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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5-26 조회수 : 4,841
제 목 : 저축은행 비리, 다산 정약용까지 농락하다

 

저축은행 비리, 다산 정약용까지 농락하다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①] 구속된 부산저축은행 대표가 소장한 '하피첩'

 

역사는 단순히 지난 얘기만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는 지난 시대를 산 선조들의 혼과 멋이 담겨 있으며, 또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어렵고 무겁기만 한 역사 얘기를 '정운현 역사 에세이'에서 쉽고 재밌게 풀어볼 작정입니다. 대상은 한국 근현대사를 전후한 시기이며, 주 1회꼴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강남의 거부들이 비싼 고서화를 상속이나 투기의 목적으로 사 모은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강남 도곡동 30억짜리 타워팰리스에 사는 어떤 부자가 집값에 버금가는 액수의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 5조 원대 불법대출을 비롯해 무려 7조 원대의 금융비리로 큰 물의를 빚은 부산저축은행 대표가 개인이 소장하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고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구입 자금 출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 은행의 김민영(65·구속) 대표는 국가 지정문화재인 보물 20점(두 점은 중복)을 포함해 고서화(古書畵)를 대량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고미술업계에는 김씨가 소유한 고서화가 무려 2000여 점으로 이를 시가로 환산하면 수천 억원대에 이른다고 합니다.

 

김씨가 소장한 보물 20점 가운데 '월인석보(月印釋譜)'(권9·10)는 한글의 창제 직후의 것으로 한글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육경합부(六經合部)'는 조선조 세종 때 판각한 6개 불교경전 묶음집으로 이 역시 불교 문화재의 정수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씨 소장품 가운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 유배시절 친필로 써서 만든 '하피첩(霞?帖, 2010년 8월 문화재청이 보물 1683-2호 지정 예고)'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아내가 보내온 치마를 잘라 만든 '하피첩'
ⓒ 보물 1683-2호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요즘 부부들과는 달리 겉으로는 애정 표현이 그리 살갑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해오는 몇몇 문인들의 서간을 통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입니다. 그들 역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기에 부부애나 자식사랑은 지금이나 매한가지로 지극했던 것 같습니다.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시절 부인 예안 이씨가 한문에 익숙하지 않자 일부러 언문(한글)편지를 보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제주 바닷가에 붉게 핀 동백을 보고는 "동백이 붉게 타오르는 이유는 당신 눈자위처럼 많이 울어서일 것이오"라며 고향땅에 두고 온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다산의 유배생활 18년을 버틸 수 있게 했던 두 아들과 아내

 

추사만큼이나 아내사랑이 깊었던 인물로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습니다. 다산은 경남 장기에 이어 전남 강진에서 무려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는데,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두 아들과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진 성품의 아내 홍씨는 그를 대신해 집안을 꾸려가며 남편이 귀양에서 풀릴 날을 학수고대하며 고향을 지켰습니다. 천리 타지에서 다산은 그런 아내를 그리며 두 아들에게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려라'는 당부를 늘 잊지 않았습니다.

 

다산이 강진에서 10년째 귀양살이를 하던 그해(1810년) 가을, 작은 꾸러미 하나가 배소(配所)에 도착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아내가 고향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꾸러미를 풀어보니 그 안에는 아내가 시집올 때 입고 왔던 여섯 폭 짜리 다홍치마가 들어 있었습니다. 신혼 시절의 추억이 깃든 다홍치마를 보고 남편이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를 바랬던 것일까요. 다산은 아내의 체취가 배인 치마를 마름질하여 두 아들에게 줄 교훈을 담은 서첩(書帖)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다산의 '하피첩(霞?帖)'입니다.

 

"내가 강진 귀양지에 있을 때,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 왔다.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 색 활옷이었다. 붉은 빛은 이미 씻겨 나갔고, 노란 빛도 엷어져서 글씨를 쓰기에 마침 맞았다. 마침내 가위로 잘라 작은 첩을 만들어, 붓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지어 두 아들에게 보낸다. 훗날 이 글을 보면 감회가 일 것이고,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뭉클한 느낌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帖)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곧 붉은 치마(홍군, 紅裙)을 돌려 말한 것이다. 가경 경오년(1810) 초가을 다산(茶山)의 동암(東庵)에서 정약용 쓰다."

