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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7-13 조회수 : 4,539
제 목 : <나가수> 조관우 보고 그 '꽃밭'에서 뛰놀다

<나가수> 조관우 보고 그 '꽃밭'에서 뛰놀다

[꽃산행 꽃글] 가수는 노래하고 나는 꽃을 본다

기사입력 2011-07-13 오전 8:02:24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그램이 요즘 일요일 저녁을 뒤흔들고 있다. 나름 실력이 짱짱하다고 인정받는 일곱 명의 가수가 출연해서 노래 경연을 벌인다. 청중 평가단이 투표하여 한 사람씩 탈락시키는 서바이벌 무대이다. 지난번 한 가수는 꼴찌를 해서 탈락했고 한 가수는 노래 부르다가 그만 가사를 까먹고 다시 불렀다가 불공정하다는 논란이 일자 자진 퇴장했다. 그래서 두 명의 가수가 새로 합류했다.

새로 등장한 가수 중 한 명이 조관우이다. 그는 목소리만으로도 심금을 울린다는 대중가수이지만 그의 윗대 어른들은 국악, 특히 판소리로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 가수 조관우의 할머니는 인간문화재 박초월(朴初月, 1913∼1983년) 여사이고 그의 부친은 조통달 명창이다. 학창 시절 조관우는 말썽을 피우면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야, 임마, 할머니는 초월하고 아버지는 통달했는데 너는 뭐꼬?" 어쨌든 조관우가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차지하는 가수로 성장한 것은 득음의 경지에 이른 이런 집안 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음악 세계를 잘은 모르지만 조관우,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그것은 '꽃밭에서'라는 곡이다. 원래 가수 정훈희의 노래이다. 그것을 조관우가 자신만의 색깔과 향기로 다시 불러 크게 히트하였다. 노랫말이 좋아서 더 귀에 감기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최대치의 고성을 질러가며 가끔 흥얼거리기도 한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이렇게 좋은날-엔 이렇게 좋은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아~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이렇게 좋은날엔 이렇게 좋은날엔 그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아~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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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노래하고 나는 꽃을 본다. 꽃밭에는 꽃이 있고 꽃에는 꽃잎이 있다. 꽃잎에서 뻗어 나오는 고운 빛. 그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수가 마이크 앞에서 고운 빛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열창할 때 나는 꽃밭에 앉아서 물어본다. 이 꽃들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뿌리깊은나무에서 1978년에 초판 발행한 책이 있다. 제목은 <털어놓고 하는 말>. 이 책에는 우리 현대사에서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전해주는 눈물겨운 체험담이 수록되어 있다. 영화감독 김기영, 어류학자 정문기, 의사 공병우, 명창 박녹주, 동요작사가 윤극영, 국어학자 이희승, 작사가 반야월 등 스물일곱 편이다. 이 중에는 식물학자 박만규(朴萬奎, 1906~1977년)의 고백도 들어 있다. 그 글에 나의 물음에 대한 작은 실마리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좀 길게 인용해 본다.

"그래 마흔 살 난 사내가 한밤에 화차 가는 소리를 내며 엉거주춤 타자기와 씨름질을 해야만 했던 일은 무어냐? 그것은 선생노릇 스무 해 동안에 짬만 나면 산으로, 들로, 물가로 돌고 돌며 모든 식물에 우리말로 이름을 달아주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절로 나서 자라는 식물이 사천여 가지나 있다. 그 가운데에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이름을 달아준 것이 이천 가지이다. 그러나 나머지 이천 가지는 확실한 이름이 없으니, 여기서는 이렇게 불리고 저기서는 저렇게도 불리어서 식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어려움을 주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모은 표본물 가운데 <향명집>에 나오지 않는 것은 그것들대로 모아서 새로 이름을 붙이고, <향명집>에 실린 이름 가운데서 나쁜 것만 골라 고쳤다.

꽃은 처음 본 사람이 그 느낌으로 무어라 불러주면 그것이 곧 그 꽃의 이름이 된다. 제비처럼 날렵하니 제비꽃, 씹어보아 쓰다고 씀바귀, 물가에서 자란다고 물쑥. 이 모두가 우리네 조상들이 지어서 불러내려온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처럼 꾸밈없고 멋진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듣기만 해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엉큼한 이름도 많다.

 
▲ 개불알꽃. ⓒ현진오
난초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로서 붉은 꽃이 한 개씩 늘어져 피는 꽃을 <향명집>에서는 개불알꽃이라고 이름 지어놓았다. 꽃의 모양에서 딴 이름인 듯하나 부르기가 몹시 난처한 이름이라 나는 요강꽃이라고 바꾸어놓았다.

