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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문시형 작성일 : 2010-01-13 조회수 : 4,683
제 목 :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82> 과학과 기술 ①

24강 과학과 기술

어느덧 한 학기가 끝나가네요. 이제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으니,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관련된 몇몇 주제들을 논의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먼저 과학과 관련해서 기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지요.

과학기술?

이른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이상하게 쓰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지요. 요새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에 속할 것 같은데, 그 뜻이 무엇일까요? '과학적 기술'을 뜻하나요? 그렇다면 '비과학적 기술'도 있어요?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겠어요? 만일 과학적 기술이란 뜻이라면, 영어로는 'scientific technology' 정도가 될 듯합니다. 그러나 영어로 'science and technology', 곧 '과학과 기술'이라는 표현은 많이 쓰지만 'scientific technology'란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이란 '과학=기술', 곧 과학과 기술의 동질성을 전제하는 용어로 쓰이는 듯합니다. 좀 이상하지요. 이를 보면, 우리 사회가 뭔가 왜곡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과학과 기술은 같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여러 번 강조했지요. 어떤 차이를 생각할 수 있나요? 앞에서 언급했잖아요.

학생: 배운 건 잘 모르겠고요, 제 생각에 기술은 더 실용적인 것 같아요.

기술은 실용적이다, 좋아요. 그런데 배운 건 잘 모르겠다고요? 내가 그동안 헛수고했나 보네요. 과학의 성격이나 본질을 기술과 대비해서 여러 번 강조했는데, 과학은 본질적 성격이 어떻다고 했지요?

과학은 본래 의미에서 정신문화 성격이 강하고, 기술은 정신문화보다 물질문명의 성격이 강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과학과 기술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과학이 기술의 바탕이 되었지요. 특히 현대 기술은 과학을 대규모로 이용하고 있고, 둘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완전히 다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기술은 '쓸모 있는' 것을 하지만, 과학은 '쓸모없는' 걸 다룬다고 할까요.

그런데 앞에서 시대정신 얘기를 했는데, 현대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뭘까요?

학생: 경쟁의 결과만 중시하고 과정은 중시하지 않는 풍조요.

그걸 그럴 듯하게 표현해서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학생: 실용주의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실용주의라고 하면 좀 넓은 것 같은데, 조금 더 특정하게 국한시키면? 요새 자주 얘기하는 개념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있지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신자유주의를 현대 사회의 시대정신이라 해도 될 듯합니다. 매우 지배적인 관념 체계로서 극도의 실용주의이고 극도의 경쟁 체제이지요. '첫째 아니면 꼴찌', 한자어로 '승자독식(勝者獨食)', 영어로는 'All or nothing' 따위로 표현되지요. 그런 상황에서 '쓸모 있는' 것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기술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원래 의미로서 과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지요. 이렇게 과학이 원래 의미는 상실해가면서 기술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이라는 표현을 자꾸 쓰게 되지요. 마치 과학이 기술과 똑같은 것처럼 말이죠.

고전물리학 강의에서 언급했는데 패러데이가 기억나나요? 패러데이는 전자기유도 법칙을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전깃줄을 감아 만든 줄토리(코일, coi)l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하면 줄토리에 기전력(electromotive force)이 생깁니다. 따라서 전기 흐름길을 따라 전류가 흐르게 되지요. 다름 아닌 발전기의 원리입니다. 자석을 줄토리에 넣고 빼는 대신에 수력이나 화력 터빈(turbine)으로 돌리는 것이 발전기이지요. 패러데이는 이러한 발전기의 원리, 곧 전자기유도 현상을 처음으로 알아내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런 연구를 하려면 연구비가 있어야 하지요. 이를 위해 돈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발표를 했습니다. 은행가와 관리들을 불러놓았는데, 그들이 전자기유도 현상을 보고 난 다음에, 신기해 보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패러데이는 은행가가 데리고 온 아기를 보고서 "이 아기는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반문하였고, 관리에게는 "아마 한참 후에는 관리 여러분들이 이것에 세금을 매길 때가 올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딱 들어맞았죠. 전기를 팔면서 세금 매기고, 그러잖아요. 물론 패러데이는 돈을 벌려고 전자기유도 법칙을 얻어낸 것은 아닙니다. 돈과는 전혀 관계없이 한 일이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사실 기술과 과학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기술과 과학이 분리 되어 있었지요. 동양 사회가 서양보다 얼핏 보면 뒤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아마도 200년 전까지는, 기술에서 동양 사회가 서양 사회보다 월등히 앞섰습니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동양 사회가 서양 사회보다 훨씬 뒤처졌고 그것이 현재의 차이를 낳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과학과 기술은 서로 별 관련 없이 발전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동양에서는 과학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이 기술만 독자적으로 발전했지요. 이것을 보더라도 원래 과학과 기술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전통적인 것으로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수공예적 기술'이라고 표현하지요.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좀 천하게 여겨서 '∼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수공예적 기술은 과학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지요.

