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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12-31 조회수 : 3,982
제 목 :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20) 올해의 인물 [2011.12.31 제892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20) 올해의 인물 [2011.12.31 제892호]
 
역사의 단편을 주목하는 시간 VS SNS, 올해의 인물을 말하다
 
 
역사의 단편을 주목하는 시간

192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처음으로 시도… 호명되는 이름들 속에서 20~21세기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변화를 읽다

연말이면 거의 모든 매체에서 ‘올해의 인물’을 발표한다. 산업계, 정치계, 예술계, 문화계, 기술계 등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은 분야마다 다를 것이다. 거기에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보니, 매체의 국적에 따라서도 선정되는 인물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올해의 인물’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단연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선정한 것이리라. <타임>에서는 2011년의 인물로 ‘시위자’(Protester)를 꼽았다.

 

양적 평가냐 질적 평가냐

‘올해의 인물’은 1927년 <타임>에서 한가한 주에 뉴스거리가 될 만한 아이템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마침 그해에 <타임>은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을 커버스토리로 싣지 않기로 결정했던 차. 이 결정적인 편집상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린드버그를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로 선정한 것이 이 제도의 기원이라고 한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올해의 인물’은 거의 모든 매체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포맷이 되었다.

‘올해의 인물’이라 하나 대상이 인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1982)나 지구(1988)처럼 무생물이 선정되는 일도 있다. ‘맨’(Man)에서 ‘퍼슨’(Person)으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99년이지만, 그 이전이라 하여 남자만 선정된 것도 아니다. 윈저 공의 왕위를 포기하게 만든 월리스 심슨(1936),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1937),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1952),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1986) 등이 여성으로서 ‘인물’(Man)에 선정된 바 있다.

때로는 사회적·정치적 집단이 ‘올해의 인물’이 된다. 가령 헝가리의 자유투사들(1956), 평균적 미국인(1969), 미국의 여성들(1975), 미국의 병사들(1950·2003). 흥미로운 것은 ‘내부고발자’(2002)와 ‘시위자’(2011)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가령 이문옥 감사관과 김용철 변호사가 내부고발의 대가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타임>이 기리는 ‘시위자’도 한국에서는 거의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명예롭게 여겨진다. 선정된 이들이 대개 긍정적 업적을 낸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타임>에서 제시하는 선정 기준은 질적이라기보다는 양적이다. “그해에 일어난 일들에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그 덕분에 1938년에는 히틀러가, 1939년과 1942년에는 스탈린이, 1979년에는 호메이니가 각각 ‘올해의 인물’로 선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역대로 선정된 인물들이 대개 ‘위인’이다 보니, 인물의 선정에 알게 모르게 질적 평가가 개입하기도 한다. 가령 1979년 호메이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것은 미국 정부와 공중의 심리를 적잖이 자극했다. 9·11 테러가 발생한 2001년의 인물은 <타임>의 기준에 따르면 마땅히 오사마 빈라덴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그해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엉뚱하게 뉴욕시장 루돌프 줄리아니. 누가 그의 이름을 기억할까?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1999년은 20세기의 마지막 해이자, 지난 1천 년을 마감하는 해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해 <타임>은 ‘올해의 인물’과 함께 따로 ‘지난 세기의 인물’(아인슈타인)과 ‘지난 1천 년의 인물’(구텐베르크)을 선정했다. 문제는 ‘금세기의 인물’ 후보로 히틀러가 올라온 것이었다. <타임>이 제시한 양적 기준으로 보면 마땅히 히틀러가 선정되어야 하나, 수상(?)의 영예는 결국 아인슈타인에게 돌아갔다.

 

정보화 이후 등장한 새로운 영웅들

역대 수상자(?)의 면모를 살펴보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역시 미국의 대통령들이다. 캘빈 쿨리지, 허버트 후버, 제럴드 포드를 제외하고 미국의 모든 역대 대통령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특히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세 차례(1932·1934·1941)에 걸쳐 ‘올해의 인물’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단, 아이젠하워는 재임 기간에는 물론, 그 훨씬 이전에도 연합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올해의 인물’에 오른 바 있다.

그다음으로 많이 꼽힌 인물은 옛 소련의 지도자들이다. 스탈린(1939·1942), 흐루쇼프(1957), 안드로포프(1983), 고르바초프(1987, 1989), 푸틴(2007). 20세기는 과연 미소 냉전의 시대였다. 한편 독일은 아돌프 히틀러(1938), 콘라트 아데나워(1953), 빌리 브란트(1970) 세 사람을 명단에 올렸다. 영국의 지도자로는 처칠(1940·1949)과 엘리자베스 여왕(1952), 프랑스의 지도자로는 피에르 라발(1931)과 샤를 드골(1958)의 이름이 눈에 띈다.