광릉 부근에서 나는 더덕의 한 종류인 소경불알도 이와 비슷하게 점잖지 않은 이름이다. 이처럼 욕하듯이 불러야 하는 이름이 식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조개라고 부르는 조개의 본디 이름은 말씹조개였다. 이 조개의 이름은 경성고등학교 생물 교과서를 만들면서 지금의 말조개로 고쳐 실었다.

일본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만든 이름 가운데는 끈끈이주걱이니 며느리밑씻개니 하는 이름도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디풀과에 딸린 한해살이풀로서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이 풀의 일본 이름은 의붓자식밑씻개인데 풀의 모양이 예쁘지 않고 잎과 줄기에 잔 가시가 많아 껄끄러우므로 의붓자식처럼 미운 것의 밑이나 닦았으면 좋겠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의붓자식이 미운 만큼 며느리도 미우니 우리나라에서는 며느리밑씻개가 되었다."
















 
▲ 며느리밑씻개. ⓒ이굴기

이 이름들의 운명은 오늘날 어찌되었을까.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확인하여 보았다. 개불알꽃은 살아 있다. 예쁜 꽃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요강꽃은 없다. 요강나물이 있기는 한데 전혀 다른 식물이다. 소경불알도 살아 있다. 열매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말씹조개는 없다. 말조개로 대체되었다. 며느리밑씻개도 살아 있다. 그러고 보면 말들도 식물이나 동물처럼 살고 죽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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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동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효선 선생이 작사한 '꽃밭에서'이다. 어느 자리에서 해금으로도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주 좋았다. 이제껏 나도 여러 번 불렀지만 아빠라고 하기가 어쩐지 쑥스러웠다.

아버지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버지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 놀다가 아버지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버지는 꽃 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고 꽃 같이 살자 그랬죠

내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던 시골집 마당에는 소똥냄새가 물컹한 거름자리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삽작 옆으로 손바닥만한 꽃밭이 있었다. 지릅대기 꽂고 새끼줄로 울타리를 한 돌담 밑의 조그만 꽃밭이었다.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면 그 꽃밭에는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등이 자라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비 오고 난 뒤가 좋았다. 소나기가 한소끔 내리고 나면 봉숭아 꽃잎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빗물로 세수한 모래알이 작은 돌담 위로 깨끗하게 올라앉았다. 어떤 모래는 힘껏 뛰어올라 식물의 줄기를 간신히 붙들고도 있었다. 모두가 하늘이 시킨 일이었다.

봉숭아,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우리집 꽃밭의 생태계를 이루었던 식물들. 봉숭아 꽃잎으로는 손톱에 물을 들였다. 맨드라미꽃을 따서 기정떡에 고명으로 넣어 쪄 먹었다. 나팔꽃 을 통째로 흰옷에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딱 때리면 나팔꽃 모양이 그대로 옷감에 찍혔다. 그 빈약한 꽃밭의 목록 중에서도 나는 채송화를 좋아했다. 채송화는 먹지도 않았고 물들이지도 않았다. 때리지도 않았다. 그저 채송화에 손바닥을 맡기면 온몸이 덩달아 간질간질해졌다.

최근에 나는 산으로, 들로, 물가로, 바닷가로 돌아다닌다. 식물에 우리말로 이름을 달아주는 일은 아니고, 그저 있는 이름이라도 제대로 알려고 하는 중이다. 이번에 나는 알았다. 채송화도 종류가 무지 많다는 것을.

우리집 꽃밭에 살던 것과 다른 두 종류를 보았다. 회문산 어느 돌틈에서는 바위채송화, 울릉도 갯가 바위에서 사수채송화를 만났다. 가장 최근에 본 것은 설악산에서였다. 오색으로 올라가 대청봉 지나 희운각에서 일박했다. 다음날 공룡능선 지나 마등령 거쳐 설악동으로 하산가는 길이었다. 거의 다 내려와 비선대로 바로 빠질까 하다가 금강굴에 가려고 몸을 옆으로 튼 순간이었다. 철제계단 입구 옆의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바위채송화가 왈칵 달려드는 게 아닌가.
 
▲ 회문산의 바위채송화. ⓒ이굴기
 
▲ 울릉도의 사수채송화. ⓒ이굴기
 
▲ 설악산의 바위채송화. ⓒ이굴기

채송화는 이름은 각기 달라도 모두 지면 가까이에 산다. 그래서 채송화를 보려면 고개를 아래로 수그려야 한다. 사진도 찍을 겸 자세히 보려고 몸을 바짝 엎드렸다. 노오란 꽃잎 사이로 뻗어난 길. 그 길 따라 나의 어린 시절로, 정든 시골집 꽃밭으로 갈 수 있다면! 그냥 설악산 비선대 위에서 주저없이 훌훌 뜨고 싶었다.
 
 
 
 

/이굴기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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