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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8-12 조회수 : 4,160
제 목 :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⑪ 컵라면 [2011.08.15 제873호]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2] ⑪ 컵라면 [2011.08.15 제873호]
 
컵라면 창세기, 위대한 탄생(진중권) vs 도시 젊은이들의 삶 한 컵(정재승)
 
 
 
 
 
 

컵라면 창세기, 위대한 탄생

고품격 패션 아이템으로 국제화 시도했던 최초의 컵라면, 발명자 모모후쿠 회장에게 ‘노벨행복상’을

 

진중권 문화평론가

 

‘노벨행복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최초의 수상자로 자장면 개발자와 함께 인스턴트 라면 발명자를 추천하고 싶다. 단돈 몇백원에 한 끼의 ‘따뜻한’ 식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에게 이 행복을 맛보게 해준 사람은 일본 식품회사 닛신의 안도 모모후쿠 회장. 그는 1958년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치킨라면’)을 개발했다. 라면을 끓여먹을 때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라면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성장도 지금보다 몇 년 더 늦어지지 않았을까?



마카다미아 깡통이 준 영감

 

최초의 컵라면이 등장한 것은 1971년. 당시 일본에서 라면산업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라면 생산에 참여하는 기업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때 안도 회장은 “시장이 축소되는 지금이야말로 신제품 개발의 적기”라는 판단을 내리고, 시장의 정체를 극복할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는 인스턴트 라면의 국제화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맛에는 국경이 없다. 하지만 문화·전통·관습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그는 1966년부터 인스턴트 라면의 국제화를 위해 구미 각국을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모으던 차였다.

이 여행을 통해 그는 서양인들은 라면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종이컵에 주스를 부어 주는 자동판매기와 더불어 그에게 결정적 영감을 준 것은 슈퍼마켓 바이어와의 만남이었다. 이 사내는 인스턴트 라면을 끓인 뒤 컵에 면을 넣고 그 위로 국물을 부어 포크로 먹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그릇(돈부리·どんぶり)을 대신할 새로운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맛을 그릇이 아닌 새로운 용기에 넣어 포크로 먹을 수 있게 하면, 인스턴트 라면은 국제적 식품이 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안도 회장은 뜻하지 않게 또 다른 영감과 마주치게 된다. 기내식으로 받은 마카다미아 너츠 용기다. 그것은 납작한 알루미늄 깡통을 종이 뚜껑으로 덮은 밀폐 용기로, 손으로 종이를 떼어내 개봉하게 돼 있었다. 안도 회장은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그 땅콩의 용기를 갖고 내린다. 윗부분을 종이 뚜껑으로 밀폐한 용기라는 발상은 여기서 나왔다. 회장에게 영감을 준 이 위대한(?) 마카다미아 용기는 아직도 닛신사(社)에 보존돼 있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안도 회장은 먼저 용기 개발에 착수한다. 자기·유리·종이·플라스틱 등 온갖 재료를 실험한 끝에 연구팀이 도달한 결론은 스티로폼이었다. 스티로폼은 일단 보온성이 높아 열효율이 높고, 단열성이 높아 손으로 잡아도 뜨겁지 않다.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다. 스티로폼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한 겹이 아니라 공기층을 포함한 중층 구조로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겹겹의 층 사이에 낀 공기층이 안으로는 열을 보존하고, 밖으로는 열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과학에서는 이를 ‘르샤틀리에의 원리’로 설명하는 모양이다. 이는 ‘외부에서 어떤 스트레스가 오면 그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평형이 이동하거나, 그 방향으로 에너지가 흐른다’는 원리다. 컵라면 용기에 갑작스레 높은 온도의 물이 들어오면, 용기는 그 열을 줄이려고 어떻게 해서든 그 열을 내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면이 익으려면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것이 스티로폼의 발포(發泡) 속에 든 공기다. 열전도는 고체보다 기체에서 느리기에 공기가 열의 절연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용기 모양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개발팀은 컵라면 용기의 디자인을 위해 약 40가지 형태를 놓고 실험을 거듭했다. 그중에서 안도 회장의 마음에 든 것은 ‘한 손으로 쥐기 쉽고 잡아도 미끄러지지 않는 형태’였다. 연구팀은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형태로는 ‘종이컵을 크게 만든 컵 모양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여기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에는 다양한 형태의 용기가 존재하나, 최초의 컵라면은 글자 그대로 컵 모양을 하고 있었다.

 

면발과 포장에 숨은 과학적 비밀

 

면의 개발이 시작된 것은 그보다 늦은 1970년이다. 면 개발에는 안도 회장이 개발팀에 힌트처럼 던져준 힌트- 이른바 ‘덴푸라의 지혜’- 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릇 아래 가라앉은 튀김은 기름 위에 떠오를 때 가장 알맞게 튀겨진다.” 면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뜨거운 물에 면발이 고루 익게 만드는 것이다. 컵라면에서 면을 꺼내 구조를 살펴보면, 위로 갈수록 면발의 구성이 촘촘하고, 아래로 갈수록 느슨하다.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므로, 밀도 차이로 인해 면이 용기 안에서 고르게 익는 것이다.

