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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2-10-20 조회수 : 5,060
제 목 : [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1) 잭슨 폴록

[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1) 잭슨 폴록

 

진중권 | 문화평론가·동양대 교수

 

 

 
ㆍ“혼돈이라니, 빌어먹을”… 우연 같아 보여도 추상적 질서가 있다

화폭에 뿌려진 물감 방울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나. 마릴린 먼로는 어떻게 미술관에서 비너스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나. 베스트셀러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이자 우리 시대의 대표적 논객인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현대미술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현대 예술은 형상의 빈곤과 관념의 과잉이 지배한다”며 “작품의 바탕에 깔린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상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진 교수가 그 논리의 추적자이자 안내자 역할을 맡는다.

대상은 전후 현대미술로 한정한다. 전전의 모더니즘은 이미 ‘고전’이 됐기 때문이다. 연재는 액션페인팅의 출발인 잭슨 폴록에서 시작해 뒤뷔페 등의 앵포르멜, 뉴먼의 색면 추상, 저드의 미니멀리즘으로 이어진다. 현대미술의 주류로 부상한 퍼포먼스, 라이브 아트도 빠질 수 없다. 요제프 코수트의 개념미술, 앤디 워홀의 팝아트도 소개한다.
 
 
 
 

잭슨 폴록의 ‘Number-1’.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그림처럼 보인다. 그러나 폴록은 “우연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흘리는 순간마다 영감과 비전에 따라 직관적 결정을 내린다”고 말한다.

 

▲ 인디언 모래그림에서 영감 얻어
급진적 기법 ‘흘리기’에 평단 당혹
“난 우연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간·대상 해체한 추상의 극단


신화는 1947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의 어느 날 폴록은 이젤(畵架)에 수직으로 세운 캔버스 위에 토템(=동물) 비슷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에선지 돌연 캔버스를 바닥에 수평으로 눕히고는 그 위로 물감을 들이붓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여기서 불현듯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 후 짧은 실험을 거쳐 그는 그 유명한 기법-드리핑(dripping: 흘리기)-을 완성한다.

첫눈에도 폴록의 작업방식은 전통적인 화가의 그것과 급진적으로 다르다. 일단 스케일부터 차이가 난다. 그의 화폭은 종종 일상적 캔버스의 크기를 넘어 거의 벽화의 규모에 육박한다. 나아가 그는 이젤이나 캔버스 같은 전통적 화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프레임(나무틀)에 걸어 고정하지도 않은 화포를 그대로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로 작업하기를 좋아했다.

작업의 축이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뀜으로써 그림에 중력을 활용할 가능성이 열린다. 폴록은 붓을 마치 막대기처럼 사용했다. 어차피 그의 붓은 빨지 않아서 늘 막대기처럼 굳어 있었다. 이젤에 놓인 수직의 캔버스라면, 부드러운 붓이 화면을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화포가 수평으로 누우면 상황이 달라진다. 폴록의 붓은 화면에 닿지 않는다. 표면 위를 떠돌며 물감을 떨어뜨릴 뿐이다.

■ 자동드로잉

이 급진적 기법은 폴록에게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을 안겨 준다. 물론 전설적인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의 패러디다. 폴록의 드리핑에는 크게 세 가지 원천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화가 자신이 밝히듯이 서부 인디언의 모래그림이다. 나바호족은 형형색색의 모래를 땅에 뿌려 그림을 그리는 관습이 있다. 자연과의 합일을 통해 영혼을 치유하는 의식이란다.

또 하나의 근원은 멕시코 벽화운동. 1936년 멕시코의 벽화가 다비드 시쿠에이로스가 노동절 행진을 위해 플래카드를 만들 때, 마침 폴록이 옆에서 도운 적이 있다. 이 멕시코의 공산주의는 캔버스와 유화물감의 이젤 회화를 죽어가는 부르주아 문화의 낡은 관습으로 여겼다. “끝에 털이 달린 막대기(=붓)를 타도하라!” 대형 화폭을 바닥에 깔아놓고 공업용 염료를 막대로 찍어 흘리는 폴록의 기법은 여기서 비롯한다.

한편, 당시의 미국 화가들은 아직 초현실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것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에게 초현실주의란 곧 ‘자동기술법’을 의미했다. 머리에 떠오르는 무의식적 문장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것. 이 문학의 기법을 그림에 적용시킨 것이 앙드레 마송의 ‘자동 드로잉’이다. 폴록의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화법은 이 ‘자동 드로잉’을 빼닮았다. 이를 드리핑의 미술사적 근원으로 지적해 두자.

