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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3-20 조회수 : 4,378
제 목 : 차베스가 이 혼돈의 시대에 남긴 것은?

차베스가 이 혼돈의 시대에 남긴 것은?

[월러스틴의 '논평'] 한 카리스마형 지도자의 죽음

이매뉴얼 월러스틴 美예일대 석좌교수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떠난 뒤, 어떻게 될까?
(After a Charismatic Leader, What?)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했다. 전 세계 언론과 인터넷은 끝없는 찬사에서부터 끝없는 비난까지 그가 이룬 것에 대한 평가로 뒤덮였고, 일부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이거나 (차베스에 대한) 찬사나 비난의 수위를 제한했다. 이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가지는 차베스가 카리스마형 지도자였다는 점이다.

카리스마형 지도자란 무엇인가? 매우 단호한 성격과 상대적으로 명확한 정치적 비전, 그리고 이 비전을 추구하는 데 있어 엄청난 활력과 지속성을 갖춘 지도자이다. 카리스마형 지도자는 우선 자국 내에서 큰 지지를 끌어낸다. 동시에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만큼 강력한 반대파를 집결시킨다는 점이다. 이 모든 점이 차베스의 사례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현대 역사에서 카리스마형 지도자는 그리 많지 않다.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드골, 미국의 링컨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러시아의 표트르 1세와 레닌, 인도의 간디, 중국의 마오쩌둥,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물론 (콜롬비아의) 시몬 볼리바르도 있다. 이 명단을 보자마자 몇 가지를 깨달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생애 내내 논란에 휘말렸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의 공로와 잘못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그들은 역사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추구한 정치는 (서로) 전혀 동일하지 않았다.

카리스마형 지도자의 죽음은 항상 불확실성으로 찬 공간을 만들어 내고, 그의 지지자들은 제도화를 통해 그의 정책을 이어가려 한다. 막스 베버는 이를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ation of charisma)라고 칭했다. 그러나 한 번 일상화되면 그 정책은 항상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진화한다. 당장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점치려면 물론 차베스가 이룬 것을 평가하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또한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가 오늘날 처해 있는, 내부적 힘의 균형과 보다 큰 범위에서의 지정학적·문화적 맥락 모두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차베스의 업적은 명확해 보인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거대한 석유 자산을 활용해 극빈층의 병원학교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고, 그 결과 빈부격차를 크게 줄여 극빈층의 삶의 조건을 크게 향상시켰다. 게다가 그는 많은 국가들에 대한 석유 수출에 보조금을 지원해 특히 카리브해 국가들이 최소한으로 생존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게다가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자치기구 -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볼리바르적 대안'(ALBA) 뿐 아니라 남미국가연합(UNASUR),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국가공동체(CELAC), 그리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등 차베스가 가입한 기구들 - 활동에도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활동에 노력한 이는 차베스 혼자만이 아니었지만 그는 특히 역동적인 역할을 맡았다. 브라질의 룰라 전 대통령이 끊임없이 차베스를 칭찬했던 그 역할이었다. 차베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특히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 많은 대통령들(약 34명)의 숫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입증한다. 강력한 라틴아메리카를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 있어 차베스는 물론 반제국주의적 역할, 본질적으로는 반미주의를 표방했고, 그래서 미국 정부로부터는 인정을 전혀 받지 못했다.

특히 이웃국가 콜롬비아의 우파 대통령이 차베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 내 오랫동안 지속된 게릴라 반군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차베스가 매우 긍정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차베스는 양쪽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중재자였고, 그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정치적 해결책을 찾았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지지자가 6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길가에서 차베스의 관이 운구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사진을 들고 통곡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차베스를 깎아내리는 이들은 그가 정부의 부패를 조장했고, 권위주의적 정부를 만들었으며,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다고 비난했다. 부패는 틀림없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돈이 넘쳐나는 어느 정권에서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돈이 더 넘쳐났던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에서 벌어진 부패 스캔들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이러한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정권이 권위주의적이었다? 확실히 맞다.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등장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다른 권위주의형 지도자들에 비해 차베스는 두드러지게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의 숙청이나 강제 수용소는 없었다. 대신에 선거가 있었고, 외부의 관측통들은 베네수엘라의 선거가 대부분 다른 국가(미국이나 이탈리아 등을 다시 생각해보라)의 선거와 다를 바 없다고 평가했으며, 차베스는 15개의 선거 중 14개를 승리했다. 우리는 그가 미국의 지지를 업은 심각한 쿠데타 위협에에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대중 및 군 내부의 지지에 기반해 살아남았다.

경제적 무능과 관련해 차베스가 실수를 저지르긴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현재 수입이 과거보다 저조한 수준인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전 세계 거의 모든 정부가 재정 딜레마에 직면해 긴축을 요구하고 있다. 차베스의 반대파가 집권했다고 경제적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확실한 것은 반대파가 정권을 잡는다면 극빈층을 향한 내부적인 부의 재분배는 약회될 것이란 점이다.

차베스가 잘 하지 못한 부분은 자원착취적(extractivist) 경제 경책을 계속 지지하면서 환경 파괴 중단과 자치권을 요구하는 원주민들의 항의를 묵살한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은 (그 뿐만 아니라)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미 대륙의 모든 정부가 저지른 잘못이기도 하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당장은 차베스 지지파와 반대파 모두 다가오는 대선을 위해 (각각) 결속하고 있다. 대부분의 분석은 차베스의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가 승리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질문은 그 뒤에 일어날 일, 무엇보다도 내부적으로 정치 진영이 어떻게 재배치될 것인가에 있다. 양 진영 모두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다. 필자는 각 캠프에서 일부가 탈당해 반대 진영으로 가는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몇 년 안으로 우리는 다르게 배치된 정치 지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전 세계에 걸쳐 추구하려 했던 비전, '21세기식 사회주의'(21st-century socialism)는 어떻게 될까? 이 비전에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다. 차베스는 실제 존재했던 공산주의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사민주의 모두가 다양한 실패를 겪으면서 맹비난을 받았던 이 단어를 구하려 했다. 다른 키워드는 '21세기'다. 이는 차베스가 제3, 제2 인터내셔널 식의 사회주의를 거부하고 전략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요청하는 것이다.

이 두 과제에 도전한 사람은 차베스 혼자만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그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다. 필자에게 이러한 노력은 역사적인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우리의 세계체제가 빠진 혼돈의 두 가지 가능한 해법의 갈림길에서 우리 모두가 당면한 더 큰 임무의 일부다. 우리는 우리, 혹은 우리 중 일부가 모색하고 있는 더 좋은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을 더 분명히 할 수 없다면, 자본주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특징들, 즉 위계질서·착취·양극화 등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려는 이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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