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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2-08-22 조회수 : 4,350
제 목 : 대선주자들이여, 평시 강제징집제 폐지를 말하라[박동천 칼럼]

대선주자들이여, 평시 강제징집제 폐지를 말하라

[박동천 칼럼]김두관 '모병제' 제안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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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22 오전 8:13:48

 
대통령직을 수행해서 나라에 봉사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들 사이에 왜 병역제도 개혁안이 안 나오나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드디어 김두관이 "모병제"를 제안하고 나섰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 주제가 공론장에서 활발하게 뜨겁게 토론되기 바란다.

내가 생각할 때 평시 강제징집제 폐지는 한국에서 여섯 가지 점에서 크게 유익한 일이다. 가시적인 효과에서부터 심층적인 효과의 순서로 나열해 본다.

1. 불필요한 상비군 병력을 감축하여, 남아도는 "졸병"들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군대 조직기능 중심으로 효율화되지 않을 수 없다.
2. 병무 비리를 불러오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 원천적으로 제거된다.
3. "신의 아들"과 "어둠의 자식들"을 구분하는 사회적 위화감이 줄어든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병역 기피 때문에 발생하는 소모적인 논쟁도 줄어든다.
4. 인생을 설계하고 자신을 계발해야 할 형성기의 청년들에게 시간을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청년 노동력의 사회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5.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청년들에게 (아울러 청년기 이전의 사회화 과정에서도)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의존 심리에서 탈피할 수 있는 자존심을 배양한다.
6. 한국 사회를 전반적으로 몹시 무겁게 압박하고 있는 병영문화를 장차 일소하는 일대 계기가 된다.

징병제를 폐지한다고 할 때 유일한 우려는 국방력이 약화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인데, 이는 조금만 살펴봐도 부질없는 기우임이 드러난다.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방향은 세 가지가 있고, 이 세 각도 모두에서 우려가 정당화될 이유는 전혀 없다.

1. 현대전에서 상비군 사병의 수와 국방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별로 없다. 장비와 조직의 효율성, 그리고 지휘관들의 판단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2. 이 개혁안의 취지는 평시에 강제징집을 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이다. 전쟁이 실지로 발발하거나, 전쟁의 위험이 급박한 상태에서는 징집을 실시해서 필요한 병력을 충원할 수 있다.
3. 흔히 하는 말로 "안보 의식 해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위험을 장기간 과장해서 (늑대와 소년의 우화처럼) 군대 및 정부 전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보다는, 정직과 효율성으로 국가의 신뢰도를 높여야 안보 의식이 강화된다.
 

