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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6-19 조회수 : 4,346
제 목 : 중국에 미소 짓는 미국, 한반도는 또 '피눈물'?

중국에 미소 짓는 미국, 한반도는 또 '피눈물'?

[서남 동아시아 통신] 미중 관계의 진화와 한반도 운명

이문기 세종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13-06-18 오전 9:07:03

 
바야흐로 미국중국은 '환태평양 공동체'라는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펼쳐갈 것인가?

지난 6월 7일부터 8일까지 진행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회담은 향후 미중 관계가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양국 간의 적지 않은 갈등 사안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공히 상호 협력 필요성과 윈-윈(共?)의 동반자 관계 발전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중국 언론에서는 "중미 관계에서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했던 '신형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 구축의 전기를 마련한 역사적 회담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회담이 크게 주목을 끈 것은 파격적인 회담 형식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회담은 국빈 방문 형식의 정식 회담이 아닌, 비공식적 만남의 형식을 취했다. 양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두 지도자 간의 첫 접촉은 원래 9월에 러시아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회의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중남미 3국(트리니나드토바코, 코스타리카, 멕시코) 방문(5월 31일~6월 6일)을 계기로, 미국의 초청에 의해 비공식 정상 회담을 갖게 된 것이다. 만남의 장소도 워싱턴이 아닌, 서부 캘리포니아 휴양 도시 랜초미라지 서니랜즈 별장이었다. 두 정상은 이번 만남에서 두 차례 회담과 한차례 만찬 연회 그리고 산책을 포함해서 1박2일 동안 총 8시간 동안을 함께 했다.


물론 회담 형식이 편안함을 연출했다고 해서, 두 정상 간의 대화 의제도 마냥 편안할 수만을 없었을 것이다. 양국 관계는 크고 작은 갈등 이슈가 산적한 경쟁적인 슈퍼 파워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민감한 갈등 사안은 사이버 안보 문제였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중국 군사력에 대한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미 국방부에 대한 사이버 침투와 해킹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공식 문서를 통해 중국의 사이버 공격설을 제기했고, 중국 정부는 이를 적극 부인하는 상황에서 두 정상 간의 설전은 피할 수 없는 쟁점이었다.

하지만 회담 후 나온 기자 브리핑 내용은 싱거웠다. 매년 열리는 미중 전략 경제 대화에서 사이버안보 문제를 별도의 의제로 다루기 위해 협상 팀을 꾸리는데 합의했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가장 크게 관심을 두었던 '북핵 문제'에서도, 북한의 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원칙적인 합의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은 제시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비공식 회담은 양국 간 현안의 '문제 해결'보다는, 향후 4년간 빈번하게 접촉해야 할 양국 정상 간의 개인적 친분과 '신뢰 구축'에 더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후 나온 양국의 보도 내용은 공히 이번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더욱 밀접하고 진지한 협력 파트너십을 구축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 쪽 언론은 이번 정상 회담의 최대 성과로, '신형 대국 관계' 건설에 오바마 대통령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회담의 의미를 "미중 관계를 새로운 수준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며,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미중 관계가 갈등과 충돌보다는 협력 우위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한국으로서는 양국 사이에서 외교적 딜레마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것이다. 특히 당면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긍정적 신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미중 간의 협력 관계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구조화되면 어떻게 될까?

20세기 미국 외교사 최고의 브레인이자 1970년대 중국과의 수교 협상을 성사시킨 헨리 키신저 박사는 최근 출판한 저서, <헨리 키신저의 중국 이야기>(권기대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향후 미중 관계는 단순한 파트너십 유지를 넘어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나가야 할 '공동 진화(co-evolution)'의 관계로서 '환태평양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신형 대국 관계'와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만약 미중 관계가 '새로운 차원'의 협력 관계로 발전한다면, 우리에게 단기적으로는 외교적 숨통이 트이는 기회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기일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이 세계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주요 이슈에 대해 이해당사자 국가를 배제한 채 양국 주도로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분단 상태인 한반도의 운명은 또다시 양대 강대국의 이익 놀음에 의해 결정되고, 남북 관계는 결국 영구 분단으로 갈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위기 상황이 당장 눈앞에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신형 대국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양자 관계인지 아직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먼저 들고 나온 중국 측 시각에 따르면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문화에 기반을 두면서 양국이 지구적 차원에서 전략적 협력 관계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키신저의 지적대로 양국 지도자들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한 수준이다.

미중 관계의 새로운 진화는 동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전환기에 냉철한 정세 인식과 외교적 통찰력을 갖지 못해서 국운이 비참하게 쇠락했던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우리는 또다시 동아시아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역사적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다.

더 이상 친미냐 친중이냐 식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 전환기의 역사를 감당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남북 간 영구 분단의 위험성을 돌파해야 한다. 한반도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미중 간 세계 전략의 흥정거리로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변 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에서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결국 남북 관계다.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통찰력과 정교한 정치력, 그리고 담대한 결단력을 가진 지도자가 간절히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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