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상위분류 : 잡필방 중위분류 : 세상의 방 하위분류 : 세상만사
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3-02-19 조회수 : 4,263
제 목 : "핵협상 무용? 위험천만한 얘기!"

"핵협상 무용? 위험천만한 얘기!"

[긴급 기고] 핵협상 무용론과 핵무장론의 위험성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2-17 오후 2:49:10

 
 
2월 15일,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약속이나 한 듯이 쌍벽을 이루는 획기적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원로자문회의 석상에서 '핵협상 무용론'을 설파하고, 여당 대표는 KBS 라디오 방송에서 '핵무장론'을 제기했다. 핵협상 무용론의 핵심 논거는 북한이 붕괴하기 전에는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핵무장론의 논거는 북한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했으니까 우리도 비핵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두 분 다 국내 정치는 9단인지 모르지만,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나 한미관계의 서글픈 한계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핵협상 무용론'은 미국 군산복합체들이 반기는 이론

우선 '핵협상 무용론'부터 보자. '핵협상 무용론'은 국산이 아니다. 미제다. 미국에서 나온 이론인데 결과적으로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키워주게 되는 이론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은 이념성이나 당파성이 있을 수 없지만, 정치·경제·사회현상에 대한 이론은 기본적으로 이념성이나 당파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국제 정치나 외교 관련 이론들은 자기 나라의 국익을 보호하거나 증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객관성을 갖춘 것처럼 절묘하게 화장을 한다.

이렇게 국제 정치 관련 이론의 이데올로기성을 감안하면서 따져보자. 핵협상 무용론에 동조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비핵화'는 포기하고 대신 '비확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가 '비핵화' 대신 '비확산'으로 낙착이 되면 우리는 완전히 북한에게 멱살 잡히는 형국이 된다. 멱살 잡힌 채로나마 근근이 경제라도 끌어나가려면 한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선 미사일방어(MD)체제부터 도입해야 한다. 북핵실험 직후 오바마 대통령 입에서 MD강화 얘기가 이미 나왔다.

장차 '비확산', 'MD도입' 쪽으로 우리 안보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미제 신형 무기 획득 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나면서 국가 예산 구조 자체가 바뀌게 된다. 복지 증진? 중소기업 살리기?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다.

협상이 무용지물이면 군사적 해결? 현실적으로 불가능

'핵협상 무용론'에는 '군사적 해결론'의 그림자도 있다. 그러나 말처럼 군사적 해결이 가능하면, 북핵문제는 1994년 6월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자 미국 클린턴 정부는 바로 북한과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 김영삼 정부는 미·북 핵협상을 반대하면서 북한을 '거칠게' 다룰 것을 주문했다.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지친 미국이 1994년 6월 초 영변 핵기지 폭격 방식으로 북핵문제의 뿌리를 뽑아버리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북폭은 제2의 한반도 전쟁으로 번질 것이고 전쟁 비용이 엄청나게 들 뿐 아니라, 미·중 간 군사적 충돌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미국도 북폭 계획을 슬그머니 거둬들인 적이 있다. 이게 '협상무용론', '군사적 해결론'의 한계다. 지금은 20년 전과 사정이 또 다르다. 그동안 중국의 군사 역량이 엄청나게 커졌고 국제 사회에서 위상도 높아졌다. 미·중 역학관계도 그때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중국과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의 정치·군사적 선택지가 줄었다. 그런 점에서 '핵협상 무용론'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군사적 해결론'은 비현실적이다.


협상 무용론의 뿌리가 북한붕괴론이라면, 상상력이 대단하다

대통령은 북한이 붕괴하기 전에는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핵협상 무용론'을 설파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북한 붕괴를 기다렸던 것 같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중계방송 하듯이 했는데, 속내를 알고 보니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밑으로부터 혁명'이 일어나 북한 정권이 붕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적 관측이었던 같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 중에 김정일이 사망했는데도 북한에서는 민란이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금강산으로 달러도 안 들어가고 쌀 한 톨, 밀가루포대 못 보내게 했는데도 어디서 돈이 나왔는지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쏘고 핵실험도 현 정부 임기 중에만 두 차례나 했다.

북한 체제의 특성, 북한의 정치문화, 북한 경제의 운영 원리를 모르면 북한붕괴론 같은 얘기를 쉽게 할 수 있다. 북한붕괴론은 김영삼 정부 때도 유행을 했었다. 그러나 희망적 관측은 꿈으로 끝났다. 그때도 "김일성만 사망하면 북한은 붕괴할 것이고 북한이 붕괴하면 그건 곧 통일이다", "대북 지원은 붕괴할 수밖에 없는 북한 정권의 명맥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대북 지원은 공산독재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을 더욱 어렵게 하는 일이다. 인도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비인도적인 일이다", 이런 말들이 유행했었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모두 다 이론과 주장의 이데올로기성을 반영하는 것들일 뿐이었다. 북한붕괴론이 나온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북한은 아직 붕괴하지 않았다. 이제는 이런 상상력의 소산인 비현실적 주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핵문제 해결책은 결국 협상밖에 없다

