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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8-24 조회수 : 5,318
제 목 : 기억의 불완전함: 내 기억은 얼마나 진짜 기억일까?

기억의 불완전함: 내 기억은 얼마나 진짜 기억일까?

 

[5] 기억의 이면…거짓기억, 조작기억
 

 

 


우리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기억은 우리 믿음과 다르게 생각보다 쉽게 조작되거나 사라지고, 허위로 생겨나기도 한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이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은 우리 기억이 사실은 하드디스크에 써 내려가는 컴퓨터 데이터와는 다른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 그림 1. 영화 <토탈리콜>의 한 장면. 주인공 더글라스는거짓 기억을 이식해 주는 회사인 ‘리콜’을 방문하여 화성여행의 경험을 심고자 한다. 인위적으로 원하는 기억을 심는 기술은 실현 가능한 기술일까? 출처/ 토탈리콜, 1990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얇은 막 하나이다.”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난 6월 말, 일본에서 오랜만에 공각기동대의 새로운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어라이즈(ARISE)>가 개봉했다. 앞으로 총 4편의 에피소드로 엮일 프리퀄(전편의 앞 시기 이야기를 담은 속편) 형식의 이야기로,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가 군에서 나오면서 처음 공안9과를 만들 때의 이야기들을 담을 예정이다. 한동안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았기에 많은 공각기동대 마니아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공각기동대 어라이즈>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고스트 페인(Ghost Pain)’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특유의 액션과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주었다는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이 그려내는 미래의 뇌과학 기술과 인간의 본질적 모습을 눈여겨 보는 뇌과학도인 나에게 이번 에피소드는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는데 그건 바로 ‘기억 조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쿠나사기의 ‘조작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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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지는 않겠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과거의 일이 실제 있었는지 믿을 수 없다면 과연 우린 살아갈 수 있을까? 내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무엇에 근거해서 일상의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새로운 에피소드 ‘고스트 페인’의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는 자신의 상사가 연루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밝혀지는 정황이 자신의 기억과 너무 다르다는 데에서 혼란을 느낀다. 자신이 해외에서 돌아온 날짜, 나눈 이야기의 내용, 심지어 평생 간직해 왔던 부모님에 대한 기억,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추적하고 있는 사건의 증거들과 상충한다.
 

 
 

무 당연한 듯 생각되는 생생한 자신의 기억과 이를 거부하는 명백한 사실증거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던 쿠사나기는 자기 기억이 다른 어떤 세력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깨닫고는 스스로 과거의 거짓기억을 지운다. 거짓이지만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부모님의 추억도 지워야 하는 쿠사나기는 괴로웠지만 새로운 인간으로서 군대를 나와 공안요원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자신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과거의 일을 주변 사람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게 아니야’라고 말하면 수긍할 수 있을까? 만약 에피소드 속의 쿠사나기 모토코가 처한 것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논리적인 판단으로 스스로 생생한 기억을 의심하고 부인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내가 어린 시절에 열기구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에 있는 쿠란다 열대우림 상공을 비행한 기억이 있다고 해보자. 넓게 퍼져 있는 거대한 나무숲과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동이 지금까지 생생하고 심지어 아빠가 사주었던 10달러짜리 캥거루 고기를 보고 질색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던 나에게 부모님이 ‘너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보통 본능적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다르게 생각보다 쉽게 조작되거나 사라지고, 또는 허위로 생겨나기도 한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무장한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이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은 우리 기억이 사실은 하드디스크에 써 내려가는 컴퓨터 데이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기억의 불완전함은 우리 생활에서 일상적인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이런 기억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와 더불어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발전한 뇌과학 기술을 이용한 기억 조작 연구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억을 심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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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전이 된, 오래 전 폴 버오벤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 <토탈리콜>을 보면 간단하게 돈을 주고 추억이 담긴 기억을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억을 파는 회사인 리콜은 굳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 힘들게 진짜 여행을 떠나느니 간단히 여행의 즐거운 기억을 뇌에 곧바로 심어주겠다고 광고한다. 광고를 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음흉하게도 미인 스파이와 나누는 로맨스 기억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화성 여행 기억’을 구입하여 즐기고자 한다. 영화에서는 여행 기억을 뇌에 이식하기 위해 번쩍거리며 왠지 복잡해 보이는 첨단 기계를 이용해 슈왈제네거 머리에 기억을 심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실재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을 심는다는 이런 사업은 먼 미래에 첨단 뇌과학 도구가 발명된 이후에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 영화에 나오는 정도의 엄청나고 자세한 기억은 힘들겠지만 단순한 거짓 기억의 이식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영화에 등장하는 덩치 큰 기계도, 정교한 테크닉도 필요 없다. 사진 몇 장이면 된다.
 


