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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22-06-06 조회수 : 298
제 목 : 한바위 골에서 236

한바위 골에서 236

 

90년 전 호복동에

가느다란 빛이 시작되었지요.

넉넉할 수 없는 살림

험난한 강점기의 고통에도

혼란과 두려움에 전쟁통에도

빛이 되어 갔습니다.

 

어찌 평탄하고 너그러운 삶만 있으랴

옻밭골 작은 집

그 작은 농토로는

작고 어린 자식들도

어여쁜 아내도

어느 하나 해결할 수 없는 나날

어찌해보려는 작은 시도로도

큰 낙담으로 돌아왔던 삶

그래도

비록 작아진 영롱한 등불이었어도

여전히 등불이었습니다.

 

보리밭에는

이제 막 고개 수그리는 늦은 오후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한바위골을 넘는

무거워 짓누르던 태양을 등에 지고

작은 집 옻밭골을 떠났지요.

 

강 건너고

바다 건너

그저 희미한 끈 하나

무작정 왔건만

주렁주렁 자식

마냥 커가는 밥그릇

세상은 오해와 질시만 가득한

끝없는 막막함에도

여전히 그 불빛으로

우리는 자랐지요.

 

왜 그리도 술이 달던지

왜 그리도 술이 쓰던지

해도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암담한 삶
악쓰듯 “가슴 아프게”만으로

온 동네 가득 채웠어도

다음 날 새벽이면

일터로 가시던

널디 넓은

그 어깨 그리고 그 등짝

그래서 꺼지지 않은

그 빛으로

우리는 성장했습니다.

 

어찌어찌 성장한 자식

하나 하나 제짝 찾아가던 날

여전한 빛으로

맨 앞길을 비추었지요.

 

어두워 더듬거릴 때도

길을 감추던 안개낀 날도

진눈깨비로 앞을 가리워도

여전히

희미한 빛으로

옆에서 길을 가리키던

등대였지요.

고개 들어 찾으면

그곳에

항상 그곳에

비추고 계시었지요.

 

그렇게 빛이었으니

언제나 빛이었으니

찾기만 하면 늘

그곳에 있는

등대가 되어 주십시오.

 

항상

그곳에 계시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

규도 아버지

시형이 아버지

명순이 아버지

전순이 아버지

전안이 아버지

규선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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