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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0-01-13 조회수 : 3,866
제 목 :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76> 복잡계의 물리①

고비성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널리 알려진 시도가 이른바 '스스로 짜인 고비성(self-organized criticality)'입니다. 고비성질을 스스로 짜 나간다는 뜻인데, 주어진 계가 처음에는 복잡성을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성을 지닌 상태로 스스로 변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동역학에 따라 계의 상태가 변해나갈 터인데, 복잡성을 지닌 상태가 끌개이므로 어느 상태에서 출발하더라도 결국 그 복잡성 상태로 끌려간다는 착상이지요. 나는 그러한 과정에서 환경과의 정보 교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 의견은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동의하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지요. 물리학계에서 어떤 새로운 이론에 대한 결과를 얻으면, 전문 학술지에 발표합니다. 전문가 집단, 곧 물리학자 사회에서만 보는 학술지로서 널리 알려진 이른바 국제 학술지들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런 데에 투고하면 일단 심사위원들에게 심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심사위원들은 나 같은 물리학자들이고, 나도 가끔 심사합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일단 비판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점이 있으리라 예상하면서 살펴보지요. 그래서 잘못되거나 미흡한 점을 지적해서 심사평을 쓰면 그걸 종합해서 논문으로 게재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결정은 보통 몇 사람의 편집자가 내립니다. 이러한 과정은 과학자 사회, 이른바 동료 물리학자 집단에 의해 진행되므로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치판단이 완벽할 수는 없고 때로는 타당하지 않은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편견이나 과학자 사회에서의 권력, 개인적인 친분 등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복잡계란 무엇인가

이같이 복잡성을 보이는 자연현상은 종래에는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20세기까지 물리학은 보편이론의 구축에 주력했고, 비교적 간단한 현상의 해석을 다루었지요. 그러다가 복잡성을 보이는 현상이 매우 다양하게 알려졌고, 물리학의 방법을 이용해서 이를 분석하는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복잡계 현상을 다루는 이른바 복잡계 물리가 21세기 물리학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복잡계 물리는 자연의 다양한 복잡성이 근본적으로 복잡계가 보이는 '떠오르는 현상(emergent phenomenon)'이라고 간주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에서는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한 협동현상으로서 특징적인 집단성질이 떠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지요. 복잡성이란 바로 이러한 협동현상에 의해 떠오른 집단성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잡성을 보이는 대상은 모두 많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입니다. 흔히 복잡성을 혼돈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혼돈은 무질서에 가깝습니다. 이에 따라 복잡성은 혼돈의 언저리(edge of chaos)에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혼돈은 구성원이 하나인 계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복잡성과 다릅니다.

이러한 협동현상과 떠오름을 다루는 이론 체계가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입니다. 통계역학의 내용은 논의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앞에서 간단히 언급했지요. 통계역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게 엔트로피 또는 정보입니다. 그래서 통계역학은 엔트로피 또는 정보의 과학이라 할 수 있지요. 복잡성의 경계적인 성격에 대해 혼돈의 언저리라는 표현을 썼지요. 따라서 혼돈 현상을 다루는 이론 체계인 비선형동역학도 복잡계 물리에 중요한 방법이 되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복잡계를 일반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만일 복잡계를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복잡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복잡계'니까 정의도 복잡해서 간단히 규정하기 어렵다고 할까요. 대신에 복잡계의 특성을 정리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복잡계의 특성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많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뭇알갱이계라는 사실입니다. 그 구성원 사이에 많은 수의 관계들이 있습니다. 관계란 물리학에서는 보통 상호작용이라고 부르지요. 여러분 하나하나가 구성원이라면 여러분 사이에도 상호작용이 있지요.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것들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상호작용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상호작용은 비선형(nonlinear)이어야 합니다. 비선형이란 단순히 비례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제곱으로 주어진다든가 또는 코사인 같이 삼각함수 꼴이 된다든가 등으로 관계가 주어짐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선형이어야 복잡한(번거로운)complicated 현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혼돈 현상도 기본적으로 비선형에서 기인하지요. 일차식으로 주어지는 선형(linear)의 경우에는 혼돈을 비롯하여 복잡한 현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에 더해서 중요한 특성이 열려 있는 계라는 점입니다. 완전히 닫혀서 외부 세계, 곧 환경과 단절돼 있으면 복잡한 현상을 보일 수 없어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상이 대부분 복잡한 현상이지만 그 중에 궁극적으로 복잡한 것은 아마도 생명현상이리라 말했지요. 생명이란 놀라운 현상을 보이는 계는 반드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닫혀 있는 계는 생명을 지닐 수 없어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고, 여기서 환경과의 정보교환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미 지적했듯이 복잡계는 눈금 불변성 또는 고비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밖에 복잡계는 기억을 지니고 변화에 적응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나이를 먹기도 하지요. 흔히 평형상태 보다는 비평형상태에 있고 동역학적 거동이 중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복잡계의 특성인데 이런 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거의 같은 상태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계는 그 많은 상태 가운데 어느 상태에 있게 되는가와 관련해서 높은 변이 가능성을 지니게 되지요. 이렇게 많은 상태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통 두 가지의 핵심적인 요소가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쩔쩔맴(frustration)'이고 다른 하나는 '마구잡이'이지요.

