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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2-07-12 조회수 : 4,436
제 목 : [박동천 칼럼] '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는 표절 아닌가?

박근혜의 표절과 말장난이 위험한 까닭

[박동천 칼럼] '맞춤형 복지', '경제민주화'는 표절 아닌가?

박동천 전북대 교수 기사입력 2012-07-12 오후 3:05:50
박근혜가 "ㅂㄱㅎ,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에 관해 여러 방면에서 표절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임태희는 동그라미 안에 한글 자음으로만 이름을 표기한 것은 자기가 먼저인데, 한 마디 양해도 없이 베꼈다고 대든다. 김기식은 몇 년 전부터 "내가 꿈꾸는 나라"라는 이름으로 시민운동을 이끌었는데, 박근혜가 이 제목을 훔쳐갔다고 혀를 찬다.

이것이 표절인가 아닌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질문이 두 갈래 서로 다른 의미 가운데 어떤 쪽을 지향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편의상, 제도적 의미와 주권적 의미라고 이 두 갈래의 의미를 불러보자.

우선 제도적 의미로 살피면,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를 권위적으로 판정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판단할 권위를 가진 당국이 있어야 한다. 삼성애플 사이특허권 분쟁은 관할권을 가진 법정에서 다루고, 문대성의 논문이 표절인지 여부는 국민대학교의 윤리위원회가 다루는 것과 같다. 그런데 박근혜의 경우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치판에서 횡행하는 구호가 표절이거나 저작권 침해인지를 가려서 판정하는 권위적인 재판소나 위원회 따위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슬로건을 표절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제도적인 의미가 아니라 두 번째 의미에서 살펴야 한다. 이 두 번째 의미를 부각하기에 좋은 예가 마침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분쟁이다. 엊그제 보도를 보면, 영국 법원이 애플의 제소를 기각하면서 삼성의 갤럭시 탭은 디자인에서 충분히 쿨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패드와 혼동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 「영국 법원 … 삼성승소」).

이 판결의 제도적인 의미는 삼성에게 애플의 디자인을 베꼈다는 책임을 묻지말라는 뜻이다. 단, 재판부는 베꼈는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다. 설령 베꼈다손치더라도 아이패드를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 베끼지 못했다는 뜻일 뿐이다. 자존심이고 양심이고 모두 뒷전으로 미루고 그저 눈앞의 장삿속만 챙기자면, 이것을 승소로 여기고 계속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 아마도 삼성은 실제 그렇게 돌진할 것이다. 반면에 "치사하게 남의 아이디어 베꼈다는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있는 사업가라면, 이 판결을 모욕으로 느끼고 자중할 것이다.

세상에는 법에 걸리지 않는 한, 또는 법에 걸리면 벌금 내고 넘어간다는 배짱으로, 치사한 짓거리를 계속해서 돈을 버는 기업도 있다. 물론 세상에는 나름의 양심을 지키면서 창조적인 제품을 개발해서 돈을 버는 기업도 있다. 목전의 이익에 눈이 멀어 치사한 짓을 일삼다가 패가망신하는 사업가도 있고, 장기적이고 일반적인 이익을 추구하다가 유동성이 부족해져서 성과를 내기 전에 무너지는 사업가도 있다. 이 중 어떤 부류의 기업이 융성할 수 있는지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상태, 다시 말해 소비자들의 안목과 자유로운 정보유통에 달려 있다. 남의 아이디어를 베껴놓고 법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거나 또는 걸려봤자 벌금만 내면 된다는 식으로 버티는 기업이 살아남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런 기업을 살려주기로 주권적인 선택을 한 셈과 같다.

이제 박근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캠프에서 임태희의 로고를 보고 동그라미에 자음 세 개를 넣는다는 영감을 받았는지 여부는 나로서 당연히 알 수 없다. 박근혜 캠프에서 김기식의 "내가 꿈꾸는 나라"를 훔치되 혹시 걸릴까봐 살짝 바꿔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문구를 내걸었는지 여부도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훔쳤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훔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는 뜻을 함축한다. 즉, "훔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은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입장을 명쾌하게 무찌를 수도 없어서 팽팽한 기싸움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자기 업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특별히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위에 예를 들었듯이, 특허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애플은 인류 사회 전체에 대해 자신들의 논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기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박근혜 또는 여타 후보자들의 경우에도 사정이 이와 같은가?