중국은 장제스와 쑹메이링(1937), 덩샤오핑이 두 번(1978·1985) 이름을 올렸으나, 이상하게도 마오쩌둥은 명단에 빠져 있다. 열강이 아닌 나라에서는 인도의 간디(1930),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왕(1974), 이집트의 사다트(1977), 이란의 호메이니(1979),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1) 등이 ‘올해의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자취는 1950년에 선정된 ‘미국의 전사들’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해는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였다.

호명된 이들의 이름 속에서 우리는 식민주의에서 2차 대전, 미소 냉전과 자원전쟁, 사회주의국가의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역사를 엿본다. ‘올해의 인물’은 그야말로 인물로 보는 세계사다. 이 맥락에서 <타임>은 즐겨 칼라일을 인용한다. “세계사는 위인들의 전기에 불과하다.” 이게 어디 정치나 정세만의 문제겠는가? 선정된 영웅들의 명단 속에서 우리는 또한 20세기에 일어난 산업과 경제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서구는 아직 산업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크라이슬러 그룹의 창시자 월터 크라이슬러(1928), 제너럴모터스의 지도자 할로 커티스(1955)는 산업화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1982년 컴퓨터가 ‘올해의 인물’의 반열에 오른 뒤에는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1999),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2010)가 새로운 신화로 떠올랐다. 이들은 디지털로 무장한 정보화 사회의 영웅이다. 2005년 보노와 함께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선정된 빌 게이츠 부부도 정보화 사회의 영웅이다. 선정은 못 됐지만, 올해에는 스티브 잡스가 작고한 인물로는 최초로 올해의 인물로 뽑힐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계사를 바꾸는 ‘당신’

그런가 하면 2006년 <타임>은 “올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백과사전, 영상파일 공유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이라며, 이 영역에서 활약한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뽑을 사람이 그렇게 없었느냐?’는 비난도 있으나, 이 결정은 우리의 주목을 끌 만하다. ‘올해의 인물’의 역사철학, 즉 칼라일의 영웅사관을 일거에 뒤엎어버렸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타임>에서 밝히는 선정 사유. “‘당신’ 은 월드와이드웹을 파고들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틀을 세우고,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신’을 우리 정부는 탄압한다.

2008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인터넷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투표 30분 만에 워스트 1위를 달린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베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투표는 중단되고 선정 방식이 바뀌더니, 결과도 수정됐다. 워스트 강병규, 베스트 김연아. 각하가 ‘당신들’한테 욕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SNS, 올해의 인물을 말하다

전문가 의견 또는 설문 대신 동시대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 따라 흐르는 140자 메시지 속 주요 인물 인용지수를 주목해보자

언제부터인가 연말에 받는 기자들의 전화로 한 해를 정리한다. “올해의 책 선정을 위해 최고의 책을 추천해주세요.” “올해의 인물을 3명만 꼽아주세요.” 한 해 동안 우리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사건·사고를 반추하고,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한다. 격랑의 틈새에서 평온했던 내 삶에 고마움을 느끼며 12월의 달력을 접는 것이 연례 일상이 됐다.

 

두 번이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우리 

가장 권위 있는 ‘올해의 인물’은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이 선정한 인물(Person of the Year)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보기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을 꼽는 기획이다. 이왕이면 긍정적 영향을 끼친 사람들 중에 고르게 마련이다. <타임>도 1938년에 아돌프 히틀러를, 1939년과 1942년엔 이오시프 스탈린을, 1979년에는 이란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지만, 아무래도 김정일이나 유영철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상상해보면 우울할 테니 말이다.

한 해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올해의 인물들을 보며 가끔은 부러움을 느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들, 결국 그들이 세상에 유익했는지는 훗날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그들은 (훌륭한 분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명불허전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는 법이 없다.

참, 나도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적이 있지! 2006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바로 ‘YOU’였으니까. 올 한 해도 ‘반값 등록금’ 시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시위에 참여했으니, 2011년 올해의 인물도 되겠군. 나는야 시위자(The Protester).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타임>이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기 시작한 것은 1927년이다. 그해 초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했던 찰스 린드버그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지 못한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그를 올해의 인물로 다루면서 처음 이런 기획기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부분 한 번씩 선정됐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무려 세 번이나 선정됐다고 한다(1932년, 1934년, 1941년).