마구잡이란 여러 번 언급했고, 쩔쩔맴이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알기 쉽게 세 사람 사이의 이른바 삼각관계에 비유하는 것이 좋겠네요. 요즘 유행하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뭐가 있지요?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면 대부분 삼각관계를 다루었어요. 몇 해 전에 ≪겨울연가≫ 라는 연속극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아는지요? ≪겨울연가≫는 이미 옛날 것이 되어서 기억이 잘 안나나요? 아니면≪대장금≫은 어때요? 중요한 등장인물로 장금이, 종사관, 그리고 중종이 있는데 이 세 사람을 꼭지점으로 하는 세모꼴(삼각형)을 그려봅시다. 위쪽 꼭지점에 있는 장금이와 왼쪽 꼭지점의 종사관은 서로 좋아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꼭지점에 있는 중종도 장금이를 좋아하지요. 사실 장금이도 중종을 싫어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중종과 종사관은 서로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둘이서 좋아한다면 좀 이상하잖아요. (요새는 양성애(bisexual)라는 것도 있긴 하지요.) 그러니 이 셋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를 삼각관계라고 부르지요.

이를 푸는 방법이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장금이와 중종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종사관을 '왕따' 시키는 방법이 있어요. 그러면 중종과 종사관의 관계도 행복하지요, 서로 불편한 사람끼리 멀리 지내니까. 그런데 장금이와 종사관의 관계는 불행합니다. 서로 좋은데 떨어지게 되니까요. 다른 방법은 물론 거꾸로 장금이와 종사관이 가깝게 지내고 중종을 왕따 시키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에는 중종과 장금이의 관계가 불행해지죠. 마지막 방법은 셋이서 모두 가깝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금이와 중종, 장금이와 종사관의 관계는 모두 행복하지요. 그런데 종사관과 중종은 서로 불편한데 가깝게 지내려니 아무래도 불행한 관계가 됩니다.

결국 삼각관계에서는 세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두 행복할 수 없고, 적어도 하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 밖에 다른 방법, 예컨대 셋이 모두 멀리 지내는 방법에서는 둘 이상의 관계가 불행해지지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쩔쩔매는' 상황이 됩니다.

 

 

▲ 그림 1: 연극의 긴장도
 

이는 연극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등장인물을 셋씩 짝을 지어보면 그 중에서 이렇게 쩔쩔매는 짝들이 있겠죠. 전체 세 짝들 중에서 쩔쩔매는 짝이 얼마나 되는지, 이른바 삼각관계의 비율을 연극의 긴장도(dramatic tension)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연극은 대부분 그림 1처럼 진행합니다. 처음에 시각 t=0에서 시작할 때는 별로 긴장이 없다가 진행하면서 점점 긴장도 D 가 증가하고, 최대로 커지는 절정을 이룹니다. 일반적으로 절정이란 삼각관계가 가장 심각해지는 상황을 가리키지요. 더 진행하면 결국 긴장이 풀려서 파국이 되고 시각 에서 연극은 끝나는데 이를 통해 관객이 대리만족을 얻습니다. 시원함을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이런 삼각관계가 어떻게 풀릴 수 있겠어요? 알다시피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쩔쩔매는 당사자 중에 한 사람이 죽든지 해서 없어지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지요. 예컨대 ≪대장금≫에서는 중종이 죽어 줍니다. 특히 '좋은' 사람이 죽는 경우를 '비극'이라고 부르겠네요. 다른 방식은 당사자 중 한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생겨서 마음이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 좋은 사람과 가깝게 지내게 되고, 쩔쩔맴은 해소됩니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지지요. 이를 '희극'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어떤 영문학 논문에 있는 내용으로서 특히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에 이러한 특성이 잘 나타나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4대 비극'이 널리 알려져 있고, 희극도 여러 편 있지요.

이런 쩔쩔맴이라는 상황은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포함한 자연에서도 흔히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계는 자신의 에너지를 최소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가 가장 낮은 평형상태에 있으려 하지요.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어진 온도에서 평형상태는 엔트로피도 고려해서 자유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에 해당합니다.] 그림 2의 왼쪽에 보듯이 쩔쩔매지 않는 간단한 계의 경우에 (자유)에너지 E가 가장 낮은 상태(짜임새; configuration)는 하나 있으므로 계는 바로 그 상태에 있게 됩니다.

 

 

 

▲ 그림 2: 상태에 따른 에너지 (간단한 계) (복잡계)

그런데 쩔쩔매는 계에서는 그림 2의 오른쪽에 보였듯이 에너지가 상태에 복잡하게 의존하며,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낮은 상태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삼각관계의 경우 모두 행복할 수는 없지만 한 관계만이 불행한 방법(상태)은 하나가 아니라 세 가지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 같은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쩔쩔매게 됩니다. 어떤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인지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지요. 그림 2의 왼쪽에 보인 상황에서는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를 금방 찾을 수 있고 따라서 계는 바로 그 평형상태에 있게 되지만 오른쪽처럼 쩔쩔매는 계에서는 에너지가 상태에 매우 복잡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가장 낮은 상태를 찾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에너지가 주위보다 낮은 상태가 곳곳마다 많으므로 그 중에 한 상태에 빠져 들어가기 쉽지요. 그러면 바깥으로 나오기가 어려워서 에너지가 실제로 가장 작은 평형상태를 찾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래 기다려도 진정한 평형상태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처음에 어떤 상태에서 시작했는가에 따라 다른 상태로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변이가능성이 높음을 뜻하며, 이것이 바로 복잡성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쩔쩔맴 때문에 에너지가 상태에 복잡하게 의존하게 되고, 결국 높은 변이가능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쩔쩔맴은 복잡성을 가져오는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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