특히 박근혜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표어로 내걸었다. 속셈이야 어떻든지, 적어도 겉으로는 이 표어에서 "내 꿈"이라는 것이 "박근혜 혼자의 꿈"도 아니라고 할 것이고, "박근혜 추종자들의 꿈"에 불과한 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싸구려 수사로 맨날 오용되듯이, "국민 모두의 꿈"이라는 취지로 저 표어를 내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그 표어가 표절인지 아닌지에서부터 이 나라 오천만 국민은 둘로 갈려서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러면서 누구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백보를 양보해서, 박근혜가 누구의 꿈을 어떻게 이뤄지도록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복안만 가지고 있다면, 문구 몇 마디 빌려다 쓰는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 박근혜가 남의 문구를 빌려다 선전용으로 이용만 할 뿐, 도무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 때문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가 남의 문구를 공짜로 빌려다 쓴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자기 아버지가 군홧발로 사람들을 억압하던 시절 "복지"를 말하면 으레 빨갱이로 몰렸다. 이런 사정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복지 담론은 여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빨갱이로 몰려 가면서 수십년간 끈질기게 대중을 설득한 진보 진영의 노력이 이제야 담론의 풍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박근혜는 풍향을 바꾸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줄푸세" 따위 반동적인 소리로 물타기를 시도하다가, 막상 풍향이 달라지자마자 재빠르게 "맞춤형 복지"라는 표절성 단어를 지어내서 말을 갈아타는 척했다. "경제 민주화" 역시 마찬가지로, 진보 진영에서 오래 전부터 탄압을 무릅쓰고 주장해 온 의제를 박근혜는 김종인 단 한 사람의 입술에 실어서 훔쳐 가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내용만 있다면 단어 몇 개 빌려 쓰는 것은 용서가 되고도 남는다. 그런데 내용이 있는가?

3년 전부터 이 칼럼을 통해 여러 번 말했듯이, 이명박이 지난 4년 동안 저질러 온 전횡은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22명만 나서서 막았다면 방지될 수 있었던 일이다. 세종시 문제가 아주 좋은 사례다. 박근혜는 그것 하나를 막았다고 생색을 내지만, 그것 말고도 수많은 쟁점 법안들에서 박근혜가 "맞춤형 복지", "경제 민주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더라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저런 구호를 내놓아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국회의석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야당이 경제 민주화를 주장할 적에 거대 여당에서 스무 명 남짓만 동조했더라면 이명박이라도 역사의 건전한 물결을 방해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이 99%를 버리고 1%를 위한 길을 갈 때, 박근혜는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자기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말을 안 했을 뿐이고, 국회의 표결에서는 동조 내지는 묵종으로 일관했었다. 이랬던 사람이 이제 와서 출마의 변이랍시고 저런 소리를 늘어놓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에 내용이 없다고 지금 성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내용이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가 혀끝으로 내뱉는 "복지", "경제 민주화", "내 꿈" 등의 단어들이 다른 사람의 언어를 훔친 결과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영감을 얻는다. 문학에서나 철학에서나 과학에서나, 다른 사람들의 연구 업적에 빚을지지 않고는 어떤 창조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남이 먼저 개척한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라도, 그 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굳이 똑같은 문구를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 남에게서 배운 내용, 남에게서 얻은 영감을 자기 내면에서 소화해 낸 사람이라면, 그때부터 자신의 언어로 경륜을 토해낼 수가 있게 된다. 남이 이미 사용한 문구를 베껴 쓰고 있다면, 십중팔구 내용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증거로 봐도 무방한 이치가 여기에 있다.

표절은 남의 공로를 가로챘다는 점에서는 사회적 불의에 해당하지만,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는 점에서는 인간성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모독에 해당한다. 사적인 영역에서 헛소리를 일삼는 사람에 대해서라면 나는 연민을 느낄 뿐 굳이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의 영역에서, 나라를 이끌어 갈 심부름꾼 노릇을 맡아보겠다고 나서면서, 말장난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공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의 야릇한 이미지에 마취된 사람들이 결정권을 쥐게 되면 이 나라는 이명박 시대보다 몇 배 참혹한 지경으로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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