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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4-08-19 조회수 : 3,575
제 목 : 한바위 골에서 199

한바위 골에서 199

왕복 8차선 거대한 대로변 가운데,
경계부분에는 언젠가부터 은행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검은 아스콘 바닥이 둘러싸인 탓에 제대로 뿌리내릴 수도 없는 곳이지요.
일렬로 줄지어 은행나무만 심어져 있어서 누구하나 물주고 다독여 주는 이 없이 오르지 비만을 기다리는 삶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입니다.
그렇더라도 은행나무는 해마다 가을이면 은행 열매와 노란 은행잎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맞이하곤 했었지요.
그런 은행나무가 어느 땐가 가뭄이 들어 그리도 힘들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끄떡없이 버티었는데 올해는 비오고 날 더운 어느 날부터 그만 시들기 시작했습니다.
옆 또 그 옆 그리고 그 옆 은행나무는 싱싱하게 여름을 비켜가고 있는데, 오직 한 구루만 열매를 너무나도 많이 힘겹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더니, 잎이 누렇게 시들어가다가 드디어 메말라 잎도 없이 하나 둘 열매를 떨어뜨리고 있는 겁니다.
아직 늦가을이 아닌데 다른 은행나무는 아직 열매가 여물지도 않아 녹색인데 크지도 않은 열매를 노랗게 물들이고서, 제 몸에서 하나하나 떼어내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가엽고 안타깝던지! 가던 길 멈추고 육교 위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지요. 아마도 그 많은 열매를 맺지 않았더라면 저리 죽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제 몸 살아남기 위해 열매가 크기 전에 제 몸에서 떨어뜨렸더라면 지금 저 처참한 모습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젠가 처갓집 마당에 은행나무도 열매가 너무 많이 매달더니 죽고 말았지요.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 그 많은 열매를 매달았는지 한심할 수도 있지요.
우리 장모님 긴 한숨 끝에 “자식 욕심 많아 제 목숨도 부지 못하는 것이 꼭 사람 같다”며 혀를 차시던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저 은행나무도 자식 욕심 많아 제 목숨 건사도 못한 것이겠지요.
주변 은행나무는 적당히 아니면 아예 열매를 맺지 않았는데,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못해 다 가지려다 모두 놓치는 것도 모자라 제 목숨마저 버리는 어리석음이라고, 육교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괜한 소름이 밀려옵니다.
무엇 하나 내려놓지 못했던 은행나무지요.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채우려다가 어느 하나도 잡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결국은 있는 것마저도 놓치는 그런 삶 말입니다.
하나부터 내려놓았어야 했습니다.그리고 또 하나 내려놓을 일입니다.
모두 내려놓고서 홀 가분, 가벼운 몸으로 하늘만 볼 일입니다.
머릿속마저도 비워갈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저 은행나무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려고 합니다.
은행나무는 분명 천년 살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더 가지려다가 그리 된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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