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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1-05-24 조회수 : 3,840
제 목 : [야! 한국사회]군가산점 부활 / 진중권

[야! 한국사회]군가산점 부활 / 진중권

 

이 정권 들어와서 사회가 거꾸로 돌아가다 보니 주책없이 부활하는 망령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국방부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군가산점’ 부활이다. 이들이 이미 오래전에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사안을 다시 들고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와 달리 보수정권의 출범으로 헌재의 구성이 달라졌으므로, 이번엔 잘하면 합헌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로 기억한다. 하나는 군복무로 인한 불이익의 해소가 꼭 제대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군가산점이 사실상 성별의 차이나 장애·비장애의 차이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질적’ 논증이기에, 가산점 3%를 2.5%로 줄이는 식의 ‘양적’ 장난으로 슬쩍 피해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군가산점을 2.5%로 가정하고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9급 합격자 339명 중 남자의 수가 67명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67명의 여성이 벌건 대낮에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응시자의 피해는 막강하지만, 실제로 제대자 중에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0.0004%에 불과하단다. 도대체 그들은 ‘신의 아들’인가? 군 생활은 같이 했는데 왜 그들만 특혜를 받아야 하는가?

복무로 인해 남성이 사회진출에서 여성에게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도 검증되지 않는 명제다. 용감한 월남전 스키부대 용사들이여, 군복무 2년 때문에 여성보다 사회진출이 늦는 게 그토록 억울한가? 걱정 마시라. 대한민국은 워낙 선진국이라, 그런 성차별(?)을 개선할 유·무형의 제도를 도처에 충분히 갖추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취업 비율을 절대적 열세로 잘 관리하고 있다.

군 제대자가 진정으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란 병역회피의 능력과 방법을 갖춘 고위층 자제들과 경쟁을 할 때일 것이다. 형평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차라리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다. 하지만 국방부는 거기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가? 아무 생각 없다. 우리의 월남전 스키부대 용사들은? 그들이 그것을 그토록 중한 사안으로 여겼다면, 병역면제 정권은 애초에 탄생하지를 않았겠지.

국방부에서 군 제대자의 처지를 그렇게 어여삐 여긴다면, 0.0004%로 생색을 낼 게 아니라 모든 제대자가 혜택을 받을 다른 방법을 생각할 일이다. 가령 제대할 때 일괄적으로 전별금을 주든지, 제대해서 다닐 대학의 학자금을 융자해준다든지, 아니면 일반적 복지의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준다든지. 현역병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병사가 알량한 가산점보다는 이런 대책을 원했다.

그럼 국방부는 왜 그렇게 못하는가? 당연하다. 생색은 내되, 돈은 쓰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애먼 여성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0.0004%에게 나눠주고, 그것으로 국방부의 노력으로 전체 장병의 처우를 개선한 것처럼 호도하는 것. 이게 국방부의 의도다. 도대체 지키라는 나라는 안 지키고 골방에서 이런 잔머리나 굴리는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계속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제대자들이 자신을 0.0004%의 처지와 그토록 철저히 동일시하는 이유다. 0.0004%가 무슨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회적 약자도 아닐 터, 그들의 처지를 곧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이 놀라운 연대의식의 정체는 뭘까? 프로이트가 말하는 거세공포? 사회적 강자들에게 거세당하는 성기,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들 앞에서만은 당당히 세우고 싶다는 마지막 자존심?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있다. 제대하면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테니까, 그저 군대에 있는 우리 젊은이들, 황당한 사건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지 않고 군복무 무사히 마치게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월남전 스키부대 용사들은 맛이 간 쉰 떡밥에는 낚이지들 마시라.

진중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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