■ 무슨 빌어먹을 혼돈

첫눈에 폴록의 작품은 온통 혼돈으로만 보인다.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그곳의 평론가도 그렇게 평했다.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그리고 다시 한 번 혼돈.” ‘타임’지가 이 말을 인용해 그의 작품을 혹평하자, 폴록은 편집자에게 신경질적인 전문을 보낸다. “혼돈은 무슨. 빌어먹을.”(No chaos. Damn it.) 이 짧은 답변에 핵심이 담겨 있다.

폴록의 작품은 우연으로 빚은 혼돈이 아니다. 폴록은 말한다. “나는 우연을 사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연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아무렇게나 물감을 흘려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작업의 순간마다 그는 영감과 비전에 따라 직관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우연의 외관 속에서도 미적 질서가 존재한다. 이 ‘우연과 질서의 긴장’이야말로 그의 작업 요체다.

이 물감자국으로 가득 찬 화면을 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두 방향에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작품’ 자체에 주목하는 것. 이 경우 폴록의 작품은 입체주의로부터 출발한 ‘추상미술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행동’에 주목하는 것. 이 경우 폴록의 작업은 아예 ‘미술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킨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오늘날 아이콘이 되어 버린 한스 나무스의 사진도 폴록의 작품보다는 작업과정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 추상의 극한

먼저 ‘작품’ 자체에 주목을 해보자. 그럼 화면에 식별할 만한 대상이 전혀 없다는 것부터 눈에 띌 것이다. 피카소의 추상에도 구상이 섞여 있고, 몬드리안에게도 기하학적 형태가 존재한다. 하지만 폴록의 화면에는 형 자체가 없다. 순수추상이라도 형태와 배경 사이에는 미적 ‘관계’가 존재하기 마련. 하지만 폴록의 작품은 형태와 배경의 구별 없이 산포된 물감자국이 균일하게 화면 전체를 채우는, 이른바 ‘전면화’(all-over)다.

프레임도 약화된다. 흘린 물감의 패턴이 균일하게 산포된 화면은 벽지처럼 보인다. 액자를 통해 화면과 벽면으로 구별되는 그림과 달리, 벽지는 ‘화면’이자 동시에 ‘벽면’이다. 폴록의 ‘벽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방으로 더 뻗어나가도 될 듯하다. 실제로 페기 구겐하임의 저택에 작품을 설치할 때, 폴록은 벽의 크기에 맞춰 작품을 몇 인치 잘라내는 데에-물론 마지못해-동의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폴록은 입체주의에서 시작된 추상운동의 극한이다. 그 명칭이 주는 인상과 달리 입체주의의 화면은 사실 매우 평면적이다. 가령 풍경이 그려진 직소 퍼즐이 있다 하자. 조각들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면, 공간의 환영이 사라지고 파편으로 가득 찬 2차원 평면이 나타날 것이다. 폴록에게서 사라진 것은 대상만이 아니다. 공간(의 환영) 자체가 사라진다. 그에게서 회화는 ‘물감 묻은 평면’으로 돌아간다.

■ 평면성의 교리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바로 이런 해석의 대표자다. 그의 이론적 지원이 없었다면, 폴록은 오늘날의 명성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더니즘의 교황은 ‘현대성’(modernity)의 기준을 자기반성에서 찾았다. 가령 칸트는 자연을 탐구하기 전에 이성을 가지고 이성부터 비판했다(<순수이성비판>). 마찬가지로 회화 역시 ‘현대성’에 도달하려면 자연을 재현하기 전에 자신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화가 현대적이려면 자연의 재현을 멈추고 저 자신(가령 형과 색, 화폭과 물감)으로 돌아가야 한다. 또 저 회화가 저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다른 장르나 매체에서 온 요소들도 배제해야 한다. 가령 고전회화는 공간의 환영을 창조하여 스토리텔링을 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문학에 속하고, 공간은 조각의 언어다. 따라서 이 요소들 역시 회화에 이질적인 것으로 배제해야 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당연히 추상일 수밖에 없다.

입체주의 이후 서구 회화가 추상의 길을 걸어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길에서 몬드리안, 칸딘스키, 말레비치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기하학적 도형들만 남은 ‘순수추상’에 도달했다. 하지만 화면에 도형이 남아 있는 한, 여전히 그 안에서 모종의 공간감을 느끼게 된다. 폴록은 그것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회화는 완전히 평면에 도달한다. 이것이 그린버그의 ‘평면성’(flatness) 원리다.
 