 

하피첩의 '하피(霞?)'란 중국 당송(唐宋) 시대 신부가 입은 혼례복을 말하는 데,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비(妃), 빈(嬪)들이 입던 옷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하피란 다산의 부인 풍산 홍씨가 시집 올 때 입고 온 붉은색 치마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제대로 쓰자면 홍군(紅裙), 즉 '붉은 치마'라고 써야 옳지만 이는 해석하기 나름으로는 '기생'이라는 다른 뜻도 있기 때문에 그냥 붉을 하(霞), 즉 노을 하를 써서 '하피(霞?)'라고 한 것입니다.

 

한편 그로부터 3년 뒤 다산은 시집간 외동딸이 눈에 밟혔던 모양입니다. 서첩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에 한 해 전에 혼인한 외동딸에게 줄 그림을 그렸습니다. 꽃이 벙근 매화 가지에 올라 탄 멧새 두 마리를 그려 넣은 '매조도(梅鳥圖)'(고려대박물관 소장)가 그것입니다. 유배시절 장남 학연이 두어 차례 다녀간 적은 있지만, 아내와 외동딸은 그 긴 세월동안 얼굴 한번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 남은 딸의 시집가는 날도 함께 해주지 못했으니 아비 된 자로서 다산의 심경이 오죽했겠습니까.

 

翩翩飛鳥 息我庭梅 파르르 새가 날아 뜰 앞 매화에 앉네

有烈其芳 惠然其來 매화 향기 진하여 홀연히 찾아 왔네

爰止爰棲 樂爾家室 여기에 둥지 틀어 너의 집 삼으려무나

華之旣榮 有賁其實 만발한 꽃인지라 먹을 것도 많단다

 

▲ 매조도 다산이 외동딸에게 그려준 매화와 새 그림으로, 그 아래 이를 그린 사연을 적었다
ⓒ 고려대박물관 소장

 

다산의 애틋한 부부애와 자녀사랑 담긴 하피첩

 

다산은 슬하에 9남매를 두었으나 6남매를 일찍 가슴에 묻었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전해오는 자식들의 죽음 소식은 그로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요절한 아이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다산은 "구장이와 효순이는 산등성이에다 묻었고, 삼동이와 그 다음 애는 산발치에다 묻었다. 농아도 필시 산발치에 묻었을 거다"라고 적고는 "오호라, 내가 하늘에서 죄를 얻어 이처럼 잔혹하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비통해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 남은 딸이 오죽 했겠습니까?

 

다산의 애틋한 부부애와 자녀사랑이 담긴 이 하피첩은 그가 남긴 문집에는 기록으로만 전해왔을 뿐 한동안 그 실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6년 개인사업가 이강석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고물상 할머니로부터 입수해 KBS <진품명품>에 처음 소개함으로써 200년만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당시 감정단으로부터 1억 원의 평가를 받아 그 액수를 놓고도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이 하피첩은 골동품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유서깊은 문화재를 거액 금융비리의 장본인이 출처도 불투명한 자금으로 매입해 소장해온 사실은 왠지 개운치가 않습니다. 특히 김씨는 검찰수사 개시 직후 소장품 전부를 시세보다 헐값에 타인에게 넘겨 재산환수에 대비해 빼돌린 게 아니냐는 의혹조차 받고 있습니다. '월인석보' 두 권만 해도 1000억 원대를 호가하는 데 전체를 10억 원에 매도했다고 합니다. 유배지에서 아내의 체취가 배인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교훈을 적고, 또 외동딸에게 줄 그림을 그리던 다산이 하늘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면 그 감개(感慨)가 어떠할까요? 더러운 돈으로 우리 가족의 정(情)을 농락했다고 호통을 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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