 

난 2002년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 심리학과의 스테판 린드세이(Stephen Lindsay) 교수는 과거에 열기구를 탄 경험이 없는 사람 20명을 모집하여 기억 조작에 대한 실험을 했다.[1] 먼저 린드세이 교수는 피험자 몰래 피험자의 가족들한테서 피험자의 어린 시절 사진을 받아서는 피험자가 어린 시절에 열기구를 탔던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몇 장씩 조작하였다. 그리고 그 조작된 사진들을 몇 장의 진짜 사진과 섞어서 피험자에게 보여주며 그들에게 사진 속 장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을 최대한 회상해보라고 했다.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면 눈을 감고 명상을 해 보라고 종용하기도 하고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보라고도 하면서 며칠 차이를 두고 같은 과정을 두 번 더 시행하였다.
 

 » 그림 2. 2002년 린드세이 교수가 거짓 기억을 형성시키기 위해 사용한 진짜 사진(왼쪽)과 합성된 가짜 사진(오른쪽). 4세에서 8세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일파티나 가족 휴가에서 찍은 사진을 받아서 열기구에 탑승하고 있는 사진을 포토샵을 이용해 합성하였다. 거짓 기억을 유도하기 위해 합성된 열기구 사진들을 다른 진짜 사진들과 섞어서 그럴듯한 이야기와 함께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출처/ 각주 [1]
 

그러자 결국 절반에 가까운 피험자들이 어렸을 때 열기구를 탔던 기억을 회상해 냈다. 심지어 조작된 사진에도 담겨 있지 않았던 세세한 내용까지 그제야 생각났다며 술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실험이 끝난 뒤 피험자들은 실험 내용을 듣고서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몇몇은 기억이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자신이 지금까지 열기구를 탄 적 없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워낙 간단해 보이는 실험이라서, 거대한 기계나 최신 장비를 이용해 뇌에 뭔가를 주입하는 복잡한 실험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약간 허탈할 수도 있지만 거짓 기억과 거짓 정보를 심는 것은 워낙 쉬운 일이라서 지금까지 다 큰 어른뿐 아니라 갓난아이, 고릴라, 쥐 등 여러 동물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기억 조작 연구가 수행되었고 성공적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었다. 특히 인간은 거짓 기억의 형성에 취약해 심리학자들이 수행한 다양한 실험(어린 시절 쇼핑몰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 난폭한 동물의 공격을 받았던 기억,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기억 등)에 대해 15~50%에 달하는 피험자들이 쉽게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2]


 

전통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억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처럼 생각해 왔다. 어떤 이유로 인해 그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거나(혹은 ‘억압’되거나!)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과거 기억은 변형되지 않은 채 우리 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적절한 기제가 존재한다면(예를 들어 과거 사진을 보거나 최면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억을 다시 있는 그대로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 조작에 관한 위와 같은 많은 심리학 연구들은 우리 기억이 생각보다 쉽게 변형되거나 사라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기억은 어딘가에 숨겨진 채 풀려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변형되거나 잊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렇다면 이런 기억 조작은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사건들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억이 이토록 쉽게 조작된다면 어디 무서워서 인생을 살 수나 있을까? 안타깝게도 중요한 기억이 조작될 수도 있는 것 같다. 기억 조작에 대한 사례 가운데에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억압된 기억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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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에일린 프랭클린이라는 여인은 자기 아버지 조지 프랭클린이 20년 전인 1969년에 자신의 어릴 적 친구였던 수전 네이슨을 살해했다고 고발했다. 1991년 1월, 아버지 프랭클린은 1급 살인이라는 배심원의 유죄 평결을 받고서 무기징역 형 선고를 받았다. 아버지와 별 문제없이 살던 딸이 어느날 갑자기 자기 아버지를 살인범으로 지목해 감옥에 보낸 것이다. 이런 뜬금없는 사건에 딸이 내놓은 증거는 다름아닌 20년 만에 회복한 자신의 기억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최면술을 비롯해 심리치료를 받던 그는 치료 도중에 너무 끔찍해서 자신 안에 억압되어 있던 과거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고 결국 20년이 지난 그제서야 신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일린은 수전 살해 사건 말고도 자신의 아버지가 또 다른 18세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했으며 다른 두 건의 살인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과거 기억을 근거로 별 다른 증거 없이 아버지 프랭클린에게 1급 살인 유죄 평결이 내려졌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아버지 프랭클린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연방법원에서 다뤄진 항소심에서 원심은 뒤집혔고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이뤄진 수사에서 발견된 디엔에이 검사 결과 같은 다른 증거들은 아버지 프랭클린의 결백을 증명해주었고 그의 알리바이도 확실해졌다. 결국 아버지 프랭클린은 무죄로 석방됐다. 프랭클린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지는 6년 7개월 4일 동안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완전한 코미디이자 비극입니다.”[4]