 

작업 중인 잭슨 폴록


■ 액션 페인팅

한편, 평론가 로젠버그는 작품보다는 행동에 주목한다. 그가 보는 폴록은 캔버스라는 ‘격투기장’(arena) 안에서 재료와 싸우는 고독한 검투사다. 재료와 벌이는 실존적 고투를 통해 화가는 제 정체성을 확인한다. 이런 해석의 바탕에는 물론 당시에 유행하던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깔려 있다. 회화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폴록의 작업은 마땅히 ‘액션 페인팅’이라 불러야 한다.

그려진 그림은 중요하지 않다. 물감 덮인 화면은 순전히 “개인적 제스처의 유아론적 기록”, “사건의 무의미한 여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로젠버그의 이 실존주의적 비평은 당장 그린버그의 반박에 부딪힌다. 형식주의자에게는 당연히 작품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로젠버그는 고작 자전적 의미밖에 없는 그 ‘행위’의 잔여물을 왜 작가들이 전시하고, 타인들이 감상하고, 심지어 구입까지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정적 문제는 정작 따로 있다. 로젠버그는 미술을 제작(making)이 아니라 행동(doing)으로 간주함으로써 미술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는 그린버그로서는 용인할 수 없는 사태였다. 미술을 한 편의 실존주의 드라마로 둔갑시키는 것은 미술에 ‘연극성’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은 ‘순수’해야 한다는 그린버그의 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모더니즘의 교황은 발칙한 이단을 파문하기로 한다.

■ 수평성

1951년 이후 폴록은 갑자기 초기의 구상으로 돌아감으로써 그린버그를 비롯한 많은 평론가들을 당혹시켰다. 왜 그랬을까? 평론가 T. J. 클라크는 폴록의 기획이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폴록은 제 그림이 뭔가를 암시(symbol)하지 못하도록 화면을 흔적(index)으로 만들었지만, 결국 화면의 암시효과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는 것. 하긴, 폴록의 그림 안으로 소풍을 갈 수는 없어도, 왠지 우주유영은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작가 로버트 모리스는 생각이 다르다. 폴록은 실패하지 않았고, 외려 중력을 이용해 성공적으로 형을 해체했다. 본디 문명은 수직으로 상승하고, 자연은 그것을 수평으로 되돌린다. 조형(造形)은 수직의 움직임이나, 물감을 중력에 내맡김으로써 폴록은 “수평적 반(反)형태”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를 강변하듯이, 모리스는 자신의 유명한 작품에서 펠트 천에 칼집을 낸 후 벽에 걸어 중력의 힘으로 늘어지게 했다.

평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바타유의 언어로 위의 두 견해(지표+수평)를 종합한다. 지표(index)로서 폴록의 흔적은 “수직에 대한 수평의 저항”이라 할 수 있다. 폴록은 작품에 못, 꽁초, 버튼, 모래 등 쓰레기를 집어넣곤 했는데, 이 지저분한 재료의 물질성이 “형상(Gestalt)의 형성에 저항”하면서 그의 작품을 ‘무정형’(formless)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폴록에게서 그녀는 형상에서 물질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죽음의 충동을 읽는다.

■ 폴록 그 이후

미국의 미술은 폴록에 이르러 비로소 유럽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미술이 되어 전 세계를 주도하는 국제적 양식이 될 수 있었다. 폴록의 작품은 수많은 이론적 논쟁의 원천이자, 동시에 이후에 발생한 여러 미술운동의 영감이었다.

어떤 작가들은 클라크처럼 폴록의 작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작품이 아무리 추상적이더라도, 그것이 벽에 걸려 있는 한 우리는 거기서 모종의 환영을 보게 된다. 따라서 작품이 환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면, 즉 저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연상시키지 않으려면, 스스로 사물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이 탄생한다. 실제로 폴록도 자신의 작품을 ‘사물’(thing)이라 부른 바 있다.

한편, 어떤 작가들은 로젠버그처럼 폴록의 작품보다는 행동에 더 주목을 했다. 여기서 탄생한 것이 바로 앨런 카프로우의 ‘해프닝’. 오늘날 이른바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화가들이 마치 배우처럼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작품이 남지 않는다. 그저 어떤 ‘사건’이 그때, 그 자리에서 발생했다는 기록만 남길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폴록과 팝아트의 관계이리라. 팝아트의 선구자 재스퍼 존스는 성조기를 그렸다. 성조기는 공간 속의 대상이나, 그 자체가 평면이기도 하다. 워홀의 먼로도 3차원의 인물이 아니라 2차원의 사진을 그린 것이다. 이들의 그림은 비록 구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히 ‘평면적’이다. 폴록과 팝아트는 비록 양식적으로 너무나 달라 보이나, 실은 ‘평면성의 원리’를 통해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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