1993년 3월 NPT 탈퇴를 기점으로 치면 북핵 문제는 올해로 21년째로 접어든다. 그동안 협상 형태도 갖가지였고, 해법도 갖가지로 나왔었다. 그런데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난해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니 협상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의 도발->제재->일정기간 경과 후 협상->해법 합의->(어느 일방의) 합의 불이행->(북한의 불이행 시) 제재->북한의 재도발->제재->협상, 이런 식으로 몇 차례 반복한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악순환을 북한의 약속 불이행 탓으로만 돌리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물론 많다. 북한은 약속을 안 지키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고, 남북관계에서도 숱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필자도 북한을 편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북한만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약속을 어겼는가? 그건 아니다. 국제 정치의 세계에서 심판관처럼 행세하고 있는 미국도 합의 사항 불이행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4년 10월 미국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채택했다. 북한이 핵활동을 중지하는 대가로 미북수교를 해주고 200만Kw짜리 경수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 임기 내 수교 협상도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경수로 공사는 이런저런 핑계로 느릿느릿 계속되다가 부시 정부 때인 2003년 초 중단되었다.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전 정부의 대북 합의는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같은 정부 기간 중에도 합의 다음 날부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 부시 정부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 로드맵이라고 평가 받았던 '9.19공동성명'을 채택해놓고 바로 그다음 날 대북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북한이 위조지폐를 만들고 그걸 돈세탁했다는 죄목으로 마카오에 있는 BDA 은행의 북한 계좌를 동결시켜버렸다. BDA 제재를 1년여 어렵사리 견디던 북한이 마침내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할 테면 해보자'는 북한식 셈법이다.

물론 미국의 합의 불이행보다 북한의 핵실험이 더 나쁜 일이니까 국제 여론은 북한에 불리했고,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도 결의되었다. 그러나 대북 제재가 시작돼도 북한이 계속 초강수를 두니까 핵비확산 책임이 있는 부시 정부도 결국은 다섯 달을 못 버티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시작했다. 그 결과로 2007년 2월 13일, '9.19공동성명'을 이행해나가기 위한 '2.13합의'라는 것이 나왔다. 이후 '10.3합의'라는 것도 만들면서 협상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

미국 같은 지도급 국가가 국제적 합의를 했으면 지킬 일이지, 합의한 다음 날부터 합의 이행은 고사하고 다른 문제를 구실로 제재를 시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제재를 시작했으면 영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끝장을 보든지 할 일이지 협상은 왜 하고 각서는 왜 또 써준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다시 흐지부지하다가 문제가 커지면 북한의 약속 불이행 비난 여론이나 조성하는 것은 또 뭔가? 그런데도 그 와중에 미국에서는 '핵협상 무용론'이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는 그것도 미제라고 금과옥조처럼 인용하면서 글을 쓰고 주장을 펴는 전문가들이 나오곤 했다.

북핵 문제가 쳇바퀴를 돌게 된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협상 무용론'을 얘기하다가 보면 결과적으로 국가가 어떤 손해를 입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국가 지도급 인사들도 정치인이건 언론인이건 마찬가지다. 특히 명색이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이론이 나오면 '내 나라'의 입장에서 그것의 유불리를 따져보는 자세가 아쉽다. 미제 이론뿐 아니라 북한제 이론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보아야야 한다.

핵무장론은 한미관계 현실 모르는 얘기

북한이 핵실험을 3차까지 거듭하다보니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왕에도 그런 얘기들을 왕왕 했었지만, 비중 있는 정치 지도자까지 그런 얘기를 하고 나선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 아마 핵관련 한미관계의 냉혹하고 서글픈 현실을 알고 나면 '아차!' 할 것이다. 이거야말로 미국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의 핵무장론은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가의 미국 무기를 안 사겠다는 얘기가 된다.

여당 대표는 북한이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한 걸 구실로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지만,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북한의 핵 개발만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초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1991년 여름 미국의 권유로 협상을 시작해서 그해 말 체결된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미국의 그러한 권유 이면에는 북한을 묶으면서 동시에 한국의 핵개발도 막자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선언'에 담긴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 배비(配備)·사용 금지" 조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핵재처리 시설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는 한국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1956년 2월 체결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은 그 후 1958년, 1965년, 1972년, 1974년, 네 차례 개정되었다. 1974년 5월 개정되어 6월 16일부터 발효한 지금의 원자력협력협정은 효력이 무려 41년이나 된다. 41년 동안 딴소리하지 말라는 거고, 또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앞으로 4년 4개월 더 효력을 발휘할 원자력협력협정에서 우리에게 독소조항은 재처리와 농축 금지 조항이다.

북핵 문제가 불거진 후 김영삼 정부 때부터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라도 허용해달라고 간청을 했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NO! 다만, 븍한의 핵위협에 대해서는 핵우산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북한의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핵무기 개발을 막는 문제로 골치 아파하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해야만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아야!" 소리도 낼 수 없었다.

2010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협력협정' 관련 협상에 진전이 전혀 없고, 미국 쪽에서는 논의 자체를 2년 뒤에 하자고 한단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1일 박근혜 당선인이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일행의 예방을 받고 '원자력협력협정'의 개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핵심은 사용 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해서 다시 연료봉으로 쓸 수 있게 하는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ung) 기술을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이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016년이 되면 핵폐기물이 포화 상태가 되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싸늘하다. 금년 2월초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발행한 '한미관계보고서(U.S.-South Korea Relations)'에는 "한국 정부는 핵연료봉 재처리 허용을 원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이것이 핵문제 관련 한미관계의 현실이다. 여당 대표가 미국 의회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있는 줄을 까맣게 몰랐다면 또 몰라도, 알고도 핵무장론을 제기했다면 미국식 해석으로는 '도전'이 된다. "재처리 요구도 '도전'인데 '핵무장'까지 주장해?"라고 하면서 코웃음 치는 미국 관계자들의 거만한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것이 한미관계의 냉혹하고 서글픈 현실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필자의 다른 기사

|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