 

화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1980~90년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기억회복 운동(Memory recovery movement)’에 의한 비극적인 사례이다. 당시 여러 가지 심리적 질환을 치료받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아갔던 많은 여성들이 위의 사례와 비슷하게 심리치료를 받던 중에 어린 시절 부모나 친척에게 당한 성추행 기억을 되찾았다는 고발이 잇따랐다. 당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성폭행이나 성추행 기억을 ‘회복’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부모 및 친척인 가해자에 대한 뒤늦은 법적 소송이 줄을 이었었다. 민망하기도하고 고통스러운 재판은 길어졌고 그동안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사람들은 손가락질 해댔다. 대부분의 경우 항소심에서라도 무죄가 밝혀졌지만 이미 가정은 회복할 수 없게 무너진 뒤였다.
 


 

 
» 그림 3. 1990년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기억회복 운동'에서 드러난 거짓기억 사례들을 소개해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로프터스 교수의 저서.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왜 일어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심리학과 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는 이 비극적 사건을 낱낱이 파해친 충격적인 저서 <우리의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원제: The Myth of Repressed Memory)>에서 기억을 회복했다고 주장했던 환자들은 사실 억압되었던 기억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심리치료사들의 치료 과정 중에 행해진 최면과 암시, 그리고 기억 회복을 목표로 하는 치료 모임 활동, 기억 회복을 다루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 의해 기억이 조작되고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앞에서도 얘기했던 쇼핑몰에서 미아가 됐던 기억의 조작 실험을 비롯해 거짓 기억 현상을 주로 연구하는 로프터스 교수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우리 기억이 외부의 잘못된 정보에 의해 쉽게 변형되고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사례 또한 ‘거짓 기억 증후군(False memory syndrome)’이라고 불리며 우리 기억은 있는 사실만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조작되는 불안정한 것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됐다.
 


 

렇다면 당시 피해자를 치료한다면서 잘못된 기억을 이끌어낸 미국의 심리치료사들은 무슨 이유에서 이런 행위를 한 것일까? 당시 심리치료사들 사이에는 ‘방어 기제’와 ‘기억 억압’이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개념과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환자인 피해자들이 어릴 적에 당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기억이 억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나 친척에 의한 성추행은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무의식이 의도적으로 그런 기억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억압된 기억이 환자가 현재 겪는 심리적 질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심리치료사들은 이 억압된 기억을 의식 위로 끄집어내는 근본 치료를 해야 한다고 믿고서 환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기억을 최면이나 상담을 통해 적극적으로 밝혀내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심리치료사들의 이런 편향되고 적극적인 치료 행위는 환자들에게 심리치료사 자신이 기대하는 기억들을 은연 중에 강요하게 되었고(주로 어린 시절 부모한테서 받은 성폭력) 환자들은 자신이 창조해낸 전에 없던 새로운 기억을 ‘회복한 기억’으로 착각하고는 그동안 속아 살아왔다는 분노와 함께 자신의 부모·친척을 고소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이 비극적인 사건은 기억 조작의 가능성에 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억을 조작하고 조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통제된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거짓 기억을 유도할 수도 있을까?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는 뇌과학 기술은 과거에 추상적으로만 상상하던 기억에 대한 메커니즘까지 밝혀 나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직접 과거 기억을 지우거나 변형함으로써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거짓 기억 생성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거짓 기억에 대한 최근의 뇌과학 연구를 살펴보자.
 


 


 

신경세포 자극해 과거 기억 떠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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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억이란 우리 뇌 안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 뇌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경세포는 집단으로서 혹은 그 자체로서 각각 외부 세계의 어떤 정보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내 머리 속의 어떤 신경세포 집단은 우리집 강아지 진숙이를 나타낸다(혈통이 조금 의심스러운(?) 우리집 진돗개다). 내가 진숙이를 보거나 생각할 때, 심지어 진숙이가 짖는 걸 들을 때에도 이 동일한 신경세포 집단이 전기적으로 활성화한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이 신경세포들이 진숙이를 ‘표상한다’고 한다. 신경세포들이 특정 대상을 표상한다는 개념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 ‘진숙이 세포들’의 활성화가 내가 머릿속에 진숙이를 기억해 내는 현상일까? 단지 이들 세포가 전기적으로 흥분되는 것만으로 진숙이의 기억이 생각날까?
 


