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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6-14 조회수 : 4,378
제 목 : [태평로] '잡스의 매직'을 이번에도 베낄 수 있을까

[태평로] '잡스의 매직'을 이번에도 베낄 수 있을까

▲ 김기천 논설위원

'잡스의 매직(magic)'이 다시 한 번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애플스티브 잡스는 최근 대형 서버 컴퓨터에 각종 자료와 소프트웨어를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온라인으로 불러내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발표했다.

클라우드 컴퓨팅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쟁쟁한 해외 IT기업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KT 등이 이미 관련 서비스를 도입했다. 전 세계 IT 업체들 사이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이 핵심 화두(話頭)로 떠오른 지는 오래다.

그럼에도 잡스는 '아이클라우드'를 선보이면서 "세상이 또 달라진다"고 선언했다. 아이클라우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 맥PC 같은 애플 제품들끼리 자동으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컴퓨터 이용 방식에 새 이정표를 세운 데 있다.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언제든지 아이패드나 맥PC에서 꺼내볼 수 있다. 음악 파일이나 이메일·문서·일정·메모·전화번호를 비롯한 다른 데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복잡한 사용법을 익힐 필요도 없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게 해결된다. '기술'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쉽고 편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아이클라우드가 클라우드 컴퓨팅의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고, 관련 산업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굳이 PC에 모든 자료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져, PC 업체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짜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이메시지' 때문에 통신사들도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애플이 내놓은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는 모두 최초의 제품이 아니었다. 애플은 다른 기업들이 이미 하고 있는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전에 없던 서비스와 콘텐츠, 편리함을 선보이며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잡스의 다음 행보를 대부분 예측하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경쟁업체들로선 말 그대로 '마술'에 홀린 듯한 느낌일 것이다.

이번 잡스의 매직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잡스'와 '한국의 애플'은 왜 나오지 못하는지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국내 IT 기업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까지는 뒤늦게 모방을 해서라도 그럭저럭 따라가고 있지만 아이클라우드에서도 그런 전략이 통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애플 앱스토어에는 42만개가 넘는 소프트웨어와 응용프로그램이 올라와 있다. 1년에 25달러만 내면 애플이 서비스하는 18만곡의 음악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 애플의 힘은 하드웨어의 성능뿐만 아니라 이렇게 애플 장터에 몰려든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제작자들에게서 나온다. 국내 기업들이 아이클라우드의 몇몇 기술은 베낄 수 있겠지만 애플이 구축해놓은 강력한 하드웨어와 콘텐츠·소프트웨어 생태계는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 인터넷 산업에선 몇 년 전부터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기업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제조업체들은 물론 통신사와 대형 포털업체의 독과점 횡포에 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수없이 나왔다. 그러나 국내 IT 대기업들은 좀처럼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외국의 앞선 서비스와 제품을 사는 게 인터넷 시대의 진정한 애국"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래야 우리 대기업들이 정신을 차리고, 한국 IT 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정말 소비자들의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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