과학자들은 그다지 올해의 인물과 친하지 않다. 가끔 반갑게 선정자 명단에서 얼굴을 보기도 하는데, <타임>은 1960년 세계적 업적을 쏟아내며 인류의 지적 유산에 지대한 공헌을 한 ‘미국 과학자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고, 1968년에는 아폴로 8호에 탑승한 우주인들을 선정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선은 닐 암스트롱을 태워 달 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지만, 아폴로 8호는 지구인을 싣고 처음으로 달 궤도를 돌며 달의 뒷면을 관찰한 최초의 우주선이었다. 그 공로로 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먼과 제임스 로벨, 윌리엄 앤더스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다. 1996년에는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를 이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를 개발한 대만계 미국인 데이비드 호 교수(록펠러대학)를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주목해야 할 과학자는 <타임>이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1999년 말 선정한 ‘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를 제치고 <타임>의 ‘세기의 인물’로 선정된 사람은 바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1998년 워싱턴DC 케네디센터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에 모인 패널들이 ‘금세기 최고의 인물을 한 명만 꼽는다면 누구인가’에 대해 열띤 논쟁을 하자, 1999년 12월 마지막 호에 <타임>이 실제로 선정하게 됐다(당시 논쟁한 패널에는 저녁뉴스 앵커인 댄 래더와 <스티브 잡스> 전기를 쓴 <타임> 편집자 월터 아이작슨이 있었고, 아이작슨의 아이디어로 <타임>은 ‘세기의 인물’을 선정하게 됐다). 20세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과학과 기술의 시대’라 평가할 수 있음에 따라, 과학자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인 아인슈타인을 ‘20세기 인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구글링’이 뽑은 2011년의 인물은 안철수 

70억 인구가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그들이 세상에 끼친 기여와 영향은 다르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영웅들에 의해 굴러간다고 믿는다면, 올해의 인물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동시대적 반추일 것이다. 사람들은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는 듯 보이지만, 올해의 인물 속에서 시대정신을 읽고 역사의식을 투영하며 ‘의미’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로서 자연스레 묻게 되는 질문 하나. 과연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선정 과정을 공정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라, 원래 취지인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가장 화제가 됐던 인물’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순전히 과학적인 의문인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몇몇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물어보거나, 기자나 편집자들이 모여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일까? 웹사이트에서 설문조사(Poll)를 하거나, 자신들의 잡지·신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으로 객관성을 얻을 수 있을까?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언급된 주요 인물들의 인용지수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 주장과 의견, 감정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트위터 글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을 올해의 인물의 강력한 후보로 추천하면 어떨까? 다행히 과학자들은 트위터에서 언급된 사람을 찾거나, 사용한 단어들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추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니, 그걸 이용하면 적절하리라.

실제로 구글은 검색 결과를 통해 선거 결과를 예측하고, 질병의 전염 경로를 추정하기도 했다. 한 예로, 복잡계 네트워크를 연구하는 카이스트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 수업에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날 구글에서 박원순과 나경원을 검색한 결과와 실제 선거 득표율을 비교해 보여주었는데, 두 수치가 상당히 일치해 수강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올해의 인물을 선정할 때도, 주요 후보인 안철수와 박근혜, 김어준 등의 이름을 구글에서 한번 쳐보시라는 것이다. 12월22일 현재, 구글에서 ‘안철수 2011’을 치면 4600만 개가 검색되는 반면, 박근혜는 4300만 개, 김어준은 620만 개가 검색된다. 2011년 대한민국 ‘올해의 인물’로는 안철수가 좀더 적절해 보인다는 게 ‘구글 검색 결과’일 수 있다 (구글 검색에서 실제로는 ‘박근혜’의 검색 결과가 더 많으나, 2011년으로 한정해 검색하면 ‘안철수’보다 적다). 

SNS가 강력 추천하는 올해의 인물은? 

좀더 일반인들의 관심사나 의견에 초점을 두고 싶다면, 뉴스나 광고, 홍보 등까지 검색되는 구글보다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회자되는 정도를 통해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면 좀더 시대정신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언론사들이 이런 걸 시도해볼 뜻이 있다면, 과학자들은 이제부터 ‘말도 안 되는 글들을 웹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설하는 알바부대, 댓글부대’를 색출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뜻이 기꺼이 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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