 

장히 그럴 듯한 추측이지만 최근까지도 이런 추측을 실험으로 증명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뇌를 구성하는 수많은 신경세포 중에서 특정 대상을 표상하는 신경세포만을 정확히 찾아낼 수도 없었거니와 다시 그것만을 선택적으로 활성화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스스무 도네가와 교수 연구팀은 최근 신경과학계에 놀라운 진보를 만들어내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이 일을 해냈다.[5]
 


 

 » 그림 4. 광섬유를 머리에 이식한 유전자 조작 생쥐. 광유전학은 광섬유를 통해 뇌에 직접 전달되는 빛 신호를 이용해 특정 신경세포들만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출처/ 미국 스탠포드대학 광유전학은 무척 흥미롭고 다재다능한 기술이라 이에 대한 소개는 다음에 따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광유전학을 ‘뇌 안의 원하는 신경세포만을 빛으로 조종할 수 있는 기술’ 정도로 이해해 두자. 유전적으로 조작된 생쥐를 이용한 연구에서 도네가와 교수는 단기기억을 형성한다고 알려진 부위인 해마의 신경세포 중에서 실험용 생쥐한테 고통스러운 전기충격을 가할 때 활성화하는 신경세포만을 광유전학적 기법을 이용해 표시했다. 전기충격을 주는 방에 들어갈 때마다 활성화하는 이 신경세포들이 전기충격의 공포를 기억하는 세포들이라고 생각한 도네가와 교수는, 이번에는 그 생쥐를 아주 다른 쾌적한 방에 넣은 다음에 그 신경세포들만을 인위적으로 빛을 이용해 활성화하도록 해보았다. 그러자 쾌적한 방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이던 생쥐가 돌연 공포에 덜덜 떠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 신경세포들을 자극하지 않을 때에는 평화롭게 방안을 뛰어다니다가 그 신경세포들을 활성화하면 자리에 멈춰 벌벌 떠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생쥐가 지닌 전기충격의 공포 기억을 말 그대로 형광등을 켰다 껐다 하듯이 켜고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과거에 겪었던 나의 끔찍한 기억을 누군가가 켰다 껐다 하는 느낌일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도네가와 교수는 기억이 일련의 신경세포 집단의 활성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며 이 세포들의 인위적인 활성화가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거짓 기억은 어떨까? 과거의 특정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거짓 기억을 나타내는 신경세포 회로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신경세포 조작으로 만든 거짓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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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가와 교수는 바로 지난 달, 같은 기술을 응용해 기억에 관한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6] 앞선 연구에서는 생쥐가 쾌적한 방에 있을 때 편안한 상태로 뛰어다니다가 빛을 주어서 전기충격을 기억하는 신경세포들을 활성화하면 공포스러운 전기자극을 기억하고는 멈춰서 떨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전기충격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므로 거짓 기억은 아니다. 단지 인위적으로 떠올리게 한 과거 기억일 뿐이다. 도네가와 교수는 이번에는 생쥐의 기억을 조작해서 원래 쾌적한 방을 전기충격의 공포와 연관시키고 싶었다. 다시 말하면 생쥐가 과거에 전기충격을 받았던 방에 대한 기억을 바꿔치고 싶었던 것이다.
 

 
» 그림 5. 생쥐를 이용한 거짓기억형성 실험을 보여주는 개념도. 과학자들은 먼저 수많은 신경세포들 중 쾌적한 파란색 방에서만 활성화 되는 신경세포들을 찾아서 나중에 빛을 이용해 다시 활성화 시킬 수 있도록 신경세포를 변형시켜 두었다 (왼쪽). 그 다음 생쥐를 빨간색 방으로 옮겨서 전기충격을 주어서 공포스러운 기억을 만드는 동시에, 인위적으로 파란색 방을 나타내는 신경세포들을 빛으로 자극하여 활성화 시켰다 (가운데).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킨 파란색 방에 대한 신경세포와 전기충격에 대한 신경세포가 연결된 생쥐는 파란색 방의 기억과 전기충격의 공포가 연합되어서 파란색 방에 들어갔을 때 공포심에 몸을 떨게 된다 (오른쪽). 출처/ RIKEN

 