면은 용기의 중간 부분에 걸린다. 어느 TV 프로그램을 보니, 면이 바닥에서 떨어져 있어야 고루 익는다고 한다. 하지만 닛신사의 홈페이지는 이를 보관과 운송의 문제로 설명한다. 면이 중간에 걸려 있어야 운송 중에 부서지지 않고, 용기 구조도 더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면을 용기 중간에 끼워넣는 게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안도 회장은 어느 날 침대에서 천장이 회전하면서 하늘과 땅이 뒤집힌 느낌을 받는다. 이 체험 뒤 그는 컵에 면을 넣는 대신 면 위에 컵을 끼워넣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다.

분말수프를 만드는 데는 역시 재료 선정이 중요하다. 재료를 선정할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새우 품종을 고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개발팀은 세계 각지에서 60여 종의 새우를 들여와 실험했다. 그리하여 선택된 것이 인도 서해안의 일부 지역에서만 잡히는 새우다. 말린 새우로는 최고의 품종이라고 한다. 이렇게 개발된 세계 최초의 컵라면은 1971년 이래로 제목만 ‘Cup O’Noodle’(컵 오 누들)에서 ‘Cup Noodle’(컵 누들)로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맛과 모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당시 컵라면 하나의 가격은 100엔이었다. 적정 가격의 4배에 달한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안도 회장은 높은 가격이야말로 컵라면의 높은 가치를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컵라면은 자위대의 비상식량으로 시험 판매돼 호평을 받았다. 1971년 안도 회장은 직접 도쿄 긴자의 ‘보행자 천국’으로 나가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판촉행사를 벌였다. 그때만 해도 컵라면은 싸구려가 아니라- ‘신라면 블랙’처럼- 고품격 음식이자 첨단을 달리는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국제화는 절반만 성공, 편의성 강조돼

 

일반 라면의 경우, 포장과 냄비와 그릇이 분리돼 있다. 컵라면 용기 속에서 이 세 가지는 하나가 된다. 우리가 컵라면을 먹는 것은 무엇보다 편리함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컵라면을 개발한 동기는 ‘편의성’이 아니라 ‘국제화’에 있었다. 오늘날 컵라면이 세계 80개국 이상에서 팔린다 하나, 일본이나 한국에서만큼 컵라면이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컵라면의 국제화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 셈이다. 유럽의 슈퍼마켓에서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지 않는다.

컵라면의 편의성이 빛을 발하는 곳은 역시 PC방이다. 하지만 거기서 컵라면을 먹는 게 법적으로는 아주 복잡한 모양이다. 강원도의 한 지역에서는 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되나, 가져다주면 안 된다. 충북의 한 지역에서는 물을 부어주거나 가져다주는 것 모두 불법이다. 제주도의 어느 지역에서는 PC방에서 컵라면을 파는 것 자체를 금한다. 반면 전남의 한 지역에서는 단무지만 주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지난 6월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질의에 보건복지부는 “PC방에서 컵라면에 물을 부어줘도 된다”고 대답했다. 휴, 컵라면에 물 붓기 참 힘들다.

 

 


 

 

 

도시 젊은이들의 삶 한 컵

빛나는 발명품인 동시에 여유없는 삶을 응축한 서글픈 기호식품 그리고 ‘컵라면 인생’을 사는 우리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

 

여러 나라의 음식문화를 서술한 역사책에 따르면, 인스턴트 라면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건 1958년이다.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의 남서부 지역 출신 일본인 안도 모모푸쿠(닛신식품 회장)라는 청년이 만든 ‘치킨라면’이 세계 최초의 라면으로 기록돼 있다.

 

라면 면발이 꼬불꼬불한 이유

 

우리나라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무려 36억 개다.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연간 80개에 이르는, 2위와 큰 격차를 보이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1963년 국내 최초로 판매된 삼양라면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김치찌개 백반 가격이 30원 정도였다니, 라면은 50년 전부터 허기진 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식사 대용품이었다. (당시 정부의 강력한 혼·분식 장려 정책은 라면 판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컵라면은 1971년에 탄생했다. 일본의 라면회사 닛신에서 방수 물질인 폴리스티렌 컵 안에 얇은 라면발을 담아 뜨거운 물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그것을 삼양식품이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이 1972년이었다.

라면 맛의 비결은 3∼4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면발이 쫄깃쫄깃하게 잘 익는 것이다. 그러려면 칼국수 면발처럼 넓적하고 두꺼우면 안 되고, 뜨거운 물과 닿는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려면 면발이 가늘어야 한다. 부피가 같다면 그 안을 채우는 면발이 가늘수록 상대적으로 표면적이 넓어지니까.