이에 반해 '현대 기술'은 수공예적 기술과 달리 상당 부분 과학을 직접 응용하여 얻어집니다. 이런 면에서 과학에 직접 종속되어 있고,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흔히 응용과학, 특히 응용물리학이라는 표현을 기술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라든가 레이저 같은 응용물리학 주제들은 사실상 기술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기술이 과학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거나 과학이 더 우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반대로 과학의 발전도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의 발전이 직접적으로 응용이 되어서 기술을 낳고, 기술의 발전이 과학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현대의 기술은 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생명과학 쪽이 이러한 경향이 강하지요. 그래서 '과학기술'이라는 표현이 마치 적절하게 어울리는 듯 느낌을 주지만 이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현대의 시대정신이라 할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더욱 강화됩니다. 과학과 기술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이에 따라 원래 의미의 과학을 경시하는 추세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기술의 발전

그런데 기술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흥미로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먼저 기술의 발전에 관한 이른바 사회결정론과 기술결정론을 생각해 봅시다. 사회결정론은 사회가 기술을 결정한다는 말로서 기술의 발전을 사회가 만들어 왔다는 의미지요. 결국 사회에서 수요가 있기 때문에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이 발달한다는 견해입니다. 이와 달리 기술결정론에서는 사회와 관계없이 기술의 자율성이 있다고 봅니다. 기술이 자율성을 지니므로 수요가 기술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 견해 중에 어느 쪽이 타당할까요? 수요가 기술을 발전시킬까요, 아니면 기술이 수요를 만들어 낼까요?

현대 사회에서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겠지요. 쓸데없이 자주 바꾸잖아요. 필요성이나 수요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닌데 희한한 기능을 집어넣은 신제품을 만들어 내면 그것이 수요를 만들어 내서 전화기를 바꾸게 됩니다.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더 연산장치를 빠르게 만들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지요. 특히 윈도우라는 게 참 문제가 많은 운영체계(operating system)인데, 맨 처음에 윈도우95가 나온 다음에 98, 밀레니엄에디션, 2000, 엑스피(XP) 나오고, 심지어 비스타 등 계속 바꾸어 나오잖아요. 그러면 새로운 무른모(software)를 사용하는 문제 따위로 안 바꾸고 버티기 어렵고, 결국 수요가 같이 따라갑니다. 실제로는 독점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는 거지요.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의 이러한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당연히 수요가 기술을 발전시키는 쪽이었겠지만.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이러한 기술결정론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지는데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뭔가 좀 걱정이 되지 않아요? 사회가 기술을 결정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기술이 자율성, 곧 사회와 관계없이 독자성을 지닌다면 과연 통제가 가능하겠냐는 문제가 생깁니다. 자율적으로 변해나가는 기술을 사회에서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있지요, 인류는 항상 두려움을 갖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류가 두려워하던 건 뭐죠? 옛날에는 대부분 자연이었습니다. 사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낳기도 했지요. 예컨대 지진이나 홍수, 가뭄 등이 두려움의 주된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호랑이에 의한 피해나 (한자어로 호환, 虎患) 마마(천연두) 같은 전염병이었지요. 요새는 비디오 대여점이 드물어졌지만 몇 해 전에는 대여점에서 비디오카세트를 빌려보면 본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주의사항으로 "옛날에 두려운 건 호환, 마마 같은 것인데 요새 두려운 것은 불량 성인용 비디오"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농담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중요한 문제입니다. 불량비디오는 기술로 만드는 거니까 현재 두려운 재난이 사실은 기술이라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렇지요, 인류가 요새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아마도 전쟁이겠죠. 옛날 전쟁은 칼로 싸웠으니 한번 전투에서 몇 명이나 죽었겠습니까? 그러나 핵폭탄이나 생화학무기 같은 이른바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는 현대의 전쟁은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아니더라도 지진이나 홍수보다는 지구온난화 따위 환경오염 문제 같은 것이 걱정이 되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결국 기술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현대의 가장 두려운 문제는 기술이라 할 수 있지요. 당연히 "기술은 통제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핵심적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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