이 문제되고 있는 각 조문의 취지에 따라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경우와 '현저한 주의의무위반'으로 파악해야 할 경우가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그의 "「重過失」の槪念について"라는 논문이 우리나라의 민사법학(한국민사법학회) 57호(2011년 12월)에 실려 있다}. 예컨대, 국가는 공무원에게 그 직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할 것을 장려하고 있으므로 공무원이 직무상 국가에 대하여 손해를 가한 경우에는 거의 고의에 가까운 중과실이 있어야만 국가가 공무원에 대한 국가배상법상의 구상권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함에 비하여, 회사 임원의 제3자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는, 손해를 입은 자가 어디까지나 제3자이고 제3자가 당해 임원의 직무집행을 장려하고 그 이익을 얻고 있는 관계에는 있지 않기 때문에, 임원에게 고의에 준하는 잘못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3자가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한다.

4. 일본의 판례

가. 이사와 회사간의 거래에 대한 이사회의 승인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에 중과실이 있다고 인정한 東京高等裁判所 1973. 4. 26. 판결, 大阪地方裁判所 1982. 12. 24. 판결, 那覇地方裁判所 1997. 1. 13. 판결이 있는데, 위 판결들 모두 중과실이 있다고 판시하였을 뿐이고 고의에 가까운 것을 요한다고 판시하지 않았다.   
나. 일본 최고재판소 1982. 7. 15. 판결은, 혈중알콜농도 0.098% 상태에서 제한시속 40㎞의 노상을 시속 70킬로미터 이상으로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우측노견에 주차중인 견인차에 충돌하여 사망한 사안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인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고의에 가까운 주의결여'라는 판시를 하지 않았고, 그 제1심판결은 위 중과실에 해당하기 위하여 '고의에 가까운 주의결여의 상태일 필요성이 꼭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위 사망자에게 중과실은 있었지만 '고의(자살의사를 의미함)에 가까운 것' 은 없었던 것 아닐까?
다. 일본의 보험회사들이 1998년부터 '극히 중대한 과실'을 면책사유로 약관에 규정하였는바, 이처럼 '극히 중대한 과실'이 별도로 규정된 후로는 중대한 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5.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주의의무의 현저한 결여'로 판시한 대법원판례와 그 판례의 해설과의 차이

가. 대법원 2004. 3. 25. 선고 2003다64688 판결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이사회의 승인 없이 회사와 거래한 경우) 중대한 과실이라 함은 제3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 거래가 이사와 회사 간의 거래로서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이사회의 승인을 얻은 것으로 믿는 등 거래통념상 요구되는 주의의무에 현저히 위반하는 것으로서 공평의 관점에서 제3자를 구태여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판시하였지, 중대한 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상태'라고 판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위 대법원판결에 대한 판례해설(대법원판례해설 49호 348면)은 "악의에 준하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판례해설을 쓴 재판연구관에게 중과실은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 내지 '악의에 준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표현된 것일 수 있다.
나. 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다40432 판결 및 이에 대한 판례해설(대법원판례해설 47호 136면)에서도 위 가.항과 같은 상황이 있었다.
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판례해설에 중과실을 두 가지로 나누어 "중대한 과실은, 경과실과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서 고의에 준함이 상당한 것만을 가리키는 경우와, 양적으로 경과실보다 무거운 것을 널리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 것이 있다(김광태 부장판사, "중대한 과실을 이유로 한 건강보험 급여의 제한", 대법원판례해설 45호, 146면).
 
6. 그 밖의 대법원판례에 비추어

가. 대법원은 실화책임과 관련하여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하면서도 여러 사건에서 중과실을 인정하였다. 더구나 최근에는 목조주택이 거의 없어졌고 화재발생 후 20분 내에 소방차가 도착하는 비율이 98% 이상으로 되었으므로 실화책임과 관련하여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필요 자체가 없어졌다(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4헌가25 결정은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하였고 그 후 위 법률이 개정되었다).
나. 대법원은 어음·수표의 선의취득 여부와 관련하여 여러 사례에서 중과실을 인정하였으며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판시하지 않았다.
다. 착오가 표의자의 중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하는바, 여기에서의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하는 판례나 학설이 없고, 통설은 '주의의무의 현저한 결여'로 보고 있다. 이것은 모든 조항의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7. 채권양도금지특약이 있는 경우와의 비교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는 채권양도금지의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판례와 통설은 제3자가 중과실(대법원 2010. 5. 13. 선고 2010다8310 판결은 여기에서의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준하는 것'으로 보지 않음)인 경우에는 선의라도 그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 법률이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 한다"라고만 규정하고 있는데 선의라도 중과실 있는 제3자는 제외함으로써 대항할 수 없는 제3자의 범위(보호받는 제3자의 범위)를 해석에 의하여 좁힌 것이다.
이에 비하여, 이사회의 승인 없는 '이사의 자기거래'에 있어서는 제3자 보호 규정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에 의하여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제3자를 보호하자는 것일 뿐이므로 그 제3자의 범위는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에 의하여 보호받는 제3자의 범위보다 넓을 수 없다.

8. 형사법과 비교하여

형사법에서는 '미필적 고의'와 '중과실'을 전혀 다르게 취급한다. 이와 관련하여 민사법에서 형사법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만 큰 괴리는 없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에 비추어 보아도 민사법상 중과실을 가급적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9.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 

이 글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인 경제민주화와 관련이 있다. 기업의 이사(특히 owner)가 이사회의 승인 없이 자신의 기업과 거래하여 기업의 이익을 빼내서 제3자에게 맡기거나 넘기는 것을 방지함을 경제민주화의 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와 회사 간의 거래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개정상법이 2012. 4. 15. 시행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개정은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러한 거래에 대한 이사회의 승인이 없는 것을 알지 못함에 중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어야만 그러한 거래에 대한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법원이 종전과 같이 위 중과실의 인정에 인색하면, 회사와 거래를 한 이사가 그 거래의 목적물(예컨대, 그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자회사 발행주식)을 제3자에게 전매하거나 증여함으로써 그 거래의 목적물의 추급할 차단할 수 있게 되어 위 상법개정은 무력화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시대의 발전을 법원이 가로막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그 이사는 자신 명의로 재산을 놓아두지 않으므로 회사는 현실적으로 그 이사를 상대로 해서도 아무 것도 받아낼 수 없다(제3자를 상대로 추급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10. 결론

이사와 회사 간의 거래에 대하여 이사회의 승인이 없음을 알지 못한 데 대한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관념할 것이 아니다. 중과실을 '거의 고의에 가까운 것'으로 관념한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위와 같은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고 일본의 판례는 중과실의 인정에 인색하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위와 같은 관념에 사로잡혀 중과실을 인정한 사례가 너무 적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위 중과실의 인정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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