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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10-05 조회수 : 4,571
제 목 : 사설.칼럼[야!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야!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 / 진중권
 
 

곽 교육감이 여전히 존경할 만하다 믿는다
하지만 그 존경이 ‘정의’를 무너뜨린다면…

 

처음에는 ‘선거 캠프의 누군가가 곽노현 교육감 모르게 한 짓’일 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히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어떤 명목으로도 그런 돈은 절대로 줘서는 안 되며, 이미 돈을 건넨 이상 곽 교육감은 마땅히 도덕적 책임을 져야 했다.

곽노현 교육감이 이제까지 타의 모범이 될 만한 삶을 살아왔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법원은 그에게 인품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의 행위가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관심이 있다. 법정에서는 주관적 ‘선의’도 객관적으로 ‘범법’이 될 수가 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그런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넸을 때만 해도, 그것은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한 개인의 도덕적 스캔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수많은 교수와 논객들이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문제는 졸지에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했다.

어느 ‘진보적’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가끔은 상식을 뛰어넘는 진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면, 그냥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된다. 굳이 ‘상식을 초월한 진실이 있어, 그 진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전달된다’고 우길 필요는 없다. 믿음을 증거로 삼는 일은 교회에서나 할 일이다. 또 다른 교수는 <프레시안> 칼럼에서 아예 “도덕 따위는 보수에게 던져주라”고 외친다. 이 정도면 자살 테제다. 그의 바람이 실현된 것일까? 그 반대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정부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외친다. 진보와 보수가 아예 위치를 바꾸어 개그를 하기로 약속한 모양이다. ㄷ그룹 총수라는 논객은 ‘지식인들이 적 앞에 지레 겁을 먹어 동지를 적에게 내주는 의리 없는 짓을 했다’며 반지식인 선동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황우석·심형래를 옹호하다가 스타일 구긴 바 있는 그에게 명예회복의 좋은 기회를 주었다. 하긴, 곽 교육감은 앞의 두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곽 교육감 옹호에 쓰인 이 세 가지 어법은 새로운 게 아니다. 혹시 집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이 있다면 뒤져 보라. ‘그분을 믿습니다’, ‘힘이야말로 정의다’, ‘지식인은 민중을 배반한다’는 논리는 언젠가 이인화라는 소설가가 주창하던 것으로, 그 근원은 제3제국의 철학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내가 알기로 ‘우리가 남이가’는 원래 한나라당의 철학이었다. 숭고한 동지애로 한나라당은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용석 의원을 용서했고, 그 호의에 힘입어 이 물총 스나이퍼는 나경원 후보의 흑기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게 고작 이런 문화였던가?

몇가지 묻자. 과거 보수의 도덕적 스캔들 앞에서도 진보는 무죄추정하고 법원의 판결만 기다렸던가?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그때도 진보는 상대 후보에게 2억의 ‘선의’를 베풀 것인가? 만약 보수에서 후보를 매수하고는 공소시효가 지난 후에 돈을 주며 ‘선의였다’고 주장하면, 처벌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세 물음에 모두 ‘노’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 사안에 평소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우리는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공정함. 그것을 다른 말로 ‘정의’라 부른다. 정의는 배트맨의 덕성 같은 게 아니다. 한나라당은 아마 보수가 배트맨이고 진보는 조커라 믿을 테니까.

나는 곽 교육감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존경할 만한 분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존경이 ‘정의’를 무너뜨린다면, 그때 우리는 ‘진보’해야 할 이유마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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