ⓒ뉴시스
 


이처럼 이치로 따졌을 때,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강제징집은 불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이미 이러한 이치를 깨닫고 있는 사람 수도 이 나라 인민 가운데 적지 않게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당장 시행하겠다고 하면 겁부터 집어먹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60년 동안의 안보 프레임 및 위기 프레임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은 한국의 시민층 대다수 정치의식의 맨 밑바탕에 완강하게 도사리고 있고, 이것을 건드렸다가는 쉽사리 "빨갱이"라는 낙인을 받기 때문에, 노무현도 기껏 복무기간 단축 정도밖에 손을 대지 못했을 정도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한국 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공포는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다. 하나는 징병제를 폐지하면 바로 북한의 공격에 남한이 노출되리라는 공포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버이연합이나 보수 언론 그리고 군부가 "안보위기"를 요란하게 선전하면서 폭력적으로 반발할 때 벌어질 내부 투쟁을 염려하는 공포이다. 병력충원제도를 개혁하려는 사람이 중시해야 할 공포는 후자이다. 이 후자에 해당하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원병제로의 전환이 오히려 안보를 강화하게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아울러 극우 보수세력의 반발을 충분히 누를 수 있는 다수 동맹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 줘야 한다. 그래야 시민 가운데 충분한 다수가 이 방향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는 이 의제를 징병제 대 모병제(즉 자원병제)라고 하는 양자택일로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 김두관이 언급한 프랑스독일에서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제도는 단순히 자원병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전쟁이 발발하거나, 또는 전쟁의 위험이 절박하게 다가올 때에는, 강제징집을 시행한다는 조건이 거기에는 붙어 있다. 그러고 나서, 평시에는 군병력을 직업군인과 자원병으로 충원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아울러, 직업군인과 자원병의 경우에도 육박전이나 유격전의 능력을 기본 전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기능 중심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훈련하고 활용한다고 하는 중대한 발상의 전환이 또한 수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 장애인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군사 인력에서 제외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직업군인 또는 자원병으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가 확장된다는 의미가 강조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런 종류의 개혁은 2013년에 새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하고, 국회의 토론을 거쳐야 하며, 여론에 대해서도 홍보와 설득이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최소한 10년은 걸릴 수밖에 없는 매우 커다란 개혁 사업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10년 후에는 평시 강제징집을 완전히 중단하기로 하고, 그 사이에 어떤 식으로 점진적인 준비 단계를 거쳐 갈 것인지 상세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극우보수 세력이야말로 징병제=안보 대 모병제=위기라는 이항대립 프레임으로 시민들을 협박하려 나설 것이 뻔하므로,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와 같은 무지막지한 프레임 자체를 의제설정 단계에서부터 깨부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 나라에서 "진보", "민주주의", "개혁", "복지국가", "삶의 질", "경제민주화", "노동의 정당한 가치", "소수자의 인권", "성차별 철폐" 등을 추구하는 모든 세력이 이 문제에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얼핏 보면 이 주제가 자기들이 각자 추구하는 목표와 상관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지로 안보-위기-공포 프레임은 한국 사회를 지난 60년 동안 지배해온 보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 요소이다. 이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과제는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권력관계를 발본적으로 해체하는 결정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기상조" 따위 싸구려 상투어로 이 문제를 회피하려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자칭 "진보", "개혁", "복지", "경제민주주의", "인권"을 옹호한다는 사람들이 "시기상조"라는 편리한 구실에 의존해서 이 주제에 관해 명확한 입장표명을 회피하게 된다면, 바로 그것이 보수파에게 협조하는 물타기가 되고 만다. 개인별로는 사안의 본질을 꿰뚫지 못해 확신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에는 그냥 침묵하든지, 아니면 입을 열어도 "잘 모르겠다"에 그쳐야지, "시기상조" 따위를 입에 담으면 위선과 가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 10년 동안 준비해서 2023년 정도에 가서 평시 강제징집을 중단한다는 것이 "시기상조"라면, 도대체 언제 하자는 얘기냐고 거세게 따져 물어줘야 한다.

김두관의 입장에서 지금 이 주제를 꺼낸 데에는 선거공학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경선 레이스에서 뒤지고 있는 측에서 이 얘기를 꺼내기를 나는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도 그 얘기를 안 꺼내기에, 사실은 이 칼럼을 통해 병역제도의 발본적 개혁을 제안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문재인, 손학규, 정세균 측에서도 진실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대통령이 되어 진실로 한국 사회의 도덕적 체질을 개선하고자 원한다면, 이 의제를 자신의 정책으로 수용하기 바란다. 훌륭한 정책 구상에는 저작권이 없다. 박근혜가 "복지국가", "경제민주주의", "내가 꿈꾸는 나라" 등을 베껴간 것은 분명히 일종의 표절이지만, 훔쳐간 정책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서 시행하기만 한다면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

아울러 안철수 역시 출마선언에 앞서 이 의제를 깊숙이 연구하기를 바란다. 주변에 정치공학자 참모가 있다면 "너무 앞서 간다"는 식으로 말릴 가능성이 높지만, 스스로 대한민국에 필요한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사람의 거의 모두를 병영이라는 이름의 감옥식 군사문화와 지배복종 관계에 강제로 끼워 맞추는 제도를 고치는 계기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내 주장은 징병제를 당장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시 징집제는 그대로 두고 평시에는 직업군인과 자원병으로 운영한다는 얘기이고, 그것도 당장이 아니라 최소한 10년의 준비를 거친다는 얘기이며, 애당초 군인의 모델을 조자룡이나 람보에서 찾는 무협지 수준의 사고에서 탈피하자는 얘기이다. 김두관에 이어, 문재인, 손학규, 정세균, 그리고 그들을 이어 안철수까지 이 담론에 동참한다면, 박근혜는 이 훌륭한 개혁안을 베낄 수도 없고 안 베낄 수도 없는 처지로 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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