이를 위해 이번에는 쾌적한 방을 표상하는 신경세포들을 먼저 표시해 놓았다. 예전 실험에서 전기충격을 받을 때마다 활성화하는 신경세포들을 표시해 놓은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생쥐를 쾌적한 방에 넣었을 때마다 활성화하는 신경세포들을 찾아서 미리 표시해 놓은 것이다. 아마도 이 생쥐는 이 신경세포들을 활성화할 때마다 쾌적한 방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는 이 생쥐를 전기충격 방에 집어넣어서 전기충격을 가할 때마다 빛을 쏘여서 인위적으로 표시해 놓은 신경세포들(쾌적한 방에 대한 기억세포들)을 활성화했다. 즉, 실제로 생쥐가 전기충격을 받는 방은 다른 방이지만 전기충격을 받을 때마다 인위적으로 쾌적한 방에 대한 기억을 유도한 것이다.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은 생쥐는 결과적으로 나중에 전기충격을 받은 방이 아닌 쾌적한 방에 들어갔을 때에 전기충격의 공포를 기억해내고는 몸을 떠는 것으로 관찰됐다. 전기충격을 받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쾌적했던 방에 대한 거짓 기억으로 대체된 것이다.
 


 

연구결과는 인위적으로 거짓 기억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기억에 대한 중요한 개념인 ‘연합(Association)’에 대한 현상을 신경세포 수준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한쪽에는 쾌적한 방을 나타내는 신경세포 집단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전기충격의 고통을 나타내는 신경세포 집단이 있다. 다른 두 집단을 인공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연결된 신경세포들은 한쪽이 활성화할 때 함께 활성화해 서로 연관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즉, 쾌적한 방에 대한 기억이 활성화할 때마다 전기충격이 떠오르는 것이다. 도네가와 교수는 이것을 우리 뇌에서 거짓 기억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이라고 이야기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 글에서 소개한 연구들이 공각기동대나 토탈리콜 등에 등장하는 커다란 멋진 기억조작 기계와는 물론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억이라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한층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연구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뭔지도 모르고 기억을 조작하는 기계를 만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게다가 기억에 대해서는 이들 연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이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광유전학의 등장 덕분에 과학자들은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방법으로 기억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광유전학을 응용한 정말 눈부신 다양한 연구를 보고 있자면 정말 아이디어의 향연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내 기억은 얼마나 진짜 기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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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각기동대 시리즈에는 기억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많다. 주인공 쿠사나기는 항상 자신이 지닌 과거의 기억이 실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만들어진 허구인지 고민한다. 아무리 허구로 만들어진 기억이라 하더라도 기억의 주체인 자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생생한 대상이기 때문에 도저히 허구라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들을 위해 거짓기억 형성 연구에 참여했던 피험자들이 실험을 끝낸 뒤에도 실험에서 형성되었던 거짓기억을 잊지 못하는 후유증 때문에 거짓기억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 사이에는 거짓기억의 종류를 피험자에게 위험하지 않고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만한(어린시절 열기구에 탔던 기억처럼) 내용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내부 합의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 자신의 기억은 어떨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어릴 적 기억까지도 생생하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자신이 아기인 시절의 기억도 아직 생각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보았다. 글쎄, 기억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자신의 기억에 너무 큰 확신을 갖는 것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한다(실제로 세 살 이하의 아기는 장기기억을 형성하지 못한다고 한다). 기억의 변형과 조작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고 기억의 주체인 자기 자신이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거짓기억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보고 있자면, 자신의 기억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님을 받아들이고 합리적 수준에서 자신을 믿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 문헌
 


 

[1] Wade KA, Garry M, Read JD and Lindsay DS (2002) Apicture is worth a thousand lies: Using falsephotographs to create false childhood memories,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9(3), 597-603.

[2] Loftus EF (2005) Planting misinformation in the human mind: A 30-year investigation of the malleability of memory, Learning & Memory 12:361-366.
 

[3] Loftus and Ketcham, Witness for the Defense.
 

[4] 우리의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 (2008) 엘리자베스로프터스 저, 정준형 역, 도솔
 

[5] Liu X, Ramirez S, Pang PT, Puryear CB, Govindarajan A, Deisseroth K and Tonegawa S (2012) Optogenetic stimulation of a hippocampal engramactivates fear memory recall, Nature 484: 381-385.
 

[6] Ramirez S, Liu X, Lin PA,Suh J,Pignatelli M, Redondo RL, Ryan TJ andTonegawa S (2013) Creating a False Memoryin the Hippocampus, Science, 341: 387-391.
 


 

홍수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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