꼬불꼬불한 라면 면발을 모두 펴면 그 길이가 약 50m에 달한다. 면발이 꼬불꼬불한 이유는 뜨거운 물과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야 쉽게 익고, 국수 면발처럼 한 방향으로 말려 있을 때보다 여러 방향으로 얽혀 있어야 잘 부서지지 않아서다(게다가 한 방향으로 곧게 뻗은 면발은 머리카락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보기에 징그럽다’는 의견으로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또 영양가를 높이면서 유통 과정에서 보존 기간을 오래 지속하려면, 튀김 공정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기름을 흡수해 튀겨야 하는데, 이때 수분 증발을 도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이것이 꼬불꼬불한 라면에 숨겨진 화학공학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판되는 라면의 종류는 약 300가지다. 그중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즐기는 라면은 단연 신라면인데, 시장점유율이 40%에 이른다. 다음으로 안성탕면(18%), 삼양라면(11%), 오징어짬뽕(6%), 너구리와 수타면(5%) 등이 바싹 뒤를 쫓고 있다.

2000년 일본에서 벌어진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일본의 발명품 중 가장 빛나는 발명품’으로 라면이 선정됐다. 매년 전세계적으로 940억 개(2008년 기준)가 소비되는 메가 히트 상품(그중 절반은 중국에서, 나머지 절반은 인도네시아·일본·한국·러시아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이지만, 라면은 소비자의 웰빙 의식이 높아지는 구조적 변화로 인해 최근 10년간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컵라면은 세상에서 사라질까?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세계가 도시 중심으로 개편되는 상황에서 컵라면은 도시문화에 빠질 수 없는 식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지난 세기 동안 도시 발달이 우리 식문화에 끼친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도시와 함께 발달한 인스턴트 식문화

 

수백 년 전만 해도 도시 냄새란 음식 냄새를 뜻했다. 진한 향신료 냄새, 고기 굽는 냄새, 향긋한 채소 냄새가 그 도시의 사람 사는 향기였다. 우리에겐 ‘정치적 광장’으로 알려진 로마의 ‘포룸’이나 아테네의 ‘아고라’는 원래 음식을 사고파는 시장이었다. 사람들은 시장에 모여 음식을 거래하며 사교활동을 하고 정치적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자동차와 냉장고가 등장하자 대규모 슈퍼마켓은 도시 외곽으로 옮겨졌고, 냉동포장 기술이 발달해 닭과 돼지 등 육류를 시골에서 잡아 이송하자 도시에서 음식 냄새는 점차 사라졌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서울에선 닭장 안에서 파닥거리는 닭들 중에 한 마리를 골라 그 자리에서 잡아주는 시장 풍경이 흔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풍경이 사라진 것은 그런 방식으로는 도시인들의 엄청난 육식문화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규모로 사육된 소·돼지·닭을 산지에서 직접 잡은 뒤 포장·이송하지 않고서는 도시인들의 포악한 식성을 당해내지 못한다.

인간이 육식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채 1만 년이 못 되지만, 지금 같은 ‘육류의 폭식문화’는 20세기 들어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육류 소비량은 무려 37kg이다. 연간 120kg에 달하는 미국의 육류 소비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40년 전보다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양이다.

전세계적으로 도시 거주 인구가 농촌 거주 인구를 초월한 때는 2006년이다. 현재 도시는 지구 자원의 75%를 소비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도시인구는 지금의 2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도시가 농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생활주거 형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시가 인간의 음식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를 연구하는 영국 런던대 연구원 캐럴린 스틸의 저서 <배고픈 도시>(Hungry City)에 따르면, 하나의 도시를 먹여살리는 데 도시 면적의 100배에 해당하는 넓은 농지가 필요하다. 식량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농촌, 저장하고 운송하는 물류유통회사, 간편 요리를 제공하는 가공식품 제조회사와 레스토랑이 없다면, 이제 도시는 하루도 생존하기 어렵다.

소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사람 1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고, 쇠고기 1kg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이 보리 1kg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양의 1천 배에 달하니, 육류를 폭식하는 도시는 가히 농촌에 기생하는 삶의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30년 영국의 어느 시인이 ‘가난한 자는 모든 것을 지불한다’라는 소곡에서 노래했듯이, “왕은 모두를 다스리고/ 성직자는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변호사는 모두를 변호하고/ 농부는 모든 것을 지불하고, 또 모두를 먹인다”는 표현이 한없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처럼 도시의 발달은 포장육과 수많은 건조·냉동 식품을 도시로 수송하는 식문화를 발달시켰다. 바쁘고 빠른 도시문화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식사 시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침이나 점심을 간단한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으로 때워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그 한가운데에 컵라면이 놓여 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 상상하던 ‘간편한 캡슐형 식사’의 역할을 우리 시대 컵라면이 대신 수행하고 있다고나 할까?

 

도시인의 건조한 일상을 대변하는

 

3분의 짧은 조리 시간과 건조한 면발, 1회용 컵에 담긴 한 끼 식사. 어쩌면 컵라면은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도시 젊은이들의 삶을 농축해 보여준다. 끊임없이 소비되는 여유 없는 삶, 성찰이 부족한 건조한 일상. 그것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보내는 오늘의 삶이며, 그들의 ‘컵라면 인생’은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더라도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다. 컵라면 옆에 다소곳이 놓인 ‘중국산 밀폐용 김치’와 재료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핫바’가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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